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72_1999년 10월 17일 내 안에 천차만별로 쓸 수 있는 샘물이 있어서
본문
질문: 매 법회때마다 큰스님께서는 커다란 코끼리를 내려주시지마는 저는 아직 아둔해서 코를 만졌다가 다리를 만졌다가 꼬리를 만지고 있습니다. 더욱 열심히 수행 정진해서 큰스님께서 내려주시는 큰 코끼리 통째로 꿀꺽 삼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큰스님 전에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어느 때 어느 공간 어느 모습으로 존재하든지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청출어람 하여서 큰스님 크신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 이 소원과 맹세를 올립니다.
큰스님: 질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질문으로 알고, 이 코를 만지든 귀를 만지든 다리를 만지든 그 모든 몸이 한 군데에, 내면 한 군데서 들이고 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자기, 잡을 것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마는 자기를 그렇게 움죽거리게 하는 장본인입니다. 그게 몸뚱이 하나를 하나로 돌아가게 하죠. 그걸 아셔야 이 우주 전체가 하나로 돌아가는 걸 아시게 됩니다.
질문: 스님께서 앞에 설법을 다 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나 다시 질문 올리겠습니다. 마음의 용(用)에 있어서 원심력과 구심력에 대해서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우리가 보통 살아나가는 데 그런 생각들을 안 하시고 사시죠. 우리가 공생(共生)으로 삽니다. 공생으로 살죠? 우리 몸뚱이 하나를 보더라도 공생입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그 까닭에 공심(共心)입니다. 그러고 또 공체(共體)입니다. 얼마나 그 생명들의 체가 많습니까. 공체입니다. 그리고 이 움죽거리는 것도 공용(共用)입니다. 모두가 분야 분야를 맡아서 움죽거리는 겁니다. 그런데 분야 분야 맡아서 움죽거리는 자체를 공용으로 합니다. 움죽거립니다. 그런데 그 공용으로 움죽거리는 거를 원식에서 이렇게 모든 거를…,이게 즉 말하자면 공식(共食)으로서, 공식이라고도 하고 원식이라고도 합니다마는 이게 이 모든 거를 이렇게 해나가는 데는 우리가 이 살아있는 모습으로서는 이렇게 집어먹는 데도 시간이 가고 그렇지마는 하나를 집어먹어도, 전체를 집어먹어도 이거 집어먹는 사이가 없이 집어먹게 되고, 함이 없이 하게 되고, 주는 사이가 없이 주게 되고, 모든 걸 무너지는 것도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도 한 찰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공식. 원식이 공식입니다, 즉 말하자면. 공식으로서에 우리가 해나가는 데는 그 여러 가지 공생 공심 공체 공용이 한데 모두 어우러져서, 즉 말하자면 원공이지, 원식이지 그게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도저히 그거는 할 수가 없는 거죠. 동떨어졌으니까. 그래서 공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걸 포함해서 전부.
