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쳐오는 병고액난이 두렵습니다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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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오는 병고액난이 두렵습니다

본문

질문

삶은고가 아니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부지불식간에 닥쳐오는 병고액난이 두렵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 가면서는 병고에 대한 두려움이 은근히 마음을 짓누릅니다. 모든 것에 걸림 없이 중심 잡고 갈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떤 때는 “주인공한테 모든 걸 맡겨 놔라. 그런다면 거기에서 다양하게 굴려 줄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다 그러면 약을 따진다 하더라도 천 가지 만 가지가 되니 그 천 가지 만 가지 구차하게 이름 부르고, 그걸 천 가지 만 가지 찾아서 내가 그 아픈 데에 따라서 꼭 약을 써야 할 텐데 어떤 약인지 몰라서 방황하고, 그게 한두 건이라야 여러분들이 잘 알아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모르는 사람들은, 내 입장으로 따진다면 참 귀찮은 일입니다, 그게.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그렇게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체험한 얘기를 한번 해 드리겠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다니다 보니까 이런 걸 느꼈죠. ‘야, 참 모든 게 살아나가는 게 귀찮구나.’ 사람 사는 것도 천차만별로 움죽거려야 하고 천차만별의 이름이 있어야 하고, 천차만별의 이름을 알아야 그 종류를 찾을 테고, 그 종류는 또 천차만별로 돼 있고 이러니 종류마다, 사람 종류도 차원도 또는 어떠한 약의 종류도 이름도, 우리 살아나가는 데 천차만별로, 그 돌 하나 흙 하나도 전부 움죽거리지 않음이 없음으로써 바로 그것도 우리의 약의 종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다못해 물도 약이 되고, 물만 약이 되는 게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풀잎을 수없이 베어다가 큰 가마솥에 넣고 푹푹 삶아 보십시오. 나중엔 끓다 끓다 끓다 조청같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에 모두 어지럽게 생각을 하고 남의 말만 듣고 그렇게 사니까 어지러운 거지, 그래서 수만 개, 수만 짐을 사다가 베어다가 갖다가 고니까 똑 조청같이 되는데 그것을 조그만큼씩 하게 하려니까 거기에다가 참, 풀뿌리나 이런 걸 말린 거를 갖다가 또 가루를 만들어서 섞는다 해도 그렇고, 참 여러 가지, 오징어 뼈를 갖다가 갈아서 가루를 만들어서 거기 섞어서 먹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선약입니다. 

  왜 그런가. 지수화풍이 전체 약의 근원도 되고, 살아나가는 데 근원도 되고, 법의 근원도 되고 모두 일체 만법의 그 전율, 이 무전 통신 이런 것이 전부 거기서 발생하는 겁니다, 전부 모태가 돼서. 그런데 그 하나하나가 전부 약에만 종류가 돼 있는 게 아니고 우주간 법칙에도 종류가 돼 있고 또 우리 살아나가는 데 가난 또는 부자 이런 것도 거기에 소관돼 있고 모두가 근본입니다. 근본 모태가 돼서, 우리가 허망한 게 아니라 우리 자체가 아주 영원한 것입니다. 이 물질 하나하나가 영원한 거지 영원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물질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말고 요렇게 요렇게 변해서, 요렇게 바꿔서 옮겨 갈 뿐이지 절대로 영원한 것이다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뭐냐. 풀이 만 개라면, 그 풀의 종류가 전부 선약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각각, 즉 말하자면 만 개가 전부 이 인체에 똑같은 아픔이라든가 똑같은 일에 쓰이는 풀이 아닙니다. 다 각각 돼 있습니다. 요거는 뭣에 먹고 요건 뭣에 먹고 요건 뭣에 먹고 하는 그것이 천차만별로 그건 뭐,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거를 일일이 따져요? 

  나는 그전에 ‘야! 물질로 본다면 이름도 천차만별이고 생김생김도 천차만별이고 하고 돌아가는 것도 천차만별이니 이거 귀찮아서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야, 너 말이야, 너 물질이 있다면 나도 물질이 있고, 네 마음이 있다면 나도 마음이 있고, 네 마음 가운데에 선약이 있다면 나도 내 마음 가운데에 선약이 있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부족할 땐 네가 받쳐 주고, 네가 부족할 땐 내가 주마.’ 이렇게 해서 이 주인공한테 모든 걸 맡겨 놓는다면, 주인공은 하나지 둘이 아니에요, 모두가. 그런다면 물질로서 일일이 이름을 따지고 일일이 종류를 찾지 않아도 내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겨서, 만약에 어디가 아프다, 또 가난하다, 무슨 법에 걸렸다 이런 종류에 따라서 전체를 하나하나 닥치는 대로 거기에다 맡겨 놓는다면 바로 거기에서 모든 분야와 같이 한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선약은 거기서 다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일일이 그놈의 거를 종류를 따지자니 얼마나 살기가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귀찮습니까. 

    내가 오며 가며 봐도 그렇고, 참 이 세상 살기가 얼마나 귀찮았던가. 내가 참 잘 생각했죠. 아니, 여러분들도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발전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숭상하지 않는다면 대 우주의 근본의 원리 또는 활용 이 자체를, 또는 내가 한 발 한 발 옮겨 간다는 그 진화력 이런 거를 도저히 생각해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내가 터득을 한다면 모두 우리가 편리하게 앉아서, 천리만리 있는 것도, 즉 말하자면 불로초를 구할 수도 있는 법이 있는 겁니다. 왜? 인간은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지만 참인간은 불로초를 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이거? 여러분들이 종류 종류, 일일이 요거는 약풀이고 요거는 약풀이 아니고 이렇게 따진다면 수효가 천차만별로 돼 있고 도대체 어떠한 이름과 어떠한 종류를 찾아야 될지 몰라서 방황하게 되고 귀찮게 되고 인생살이가 그렇게 고가 되지 않을 수 없고, 도대체 귀찮은 겁니다. 

