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195-1996년 12월 15일 화해서 응해주는 그 마음이 부처
본문
질문: 큰스님,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생각과 공덕, 비밀 정토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큰스님: 생각의 비밀?
*질문자4(남): 생각과 공덕, 비밀 정토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비밀 정토라. 그건 공덕이 되는 것도 둘로 보지 않는 거, 일체 모습이 내 모습과 둘이 아니고 일체 차원을 논하지 말고, 예를 들어서 5차원이라면 아주 어리석은 1차원 2차원 이런 거 따지지 말고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앞에 닥쳤으면 내가 어리석어주고, 똑똑한 사람이 앞에 닥치면 내가 똑똑해 주고,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돼주란 얘깁니다. 돼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가 공덕입니다. 공덕이 아닌 게 하나도 없죠. 정토의 비밀도 그 마음이 그래서 모든 육체 안에 있는 의식들이 보살로 화해서 즉 ‘법가지(法加持)’ 또는 ‘보현가지(普賢加持)’ 또는 ‘자비가지’ 이 가지 가지가 전부 보살로 화해서 응신이 돼준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그것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하는 거기 때문에 비밀 정토죠. 이 모두가 그, 남의 눈에 띄려고 애를 쓰지도 말고 내가 할 일 꾸준히 그냥 진실로서의 실천을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그 비밀 정토를 알고 있다 이런 겁니다. 어때요? 대답이 시원치 않습니까?
질문: 좋습니다. 또 부처와 도에 대해서 좀 한 말씀 해주시죠.
큰스님: 부처라는 것도 이 세상이 둘이 아닌 까닭에 부처입니다. 예를 들어서 댁의 몸뚱이 속에 있는 그 의식들 생명들이 있는데 댁에가 봤다고 해서 혼자 본 겁니까, 들었다고 해서 혼자 들은 겁니까? 움죽거렸다고 그래서 혼자 움죽거린 겁니까? 전체가 다 그냥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더불어 같이 움죽거린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라고 한 겁니다. 부처. 모두 부처 아닌 게 없다 이런 겁니다. 그죠? 이해가 갑니까, 안 갑니까? 나 혼자라도 혼자가, ‘나’가 아니거든요. 더불어 같이 살고 있는 한 덩어리의 개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 아닌 게 하나도 없느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게, 물 먹었을 때 어떤 게 물을 먹었을까? 더불어 같이 먹었죠. 그러니까 내가 무슨 일을 했을 때도 그것이 내가 한 겁니까? 더불어 같이 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부처라는 건 영, 공해서 찰나찰나 나투면서 화해서 응해주는 그 마음이 부처인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거 할 때 내가 했다고 할 수 있으며, 어떤 거 됐을 때 내가 됐다고 할 수 있으며, 뭐든지 내가 됐다, 내가 했다, 내가 간다, 내가 봤다, 내가 들었다 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인 까닭에 도는 거기에서 그 부처가 그냥 생활하고 그냥 가는 게 전부 도지 도 아닌 게 없죠, 또. 그러니까 그러한 부처님의 생각 자체가 바로 도입니다. 도의 근원이 되고 그 근원에서 일거수일투족 그, 공법이 나오고 그러기 때문에 도라고 하죠. 말로 알려고 하지 마시고 스스로서 여기에다가, 알더라도 거기다 그냥 다 맡기세요. 맡기시면서 그 속의 진의를 알게끔 스스로서 자꾸 만들어 나가세요.
질문: 한 가지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제가 병원에 다닌 지 꽤 오래됐습니다, 귀가 아파 갖고. 그런데 아직도 귀가 아픕니다.
큰스님: 귀도 아픈 것도 여러 가지가지겠죠. 어떻게 아픈데요? 의사는 아니지만.
질문: 통증이 있다가 없어지고 또 없다가 통증이 간혹 오고 그렇습니다.
큰스님: 통증이 온다는 얘기죠? 열심히 관하세요. 이 관하라는 거는 이 몸뚱이 속의 생명들이 그 통신을 받아야 작용을 해줍니다. 간략하게 얘기하지만, 이 모든 소임을 맡아 가지고 있는 그, 공장장이라고 할까. 그런 사람들이, 그런 생명들이 하달을 받으려면, 통신을 받으려면 이 마음속에서 대뇌로 올라가서 정수에 입력이 돼야, 입력이 됨으로써 그 입력이 바로 현실로, 사대로 통신이 돼서 현실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주 첨단에 가까운 심성의학이라고도 할 수 있고 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과학적으로 돼 있는 겁니다. 의학적으로 돼 있고 과학적으로 돼 있고 돼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까지 미처 따라갈 수가 없으니까 그런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열심히 ‘너만이 고칠 수 있어, 네 몸이니까. 네 몸을 이끌고 다니는데 건강하게 이끌고 다녀야지 통증이 오게 해서 되겠어?’ 하고 그것이 진실로만 들어간다면 금방이죠. 멋진 묘법이죠. 그런데 그 높은 마음, 광대한 말, 그런 것만 이렇게 알 양으로 주워 모으지 마시고 모르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진실 되게 실천하는 거를 아시려고 하세요. 나에게 먼저 있는 것부터…. 병이든지 우환이든지 뭐든지 나로부터 있는 것부터 차차차차 해나가야 이게 실마리가 풀어지고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가깝고 멀고 그런 게 없구나!’ 하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고, 그게 참, 얼마나 묘한지 광대무변하다고 했습니다. 마음이라는 게 지울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그렇지만 얼마나 광대무변하게 그 마음속에 하나로 들어있는지 말로는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끝 간 데 없는 겁니다. 그렇게 해보시렵니까?
살기에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그 원리를 알면 고통스러운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난 정말이지 이따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도 고통스러운 게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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