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 하더라도 빛을 갚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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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 저는 경찰의 일을 천직으로 알고 생활하고 있는 처사입니다. IMF이후 부도를 당해 자살을 했던 사람에 관련된 수사를 하다 궁금한 점이 있어서 질문을 올립니다. 조그마한 회사였는데 부도가 나서 돈을 갚지 못해 악독한 사채업자에게 쫓겨다니다가 끝내 자살을 하신 분이었는데, 만약에 전생에 금전적인 빚을 갚지 못하고 죽었다 하더라도 그 빚이 탕감이 되지를 않았다면, 다음 생에라도 그 돈을 갚기 위해서 어떻게든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요. 그리고 모든 것이 그렇듯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다가오고 흘러가는 것이라면 저와 인연된 모든 이들 중 어떤 분은 선의 인연으로도 왔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악의 인연으로도 왔을 것인데 어떤 마음으로 다가오는 모든 인연들을 대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악의 인연과 선의 인연 양면을 다 놓고 맡기고 돌아가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 도리를 몰라서 헤매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그런 점이 없다고 볼 수 없는 것이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가난해서 빚을 진 게 아니라 너무 사람이 옹졸하고 큰 것만 생각하지 조그만 건 생각도 안 하고, 밥이나마 제대로 먹으려고 애쓰지 않고 장사를 한다고 돈을 뭉청 얻어서 하다가 망했습니다. 망하고 보니깐 빚쟁이는 빚쟁이대로 빚을 갚으라고 어떻게나 졸라대든지 도대체 살수가 없더랍니다. 오막살이 집 한 채마저 문서를 내놓으라고 그러니 어떡합니까? 자식들을 거리로 나앉게 할 수가 없어서, 잘못은 자기에게 있지마는 자기도 살아보려고 그러다가 그렇게 된 거니까 어쩔 수가 없어서 물에 빠져 죽었더랍니다.
그런데 그 빚을 준 사람한테는 자식이 없었더랍니다. 그 반면에 부인은 너무나 착하고 아름답고 마음씨가 좋았답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너무나 빡빡하고 돈만 알고, 빚을 받으러 다니면서 집문서를 내놓으라고 얼마나 다그쳤든지 그만 빠져죽은 거죠. 그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돈을 모을 때는 그렇게 구석에 몰린 마음으로 아주 피 한방울 안 나오고 물 한방울 안 나오게끔 해야 돈을 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돈 모으는 것도 순리적으로 버는 거하고, 말하자면 한 되를 꾸어줬으면 두 되를 받으려 하고 세 되를 받으려고 한다면 그 이자 받은 데서 또 이자가 붙어 돌아가서 나중에는 큰 돈이 돼가지고 그걸 다 받으려고 하는 그러한 욕심이 있어서 이런 문제가 나오는 거죠. 이자 받고 그러는 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도 그런 옴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그 부인이 꿈을 꾸니까, 물에 빠져죽은 빚진 사람이 턱 와서 하는 소리가‘내가 빚을 갚지 못하고 죽어서 이걸로라도 갚노라’고 하면서 큰 잉어 한마리를 잡아다 주더랍니다. 그래서 그 잉어를 받았는데 그 달부터 태기가 있더니 어린애를 낳았습니다. 그 집에 자식이 없다가 아이가 태어났으니 뭐 그냥 야단법석이 난 거죠. 그런데 바로 빚을 지고 죽은 분이 인연에 따라서 그 집 자식이 된 겁니다. 아들로 태어나 자라는데 늘 아버지하고는 앙숙이라, 뭐가 앙숙이냐 하면 만날 돈을 달라고 해서는 나가서 다 쓰고 가방은 내던지고, 이렇게 행패를 부리니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 그냥 뭐 달라는 대로 주고 키웠는데 자라면서 점점 더 극악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돈도 훔쳐다가 쓰고 훔쳐다가 쓰고 그러니까 도무지 이 아버지가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병이 들었습니다. 병이 들어서 죽고 나니까 그 재산이 다 없어지고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런데 그렇게 망나니로 굴던 아들이 어머니한테는 효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더랍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요기서 살다가 조기다 옳겨놔도 그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떠한 인연에 의해서 우리 집으로 왔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어머니에게는 잘하는가? 그 어머니는 고약한 분이 아니라 참 마음씨가 아름답고 정직해서 남편이 그렇게 하는 것을 너무나 애석해 생각하고, 그 집이 빚으로 인해서 죽는다는 소릴 듣고 항상 마음에 걸려 했던 분이거든요. 그러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네 이웃이든 좀 불편한 사람들을 보면은, 남편이 죽고 나서는 자기에게 권리가 있으니까 나누어 주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분이였죠. 그래서 그 아들이 아버지 죽고 난 뒤에 저절로 착해지고, 어머니한테 잘하고 순리적으로 돈도 잘 벌고, 내다 없애지도 않고 하니까 동네에서 "야, 그 아버지가 그렇게 모질게 하더니 그 사람 죽고 나서 저 아들 멈춘 것 좀 봐. 그 아버지가 벌을 받아서 그래." 하고 말을 하면서 죽었는데도 사람들이 오지도 않더래요. 얼마나 모질게 했던지 말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현재에 모두 보고들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디에서 인연이 돼서 이렇게 왔는지 그걸 모르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 자식은 어디서 저런 원수덩어리가 태어나가지고..."이러거든요. 자기가 원수덩어리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거예요. 왜 그 아버지 살아있을 때는 그렇게 망나니짓을 하더니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는 어머니 속을 안 썩이고 잘하겠습니까? 늘 어머니 팔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제가 속 많이 썩여 드렸죠?" 하면서요. 그런데 그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게 인연이라.
예를 들어서 말했는데 이걸 거짓으로 알지 마십시오. 생활 속에서 지금 허영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짐승이든지 사람이든지 마음을 인의롭게 쓰고 착하게 쓰고, 상대방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항상 인내하고 자비가 있고 지혜롭게 한번 돌려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라 이겁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런 악한 인연도 짓지 않고 선한 인연에도 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맡겨놓고서 살아나가는 반면에 스스로 언제나 질서와 계율을 지키면서 스스로 지혜를 넓혀가면서 악의 인연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의 인연으로서, 주고받는 불빛처럼 항상 밝아서 살게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지어놓은 대로, 밝은 마음으로 언제나 죽지 않는, 꺼지지 않는 그 불빛에 의해서 밝게 살 수 있는 인연을 끼리끼리 만나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도 둘로 보지 말고 또 아무리 악한 종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 속으로 탄압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이것도 내 인연에 따라서 왔으니 내 탓이지 누구의 탓이 아니다’고 생각하시면서 한생각 돌려서 거기에 맡겨놓도록 하십시오. 그 모두가 인연법에 의해서 여러분이 지속적으로 해놓고 지속적으로 받는 거기 때문에 종문서라고 표현했습니다마는, 여러분이 억겁을 거쳐 나오면서 살던 습의 종문서를, 모든 걸 태워버리라고 지금 이렇게 가르쳐 드리는 것이니 하나하나 녹여 나가는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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