    그런데 이 원 근본에다가 모두 놓으니까 근본끼리 전부 주고받습니다, 근본끼리. 그 뜻을 아신다면 아니, 저승에 가서 불로초는 구하지 못하리까.  그래서 안락사라는 것도 있는 거는 저승에 가서 그 모든 문서를 파악할 수 있고 자유자재권을 가져서 그거를 들춰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들춰 볼 게 있어서 들춰 보느냐. 그게 아닙니다. 그냥 이 자리에 앉아서 근본에 넣으면 전부 보이게끔 돼 있고, 수명은 어떻게 돼 있고 또는 죄상이 얼마나 돼 있고 인과가 얼마나 돼 있고 유전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돼 있고, 이것을 전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맡겨 놓으면 모든 것은 바로 그 근본 한 점에서, 한 점과 한 점이 모두가 수천수만이 된다 하더라도 그 한 점은 한 점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도, 선약도 그대로 그대로 우리는 그대로 섭취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눈에 보여야만 약인 줄 아는데 진짜 약은 바로 그 액 자체, 무전자에서 나오는 그 액 자체가 그 선약이기 때문에 그게 바로 불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할 수 없는, 저런 은하계나 저런 다른 혹성, 별성에서도 구할 수 없는 거를 구할 수 있다는 거는 바로 한 점의 마음에서나 구하지 절대로 딴 데서는 구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편리하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일일이 뭐, 꽃가루만 와도 알레르기, 뭐만 와도 알레르기, 뭐, 고등어만 먹어도 알레르기, 뭐, 전체가 모두 그냥 이름도 많고 종류도 많고, 이거 일일이 쫓아가면서 끄달리면서 사니 이 한 몸뚱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러니까 이 공부라는 것은 꼭 하고 볼 일입니다. 그 수많은 약이 다양하게 내 한 점의 마음에 있다는 거 말입니다. 그리고 가난함도 부자도 바로 한 점에 있다는 겁니다. 죽고 살고, 인과라든가 유전이라든가 모든 것이 한 점에 있다는 겁니다. 일체 생명이 다 그것이 한데 합쳐서 내 한 점에 다 포괄돼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벗이 아닌 게 없고 내가 급하면 이 여기에다가만 바로 맡겨 놓고 만약에 한생각을 일으킨다면…, 아, 생각 안 일으킬 수가 없지. 예를 들어서 가다가 다리가 어그러졌다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지 않아요? ‘어이, 다리가 어그러졌네.’ 그런 생각이 뭐, 아주 그냥 금방 신호가 오죠? 신호가 올 때 그냥 ‘흥, 나를 끌고 다니는 장본인이 다리가 어그러졌으면 날 어떻게 끌고 다니노?’ 하고 그 웃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그 여유, 당당하고 도도한 여유, 그것이 바로 그저 시시때때로 나에게 보조를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나의 부하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 내 마음속의 중생들은 어떻게, 이 몸속의 중생들은 어떻게 끌고 가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그 인과로 인해서 또는 선업이든지 악업이든지 다 억겁을 통해서 지내 왔기 때문에 진화돼 가면서 그 모든 것을,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부하들을 지금 이 속에 잔뜩 넣어 놓고 있습니다. 그 몸뚱이 속의 중생이 자기의 한생각에 진화가 되느냐, 이 갑갑한 몸속에서 벗어나느냐 못 벗어나느냐도 자기한테 달렸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든 게, 우리는 물질 아닌 선약이 수천수만 가지 헤아릴 수 없는 게 있으며, 이 법이 자연의 법칙과 자동적인 활용과 자동적인 바로 무전 통신과 자동 전자, 이 도리가 전체 이 여기에 모두가 포괄돼서 구성되고 있으니까, 모든 게 여러분들 앞에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하나하나 보고, 하나하나 듣고, 남한테 끄달리기 때문에 괴로운 거지 내 이 주인공에 모든 것을 놓는다면 끄달릴 거 하나도 없어요. 죽는다 하더라도 끄달릴 것 없고 산다 하더라도 끄달릴 게 없고, 거기에 뭐가 끄달릴 게 있습니까. 종류에 끄달려, 이름이 끄달려? 만약에 생각으로 한생각이면 배가 부르고, 한생각이면 그 어디 아픈 게 낫고, 한생각이면 저기 가고, 한생각이면 여기 오고 이럴 정도라면 우리는 살맛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고달프게 살지 않고 말입니다. 

    지금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도리를 모르면 영원히 또 이렇게 끄달릴 거라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끄달리는 것도 한 점의 마음에 달렸다. 그 한 점의 마음에 천 가지 만 가지 나오는 거, 천 가지 만 가지 보는 거, 천 가지 만 가지 듣는 거, 천 가지 만 가지 활용하는 거 모두 일절 자기의 성품에, 한 점에 달렸다는 겁니다. 그러니 거기다 모든 걸 맡겨 놓는다면 자기가 그렇게 맡겨 놓는 반면에 거기에서 천 가지 만 가지가 다 약이 돼서, 자기에 부당한 게 오는 게 아니라 다 바로 거기에 맞는 약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한 이름에 끄달리고 남의 말에 끄달리고 바로 어떠한 종류에 끄달리고, 이렇게 보다 보면 인간 살맛이 어디 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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