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대의 한마음선원은 그 규모가 날로 창대해져 신도 수는 증가일로에 있었고 기존의 법당으로는 몰려드는 수천의 신도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기법회가 있는 날이면 3층 법당과 2층 강당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마당에 자리를 펴야 했고, 그러고도 모자라 많은 신도들이 마당 가득 서서 법문을 들어야 했으니 이제 대법당 불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2. 끊임없이 이어갈 여래의 집
1993년 4월 본원 대법당 기공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법당 불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1999년 10월 31일 비로소 낙성을 보았으니, 연면적 9,588㎡에 지상 5층 지하 4층의 대불사였습니다.
5층에는 118평의 대법당을 두고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 박찬수 관장(목아박물관)으로 하여금 본존불과 법상을 조성하게 하였고, 목탱화, 단청, 개금 역시 문화재 기능 보유자인 청원 스님과 김성규님이 맡아 대법당을 장엄하니 그 규모와 예술문화적 가치에 사부대중이 크게 찬탄하였습니다.
1999년 10월 31일 대법당 낙성법회에는 불교계의 대덕 큰스님들은 물론이고 정관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하여 대불사의 원만한 회향을 한마음으로 축하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도들과 함께한 낙성식 기념 법회(1999.11.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불사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여래의 자리에 다 회향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한마음의 노고가 더불어 같이 이렇게 이루었다고 봅니다. 근데 우리가 마쳤다 해도 아니 되고 마치지 않았다 해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발걸음을 걷는 게 결국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불사니까요. 여러분들이 이것을 지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좋지만 궁극에 들어가서는 세세생생에 내 집이고 더불어 같이 내 집인데 뭘 생색을 내서 ‘했다 안 했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겠습니까. 그런 대로 흉하지 않게 해 놓고 미래에도 여러분들이 이 장소에서 끊임없이 이어가도록 이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러니까 누가 했다 누가 안 했다 이걸 떠나서, 이걸로 즉 말하자면 길잡이가 돼서 여러분들이 다 이 한자리에서, 지구 바퀴에서 벗어나서 사방, 상하 모두 뚫린 데로 다 자유스럽게 훨훨 털고 벗어나시기를 바라면서, 이 집을 이렇게 하신 것도 마음에다 넣고 그렇게 함이 없이 하신 거를 아신다면 공덕이 클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하나 하나가 전부 공덕이 될 것입니다.
그걸 마음에 넣지 않고, 이 내면에 더불어 같이 하지 않았으면 공덕이 하나도 없죠. 그렇지만 모든 게 함이 없이 했다는 걸 알게 되고 자기가 공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마음을 가지신다면 모두가 공덕입니다. 하나도 공덕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고 이렇게 여러분들을 뵈니까 참, 부처님이 따로 없고 귀빈이 따로 없고 정말 공법 신이 따로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3. 낙성식 영상
한마음선원 대법당이 열린 날 1999년 10월 31일은 한마음선원 안양본원의 대법당 건물이 활짝 그 대문을 열게 된 날이었습니다. 오랜 숙원이었던 본원 대법당의 점안식을 마친 며칠 후, 대문을 활짝 여는 11월 7일의 낙성법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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