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물도 마음이 있는지?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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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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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물도 마음이 있는지?

본문

질문

자식을 부처님 곁에 보낸 후 6개월여 만에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립니다. 병든 아들이 부처님 곁으로 가고 지금까지 오직 주인공만 생각하고 주인공을 그리워하며 눈물지어 왔습니다. 화가 나도 놓고, 답답해도 놓고, 주인공이 보고 싶어 하염없이 울고, 꿈속에서도 주인공이 보고 싶어 하늘을 보고 땅을 치며 울부짖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놓고 또 놓고 하여 마음이 편한가 싶으면 또 다시 주인공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립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마음에 큰 경계가 왔었는데 추풍낙엽처럼 무너졌습니다. 좌선을 해서 유체이탈을 하고 촛불을 보면 무얼합니까? 마음이 무너지니 몽땅 내려앉더군요. 그래서 생각난 것이‘아! 일체가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구나. 마음을 잡을 일이다’하는 생각이 들자 세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무도, 바람도, 새도, 가족도 모두 감사해서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하지만 주인공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내어야 합니까? 또 임제선사께서, 지수화풍 사대는 들을 수도 법을 설할 수도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바람도 물도 사대인데 마음이 있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법을 설하여 주시옵소서.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경전을 본다 하더라도 글자를 배워서 익히라고 경전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글자를 보지 말고 그 뜻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이 여러분을 보지 않게 해야 하고, 여러분이 책을 보지 않고 볼 수 있어야만 그걸 진짜로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법문(法門)’ 이렇게도 하는데 문이 있어서 법문이 아닙니다. 문이 없기 때문에‘법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불법(佛法)’ 이렇게 말하죠? 불법은 불법이 없다는 것도 속합니다. 너무나 찰나찰나 화해서 나투는 까닭에 불법은 없다 이런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체가 없는데 문이 있는 데를 찾아다니겠습니까? 당장 지금 죽어가는데 벽이라도 뚫고 들어가야지 언제 문을 찾겠습니까? 그래서 문이 없는 문을 알아야지 문을 그렇게 찾아다닌다면 공부 못해요.

그리고 부처님도 둘로 보지 마세요. 부처님 마음이 여러 보살의 이름으로 탄생을 했지만 그것이 다 어디서 나왔습니까. 결국 부처님의 마음, 즉 한마음 속에서 전부 나왔다 이겁니다. 그러니 진짜 제대로 배우고 가신다면 형상의 부처님을 뵙더라도 너무나 성스럽고 위대하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도리를 모르면 ‘그냥 만들어 놓은 불상인데 뭐.’ 이러시겠지만, 완전히 터득을 하신다면 하다못해 돌 하나 세워놓은 것도 살아서 움죽거리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렸지만 이미 과거로 돌아가고 남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물은 물같이 살라 하고 산은 산같이 살라 합니다. 보십시오. 봄이 되니 싹이 나고 꽃이 피지 않습니까. 추운 겨울에도 봄을 기다리며 나무는 인내하며 놓고 갑니다. 나무도 그러는데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의 뜻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관법(觀法)은 누우나 앉으나, 내가 좀 참구해 보겠다 하고 지켜보면서 ‘주인공! 당신만이 당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하는 것이 관법입니다. 당신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이지 바깥에서 증명할 수는 없는 겁니다. 주인공만이 자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겁니다.

뛰어넘고 뛰어넘는 교차로가 바로 거기입니다.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없다면 죽을 것이고, 내쉬고 들이쉴 수 없다면 죽을 것입니다. 그 양면이 교차하는 그런 틈에서 숨을 쉬고 그대로 살아있는 바로 그놈이 있으니까 그놈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놈밖에 없다고 관하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생활을 들이고 내는 것이 자기가 있기 때문에 들이고 내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가 없다면 들이고 낼 건덕지가 뭐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죠.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없다면 이 공부는 어떻게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배낭이라는, 종이라는, 집이라는 육신에 50%가 달려있다 이 소리입니다. 그 50%의 물질이 없다면 이 참마음도 알 길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것과 저것을 분리하고 나누려는 생각도 그 자리에 그냥 돌려 놓고 참다운 지혜가 나오게 하는 것도 당신밖에 없으니 글자의 소식 말고 내면의 소식을 알게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며 관하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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