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221-1998년 08월 02일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본문
사회자: 스님, 질문 끝났습니다.
큰스님: 질문을 한 게 있소? (대중 웃음) 대답한 사람은 누구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나가면서 그 공부 같지도 않고 뭐, 헬렐레하게 뭐, 요건 요렇고 요건 요렇고, 요렇게 배우는 거 계단, 한 계단 한 계단 이름을 가지고선 이렇게 해나가야 공부하는 것 같죠? 그런데 우리는요, 사방이 다 터져서 계단을 밟을 계단이 없다. 그러니까 마음은 체가 없는 거니까 강을 건너가려면 강을 건너가고 또는 산을 넘으려면 산을 넘고 또 손을 잡아주려면 잡아주고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그거를 하되,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나쁘고 좋은 거는 알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나쁘고 좋은 거를 알면은 그 나쁜 것은 좀 재껴놓고 좋은 생각으로 더불어 같이 이렇게 나갈 수 있는 그 마음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버리지 말고 그것도 한데 넣어서 그냥 좀, 탁탁 뛰어 봐라 이거죠.
그러니까 한 발로 뛰어 봐라 이거예요. 아, 한 발로 한 손가락으로 버텨서 하늘을 받칠 수도 있다고 그랬는데 왜... 항상 여러분한테 그, 체는 공했다. 체는 고정됨이 없이 항상 그렇게 보고 듣는 것도 다 고정된 게 없고, 그러니까 바람처럼 날아간다. 우리 인생은 구름처럼 둥둥 떠서 가는 도중이다. 우린 구름에서 스러져 버리면은... 이런 얘기, 또 탤런트 얘기, 막이 내리면 그뿐이다. 뭐, 별소리 다 해 가면서, 손짓 발짓 다 해 가면서 여러분들과 더불어 같이,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둘 아닌 일대사 인연을 맺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둘 아닌 일대사라면 전체를 말합니다. 내 몸 아님이 없고 내 모습 아님이 없고, 요 벌레라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리 아님이 없고, 그러니까 내 삶 아님이 없고. 이랬으니까 모두가 과거 미래 현재도 없고 그냥 그대로 여여하고 그대로 우리가 둘이 아니다. 이런 인연을 맺으셨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냥 무조건, 예를 들어서 나쁘게 사는 게 아니니까 그냥 점프해서 만약에 수백 명을 건질 수 있다면 점프해서, 건질 수 있다면 점프해라 이거야. 그런데 용기가 없죠. 패기가 없죠. 관습이 많죠. 욕심이 있죠. 습관이 있죠. 그러니까 그냥 거기 말려서 뛰어나가려 해도 뛰어나갈 수가 없어요. 마음이 말입니다. 마음을 마음대로 쓰라고 마음이라고 그랬는데 마음대로 쓰지를 못해요, 마음을 가지고도.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도둑이 들어서, 아침에 도둑이 들어 가지고 전부 죽을 뻔했다고 그래서 친정에 와있다 그래요. 그럼 이 공부하는 사람 같으면 항시 이렇게, 해 놓고 산단 말입니다. 울타리를 쳐놓고. 지금 시대엔 좀 저거 하니까. 우선 내가 만나면 놀라니까. 죽지는 않겠지만 놀라니까. 울타리를 쳐놓고 모두 그저 놀라지 않게, 무섭지 않게, 둘이 아니게 이렇게 울타리를 쳐놓으면 들어올 사람 없거든. 그런데 왜 미리미리 그렇게 마음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를 왜 그렇게 못하느냐 말이야.
지금 지구를 대기권에서 이렇게 망이 쳐져 있는 건 법망이란 말입니다, 법망! 우리 몸에도 법망이 있어요, 이게. 즉 말하자면 세포가 법망이죠. 이 법망이 없으면 사방에서 들어와서 못 삽니다. 세균도 들어오고 영계성도 들어오고 유전성도 들어오고 전부 끼어들어 가지고. 그래서 법망이 있어요. 잘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이런 속에 만약에 양 개체가 따로따로 이렇게 헤어져서 등을 져서 싸우면은 이 집만 무너지게 돼 있어요, 집만. 집만 무너지고 그놈들도 다 죽게 돼 있죠. 그러면 똑같이 또, 인연이 돼서 또 간단 말입니다. 뭘로 태어나든지 또 똑같이 가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천년이 갈는지 수천 년이 갈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아생전에 이거를 다 벗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실천을, 그저 알든지 모르든지 내가 힘이 없다 있다 논하지 말고, 그저 모르는 머슴아이가 물 땅땅 치고 그냥 막 개구장이처럼 놀듯이 그냥, 그냥 점프해서 올라가서 해결을 하고 이래라 이겁니다. 그게 뭘 내가 할 줄 모르고 알고가 없어요. 본래 여기 자불은 본래 있는 겁니다. 자신의 불성이 본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항상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여여한 줄 알고,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갖추어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만법을 들이고 내고 자유자재할 수 있다. 본래 불성이 있으니까 찾을 필요도 없다. 있는 것만 믿으면 된다. 저 나무가 자기 뿌리 있는 걸 믿고 그냥 살듯이,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건데 내가 지금 그걸 믿지 않는, 그게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움죽거릴 수가 없어요.
그럼, 여러분들, 여러분들도 답답한 심정이지만 나도 말로 못 하고 겉더껑이로만 말을 할 수밖엔 없는 이 심정을 알아주세요. 지금 우리가 아까도 얘기하셨지만 아버지가, 만나고 가서 그렇게 편안하게 행복하다고 하시고 그렇게 하셨다는 그 뜻이 그게 눈에 보이는 겁니까, 어디? 그러나 그걸 말로 할 수가 없죠. ‘내가 했다, 니가 했다, 누가 했다, 어떻게 했다.’ 이 이유를 댈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게. 그러니 이 이유를 댈 수 없는 나는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을 보면 답답하지.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그 믿음을 진실하게 갖고, 그렇게 살 양으로만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죽은 세상 산 세상을 왕래할 수도 있고 점프할 수도 있고, 왜 그렇게 계단을 밟아서 꼭 낑낑 메고 올라오려고만 하지, 왜 그냥 뛸 줄은 모르느냐 이거죠. 어차피 체가 없는 ‘나’가 체가 있는 ‘나’를 형성시켜서 자기 집을 삼아서 이렇게 다니는데 왜 그걸 믿지 못하고, 주인을 믿지 못하고 그렇게 그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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