그러니까 따지고 본다면 아주…, 그래서 절에서는 찬불가도 공부하게끔 마음 찾는 길로 이렇게 지어놓고, 또 천도재를 하는 것도 그렇게 해놓고…. 그렇게 해놓지 않아도 할 수 있지만 여러분들이 배우는 까닭에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보이는(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집에서도 그렇게 간단하게 한다면 제사가 돌아와서 뭐 일 년에 몇 번이니 몇 번이니 하고 괴로웁게 생각 안하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원은,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살아가면서 살던 그 습이 있어서 죽어도 자기가 죽은 줄 모르고 사는 거예요. 자기가 죽은 줄 모르고 살기 때문에 먹는 거를 생각하고, 입는 거를 생각하고, 사는 집을 생각하고 이렇게 하게끔 돼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는 친척들로, 인연 있는 집들로 돌아치고 이렇게 하는 문제들이 넉넉히 많기 때문에 이런 거를 그대로, 부처님 가르친 대로 그대로 이렇게 일러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그 모두를 볼 때, 우리도 부처님 한 분만 모셨죠. 한 분만 모셔놨죠. 이 한 분에서(으로) 족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는 보살이라는 이름이 없었단 얘기죠. 부처님의 제자 되시는 분들하고 이렇게 서로 묻고 서로 대답하고 이렇게 하셨지 보살이라는 이름을 내놓질 않았단 얘기죠. 그 후에, 그 후에 보살이라는 이름을 씌워야 모두 가르치겠다 해서 씌운 겁니다. 그게 부처님의 마음을, 마음이 즉 말하자면 할 일이 많으니까 이 부서는 이거 지장으로 이름을 지어서 맡아라, 이 부서는 관세음으로 맡아라, 이 부서는 또는 칠성으로 맡아라, 이렇게 여러 가지로, 가지가지로 맡고 자기의 진짜 보살은 보살이 아니라 연등불이다, 자기 자성불은. ‘자성불은 연등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연등불이라고 한다면 연등불이 자기한테 뜻을 내린 것을 우리가…,부처님께서도 나를 ‘석가가 되라’ 이렇게 하셨다고 그랬죠? 그러한 모두를 이렇게 주신 것이 바로 자기가 자기한테 주신 거라 이겁니다. 그래 깨우친 분들은 다, 얼굴만 쳐다보지 않아도 말만 들어도 벌써 몇 천 리, 몇 만 리, 몇 천 년이 지났어도 알고 있단 얘기죠. 그렇게 되니까 뭐 걸림이 없죠, 모두가. 그러니까 한 분으로, 이 진리는 하나니까 수십 만 명이 깨우친다 하더라도 한 분입니다. 일 불입니다. 일 불이 천체 허공에 꽉 차려도 차고, 일 불이 아주 좁쌀 알갱이만 하게도 될 수 있고 아주 모습이 없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부처님이 없는 것이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너무나 광대해서 저렇게 가만히 앉아계신데도 우리들 몸과 둘이 아니요, 우리들 마음과 둘이 아니요, 우리들의 생명과 둘이 아니요, 우리들과 둘 아니게 항상 이렇게 굴리신다.
그러니까 우리 이 마음이, 항상 너희들의 마음이 지장이 되고 너희들의 마음이 관세음이 되고 너희들의 마음이 모든 부서의 이름을 다 가지고 너희들 자유스럽게 쓰는 대로 써라. 지장으로 될 때는 지장으로 되고, 아버지로 될 때는 아버지로 되고, 또는 부인으로 될 때는 부인으로 되고, 남편으로 될 때는 남편으로 되듯이 보살이 지장이다 관세음이다 이러더라도 내가 거기에 맞춰서 쓸 거는 그냥 그럭하면 지장이 자동적으로 돼. 또 그 부서의 용도에 맞춰서 하면 그냥 관세음이 되고, 그렇게 자동적으로 돌아가요. 그런 거를 갖다가 멀리만 생각하고 여럿으로만 생각하니까 도무지 배울 수가 없는 거죠. 이건 우리가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도리를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교리로서의 경전을 이렇게 한 거는 우리가 살면서 그 도리를 알아가지고 자연스럽게 쓰는 겁니다. 그래서 경과 선이 둘이 아니다, 이런 겁니다. 우리가 몸뚱이와 내 불성이 둘이 아니다. 배와 선장이 둘이 아니듯이, 운전수와 차와 둘이 아니듯이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질문하는 데 대해서 이렇게 얘길 하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렇게…. 그러니 우리가 따로따로 보살을 찾고 따로따로 부처를 찾고 그러지 마시고 부처는 자기 내면의 한 군데 있으면서 우물이 하나 들었다고 그러세요. 내 가슴 속에 우물이 하나, 샘물이 있는데 그 샘물 속에서 그 샘물을 퍼가지고 천차만별로 쓸 수 있다 이런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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