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으면 '나'는 사라집니까?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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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으면 '나'는 사라집니까?

본문

질문

궁극적 깨달음 후에 개체성이 남습니까? 가아(거짓 나)가 사라지고 진아(참 나) 또는 불성이 드러나면 너와 내가 없고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깨달은 이가 현생의 업이 다하여 육체를 버리고 죽으면 그는 진아 또는 불성과 합일하여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형태이든지 개성 또는 개체성을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까? 만일 수행의 결과가 문자 그대로 공이나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는 의식이 유지되고 내 생명이 유지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업에 의한 가아가 사라지는 것과 나라는 개체성이 보존되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생멸과 불생불멸이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사람이 없어질 리가 없습니다. 나무를 베어 없앴다고 해도 나무 그 자체가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을 뿐, 없어진 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살았다 죽었다 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생각할 때는 생멸이지만, 포괄적으로 볼 때는 불생불멸인 것입니다. 부서지고 변하고 하면서도 진리는 끝이 없고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생불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영원토록 쉴 사이 없이 돌고 도는 까닭에 우리에게는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이렇게 왔다가 또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도리를 알지 못하는 삶에겐 죽고 사는 게 있으며, 한 번 잘못 생각에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어떠한 곳인지도 가리지 못한 채, 까치둥우리든지 돼지우리든지 마구간이든지 개미소굴이든지 아무 데나 들어가서 그 소굴에서 그 모습으로 태어나 거기의 습에 배여 살기 때문에,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마음 닦아 깨달으면 세세생생에 끄달리거나 얽매이지 않을 것이고 나와 둘이 아닐 것이고, 둘이 아닌 까닭에 나툴 것이고, 나투는 까닭에 모든 중생을 제도할 것이고, 보살도를 행하는 까닭에 부처와 부처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가 수 만 명이 있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마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깨달으면 모습은 다르지만 다 하나가 되며 궁극에는 그 하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가 하나라 할 수도 없고 많다 할 수도 없고, 없다 할 수도 없고 있다 할 수도 없어서 엉거주춤하게, 그러면서도 너무도 확연하게 ‘무(無)’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깨닫는다 하더라도, 다 부처님 마음 안에 하나의 부처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결단코 믿고, 만물과 둘이 아닌 이 확연한 도리를 다 깨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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