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먹고사는 일이 걱정인데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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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먹고사는 일이 걱정인데

본문

질문

바람처럼 물처럼 걸림 없이 살고 싶은데 당장 먹고사는 일이 걱정이라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주인공에 맡긴다면 이러한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그래서 여러분이 참 행복을 느끼고 산다 하는 것은 당장에 아침 먹을거리가 없어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먹고 살 거는 저절로 오게 돼 있거든요. 그 뜻을 아마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거예요. 먹고 살 게 없는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느냐 하실 거예요.

그런 거를 나무 얘기로 비유를 자꾸 하는데, 나무를 보면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나무의 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 걱정을 안 해요. 뿌리가 있기 때문이죠. 그와 같이 우리는 불성이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불성이 우리를 형성시켰고, 우리는 불성의 종자이고 아, 지금도 이렇게 형성시켜서 이끌고 가고 있는데 왜 주인의 걱정을 내가 일부러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걱정한다고 해서 잘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항시 “거기에 맡겨라, 맡겨라.” 이런 말도 했고, “나는 공했으니까 없다. 나는 본래, 이미 공해서 죽은 거다. 자타가 같이 죽은 거다. 자타가 더불어 같이 나투고 이렇게 그냥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니까 그거 역시도 죽은 거다, 모두가.”라고 하기도 했죠. 텅 비었으니까 둘이 없어요. 둘이 없이 안과 밖이 텅 비었다 이거죠. 비어서 고요하니까 이름도 없는 그 이름이지만 아주 찬란하다 이런 뜻이죠. 그러니까 “이름조차도 없는 그 이름이요.” 하고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여러분이 다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본래 그대로 부처예요. 그런데 차원에 따라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그 인과성이나 유전성 등을 인연으로 맺었기 때문에, 몸뚱이 속에 인연으로 맺었기 때문에 때가 되면 그게 나오고 괴로움이 생기고 이러죠. 그러니까 그런 것 저런 것을 모두 생각해 보면 한없이 편안한 겁니다.
살다가 오늘 죽으면 어떻고 내일 죽으면 어떻습니까? 뭐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내가 죽는다 산다를 떠나면 그냥 편안한 겁니다. ‘먹고 살아야 한다’, ‘좀 더 괜찮게 살아야겠다’ 이런 게 없이…. 그래서 이런 말을 하죠. “함이 없이 하라. 너는 이미 공했다. 너는 이미 공해서 없다. 네가 하는 것도 없고 네가 앞으로 할 것도 없다. 네가 공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온 것도 없기 때문에 갈 것도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 도리를 우리가 알려면 그냥 무조건…, 이런 걸 알고 저런 걸 알아야겠다 하고 경전을 보고 이렇게 하시는데, 이것은 경전이 말해 주는 게 아니에요. 이 불성이라는 것을, 내 뿌리를 내가 믿고, 내 뿌리에서 내가 에너지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 주거나 누가 뺏어 가거나 그런 게 없어요. 그런 거부터 알아야 나중에 ‘아, 이렇게 보니까 이렇구나’ 하고 그때 가서 경전도 한번 볼 수 있구요, 또 다른 스님네들이 말씀하신 것도 한번 질문해 보구요. 또 살면서 ‘고통이라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럴까?’ 하는 것도 여러분이 생각해 보시면 그 이유가 간단하죠. 내 뿌리를 내가 믿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인 거죠. 믿는다면 지금 내가 죽는다 해도 그냥 웃음이 날 뿐이겠죠. 

예를 들어서,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병이 났을 때, 치료 방법은 두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죠. 뼈가 부러지거나 또 수술을 해야만 될 때 의사의 손을 빌리는 게 있구요, 또 때에 따라서 ‘내가 해결할 수 있다’ 하는 거는요, 내 몸뚱이가 하는 게 아니라 내 속에 만물박사를 두었기 때문에, 내 속에 약사도 있고 의사도 있고 관음도 있고 지장도 있고 보현도 있고 법신도 있고 다 있기 때문에 뭐든지 여기서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내가 왜 딴 집으로 구걸하러 다니느냐 하는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왜 딴 데로, 딴 집으로 다니면서 구걸을 하고 살아야만 되느냐는 거 말이에요. 

이 도리를 모르는 분들한테 그런 말을 하면 미쳤다고 하겠지만요, 실질적으로 내가 실험하지 않은 거는 말을 못 하죠. 왜? 말 한마디 잘못해서 그 사람이 그게 옳은 건 줄 알고 잘못 갔다가 한데 빠지면 나까지도 거기 관계가 돼요. 그렇기 때문이에요. 그게 무서워서가 아니에요. 나 때문에 괜히 그 사람까지 빠져서 이 한 생에 벗어날 것을 오히려 세세생생 그냥 벗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 거니까요. 

이거는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재미없는 것도 아니에요. 이거는 맘대로 웃을 일도 아니고 울 일도 아니에요. 그러니 얼마나…. 여러분, 그 말은 많이 들으셨겠죠. ‘물같이 살라’ 하는 거요. ‘바람같이 살라, 구름같이 살라, 산같이 살라’ 하는 말을 여러분이 잘 아시리라고 믿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왜 좋은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해서 걱정이죠. 인생은 그렇게 바람같이 사는 거죠. 내가 항상 그거를 일깨워 드리기 위해서 말하죠? “한 발 떼어 놓으면 한 발 없어진다. 바람같이 없어진다. 지나간 거는 과거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묵묵히 그냥 걸어갈 뿐이다.”라고요. 

그리고 “우리 사는 게 고정된 게 없다. 보는 것도 한 가지만 보는 게 아니고, 듣는 것도 그냥 한 가지만 듣는 게 아니고, 한 사람만 만나는 게 아니고 한 가지만 먹는 게 아니다.” 했습니다. 수많은 거를 바꿔 돌아가면서 말을 하고 마음을 내니 그 마음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마음은 없는 겁니다, 너무나 많아서. 그래서 마음이 없기 때문에 공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살면서 이 도리를 모른다면 한 생을 그냥 허탕 사는 거예요, 허탕! 지금 우리가 밥을 잘 먹고 돈을 잘 쓰고 옷을 잘 입고, 이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 우주 천체로 봐서 우리 지구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우리 마음에 달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우리 마음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한다면 그렇게 되죠. 누구나가 잘되는 걸 좋아하지 잘못되는 걸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국운이 없다 하더라도 국운을 좋게 만들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너무 잘못하는 거는 좀 제거시키면서 잘 돌려서 해 나가는 것도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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