주인공 공부와 다른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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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얼마 전부터 큰스님 유튜브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사경도 하고 나름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여, 이렇게 저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도 하면서 나름 정진을 하고 있었는데 주인공 공부와는 다른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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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뭐, 문은 여기도 많죠. 염불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경을 읽어서 가는 문이 있고, 선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여러 가지의 문이, 이 문 저 문이 많죠. 그러나 문 밖에 나가면 그저 다른 문이 아니죠. 주인공이, 이 마음 자체가 내놓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빛깔도 없습니다. 허공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허공이 있다는 것은 아시죠. 그와 같은 겁니다. 지금 댁이 말을 하는 것도 주인공이 없으면 말을 못 해요. 그걸로써 입증을 할 수 있죠.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면서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를 믿어라 이겁니다. 그게 자성이죠. 이 자성불이 공해서 하나로 돌아가니까 주인공이에요, 그래서. 고정된 게 하나도 없이 돌아가니까. 그렇게 붙잡을 것도 없으면서 여전히 말을 하게 하고 여전히 움죽거리게 하고, 여전히 이 생각 저 생각 나게 하고, 요것조것 보게 하고 요것조것 듣게 하고 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입증이 안 됩니까?
그런데 그렇게 항상 ‘해 주십시오’ 한다면 그거는 바깥으로 하는 기복입니다. 그건 노예 생활에 불과합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시여! 나를 이렇게 해 주시고 죄를 사해 주시고….’ 그렇게 아무리 해도 자기가 해 놓은 일, 우주 법계에서 알고 있는 이상 아무리 말을 해도 공덕은 하나도 돌아가지 않고 실천은 하나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길을 걸어가다가 엎드러지면 그 자리 땅을 짚고 일어나죠. 딴 데를 짚고 일어나는 법 없죠. 거기서 나오는 거라면 거기서 해결을 하겠지, 딴 데서 해결을 해 주고 뺏어 가고 하는 게 없습니다.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부터 알아야죠.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말입니다. 어디서 왔는지 알면은 어디로 갈 것도 알 것 아닙니까? 어디로 갈 것을 아는 사람이면 지금 현실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거 아닙니까? 그러니 ‘부처님이시여, 나를 이렇게 잘되게 해 주시오.’ 그거는 천부당만부당한 소립니다. 하나도 이익 되는 게 없어요.
모든 것은 ‘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바깥으로 그러고 하는 게 아니라 수억겁 광년으로부터 쫓고 쫓기면서 진화를 시켜 온 그 장본인이 바로 자기니까, 자기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니까, 그러니까 모든 것에 얼마나 경험이 많고 얼마나 그렇겠어요. 그러니까 안에다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거기서만이, 생사도 거기에 있고, 일체 만법을 응용하는 것도 거기에 있고, 내가 말하는 것도 거기에서 나오는 거고 사는 것도 거기에서 나오는 거고….
나는 몸뚱이를 가진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모든 거는, 돈도 있다면 나는 관리인이지 내 것이 아니다, 주인 거지. 모든 걸 주인에게 일임시키고 ‘거기서만이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지 ‘해 주시오’가 아니에요. ‘해 주시오’는 벌써 둘로 보고 비는 게 되죠. 그러나 ‘할 수 있다. 너는 할 수 있다.’ 하는 거는 바로 직접 들어가는 행입니다. 실천이고요.
만약에 여기 이 물컵에 물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물이 있는 걸 봤어요. 그런데 집어 먹을 수 없고 집어 줄 수 없다면 그건 보고 듣고 한 것도 소용이 없는 겁니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에요.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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