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탑에 대한 큰스님 법문

영탑공원


영탑공원

대행선사 법문
(1995. 4. 23 제주대법회에서)


오늘 영탑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죽어서 사후에 어떠한가, 또는 살았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길을 걸어서 현실로 다시 올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아둬야 되겠기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예전에 제가 일본에 한번 갔다 왔습니다. 일본에 가보니까 탑들을 해놨는데 제각기 하나하나 탑이 벌려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보고 생각한 것이 뭐냐 하면, '어허, 한국도 물론 땅덩어리가 좁지만, 일본도 땅덩어리가 좁은데 죽은 사람 산 사람 집들이 이렇게 많이 벌어진다면 어디 집 지을 틈이 있으랴.' 그리고 그렇게 죽은 후에 어떠한 탑을 해놔도 거리에다 해놓는다면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자손들의 경제난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한 가정에서 하나의 탑을 마련한다면 대대손손이 들어가게끔 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첫째는 한국의 땅덩어리가 좁아서 여러분께서 묘지를 쓰려면 전세를 얻어야 합니다.
지금 전세묘지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10년이고 15년이고 20년이고 몇 천을 주고 전세를 든다고 해도 그 후에는 또 그만큼 돈을 내야 하겠고, 또 그 후에도 돈을 또 그만큼 내야 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엊그저께 어떤 사람을 보니까 일년에 40만원이 밀려가지고 10년이 걸렸는데 40만원씩 십년이면 얼마입니까?
그래서 그 밀린 걸 다 내야만이 된다 하고 다시 15년이 됐으니까 앞서에 냈던 돈과 같이 또 내라, 더많이 내라 이런답니다.
그리고 밀린 관리비를 다 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할 때에 땅덩어리도 좁아서 언제 그것이 다 없어질지 무너질지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제 일차적으로 생각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 도량에 해 놓는 탑은 절대로 무너질 것도 아니고 없어질 것도 아닙니다. 그뿐입니까?
한번 해놓으면 대대손손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절약이 되고 자손들도 그 한 탑만 찾아오면 조상들을 다 뵙고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는 문제죠.

또 한 가지 제일 중요한 게 있습니다.
모두 여러분이 묘지를 써서 몸이 묻히는 거를 좋아하시지마는 우리가 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에 마취하는 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취를 하게 되면 잘라내든 살을 긁어내든 살을 베어내든 아프다고 하는 거 봤습니까?
죽으면 모두 사대로 흩어져서 썩어서 물로 흐르고 바람으로 또는 연기로 다 날아가고 말아버립니다.
물로 갈 건 물로 가고 말입니다.

그러면 남는 게 뭐냐 하면, 여러분이 어떻게 살았느냐의 차원에 따라서, 그 영혼이 정자 난자를 빌어서 이 세상에 또 다시 탄생을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탄생하는 그 문제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깡통은 깡통끼리 모이고 금은 금대로 모이고 넝마는 넝마대로 모이고 또 무쇠는 무쇠대로 모이고
은은 은대로 모이듯이 그렇게 여러분의 살아간 차원에 따라서 모두 그렇게 이 세상에 다시 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살생을 너무 많이 해서 뱀이 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마는 옛날 얘기로만 듣지 마세요.
현실에 지금 그렇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잘 때에 아무것도 모르고 밤을 지내듯, 우리는 낮에 보고 듣고 하는 것만 알고 밤에 잠잘 때에 보이지 않는 데에 50%가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간다는 것을 까맣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몸뚱이가 중합니까? 그 몸뚱이 속에 천차만별로 살고 있는 의식들 생명들이 중합니까?
여러분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다스리는 내 주인공 뿌리 선장이 있습니다. 누구나가 개개인이 다 자기 뿌리가 자기 자신으로 돼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나무가 자기 뿌리를 믿지 않고 딴 나무를 쳐다보고 허공을 쳐다보고 믿 어야 옳겠습니까? 형상을 쳐다보고 믿어야 옳겠습니까?
그러고 스님들의 고기 덩어리를 믿고 쳐다봐야 옳겠습니까?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여러분 자신의 주인공 뿌리는 바로 여러분 개개인의 보배인 것입니다.
저 나무와 같이 태양과 공기력을 흡수해서 아래로 내려 보내면 밑의 뿌리에서는 수분과 철분과 지분을 다 흡수해서 위로 올려 보냄으로 써 정맥 동맥이 돌아가는 것과 같아서 푸르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거와 같이 우리는 저 나무와 뭐가 다릅니까. 일체 만물만생과 삶이 뭐가 다릅니까?
모두 가만히 생각해 보신다면 차원에 따라서 모습이 다를지언정 어찌 생명의 근본이 다르겠습니까?
차츰 생각해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고, 정말이지 땅을 치며 울어도 시원치 않은 이 세상살이 인생 한 철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천 년 만 년 살 줄 알고 극매고, 물질세계의 50%만이 사는 본의인 줄 알고 극매는데 우리가 캠핑 가서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놀다가 해가 지면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듯 인간 인생살이가 그러함과 같습니다.
그런데 캠핑을 가서 어떻게 놀았느냐에 따라서 요다음 세상에 다시 이리로 돌아왔을 때에 삶의 길이 거기에서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갖다 줘서 행복한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함을 만들어서 행복한 것이고,
내가 만들어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지 누가 갖다 주고 뺏어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런 말입니다.

그러고 사람은 이 마음의 공부를 함으로써 위로는 조상을 받들어서 평등공법으로서 이끌어 놓을 수 있는 것이며,
아래로는 자기 몸속의 모든 자생중생들을, 즉 말하자면 다섯 가지 여섯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자생중생들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인과성, 업보성, 세균성, 윤회성 즉 윤회성이 유전성입니다.
그 모든 것이 인과성, 인연에 따라서 오는 과보를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모두 몸과 영혼과 더불어 같이 혼합이 돼서 정자 난자를 빌어서 삼합이 합쳐져서 인생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몸속에, 즉 오신통이라고 하는 그 이름이 자동적인 컴퓨터라면 모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입력이 돼서 현실에 차례차례로 지금 나오는 것입니다.
그 차례차례 나오는 것을 되 입력을 할 수 있다면 앞서 입력된 거는 없어지면서 새로이 입력이 들어가면서 다시 입력한 것이 현실로 나오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살림과 생활, 이 한 몸에 모든 괴로움, 한 가정의 화목과 질서, 그리고 사회의 질서나 국민의 화목과 더불어 같이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의 작용과 마음을
발전시켜서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기복으로 빌기만 하고 기도만 하고 돌아다니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네 뿌리부터 먼저 알고 너부터 발견을 해야만이 이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그 소임을 다 알 수 있느니라. 내 고깃덩이를 믿지 말고,
내 모습을 생각지 말고, 착(着)을 두지 말고 너부터 알면 일체제불이 마음을 다 한마음으로 찰나찰나 나투면서 알 수 있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영탑을 시작한 것은 우리가 벌어먹기 위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또 남한테 잘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한 것도 아닙니다.
단, 알고 본다면 미생물에서부터 수억겁 광년을 거쳐서 나올 때에 우리는 진화돼서 이렇게 고등동물인 인간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뭐는 안돼봤겠습니까?
그러니 모두가 내 모자랄 때의 내 모습이요, 내가 이 렇게 진화되지 않았을 때의 내 모습이요, 모두가 내 생명 아님이 없으며, 내 모습 아님이 없으며,
내 아픔 아님이 없 으며, 내 도량 아님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해말갛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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