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불교에 관심이 더 많은 까닭은?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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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불교에 관심이 더 많은 까닭은?

본문

질문

불교가 원래 아시아지역에서 시작되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많이 번성하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겉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불교에 대해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고 서양에서는 과학과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지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고 또 불교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종교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 오히려 우리는 무관심해지고 과학도 더 발달되고 문명도 더 발달됐다고 하는 서양사람들은 불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스님께서는 해외 포교도 많이 하시고 그러니 일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살아나가는 것을 볼 때 정신과 물질인 몸이 같이 돌아가야 할 텐데 그렇게 돌아가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삼합이 합쳐서 같이 돌아가고 있는데 여러분의 마음이 항상 이게 옳고 이게 그르고, 그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같이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갔을 때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당신네들이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불교 아닌 게 없다. ‘불(佛)’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기 때문에 풀 한 포기도 불교 아닌 게 없는데 어디 불교가 한 군데에 국한돼 있는 거냐. 당신네들은 생명이 없느냐. 모두가 불교 아닌 게 없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볼 때에 미국의 발전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가, 또 처음에는 무엇으로 인해 성장할 수 있었는가 한다면 바로 영국이라고 볼 때, 영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다 그 활력을 불어넣어 준거라고 할 수 있죠. 그건 왜 그런가? 아주 고생을 할 때는 고통과 가난으로 인해 자기를 자기가 지키지 못하게 되고 자기가 자기를 리드 할 수 없는 그러한 방황이 생기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게 힘들고 나라가 가난한 데다가 그 사람네들은 자기로부터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짙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깐 거기에서 개발이 된 거고 마음으로부터 개발이 된 거지, 과학자들도 마음으로부터 개발이 된 거지 그 마음 떠나서는 개발될 게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을 하는 것도 마음이요, 선하게 하는 것도 마음이요, 개발이 되는 것도 마음이요, 과학자들도 다 마음입니다. 그래, 그 마음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 우리가 연등을 하나 만드는 데도 요렇게 붙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맵시가 있게 해야지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뚝딱 해서 덜 붙이고 비켜나는 사람이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천차만별의 그 마음들이 잘됐다 못됐다 하기 이전에 자기는 자기로부터 안 겁니다. 자기부터 안 겁니다. 이게 바로 정신세계의 통로입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 보면 미국인 대학교수들이나 이런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요, 모두들 철두철미하게 마음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나 가톨릭은 바깥으로 모아 놓는 작업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하고 바깥으로 다 모이게 합니다. 내 죄를 없애 달라고 그러면서, 즉 말하자면 외부에서 찾고 있죠.

그런데 불가에서는 ‘일체 만물 만생 움죽거리는 법이 전부 한 군데서 나고 드느니라. 너부터 알라! 네가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절대로 무효니라, 없느니라. 네가 나왔기 때문에 너로 인해서 상대가 생기고 이 세상이 벌어졌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럼 그 벌어진 일이 누구 때문에 생긴 겁니까? 모두 자기 탓이죠? 그런데 자기로부터 풀어나갈 생각은 안하고 꼭 상대로부터 풀어나가려고 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핀트가 맞질 않는 거죠.

그래서 미국에서 여러 분야의 교수나 박사학위나 석사학위 받을 학생들이 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체험을 통해서 그렇게 말을 해요. 논문 같은 것을 쓸 때 안절부절하고 방황하고 어지럽고 힘드는 것을 스님께서 핵심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편안하니까 논문을 쓸 때도 술술 풀려 나오더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과학자도 연구하는 데에 50%의 보이지 않는 세계, 영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마음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물질 세계로만 연구를 하려니 논문이 써지겠습니까? 반이 보이지 않는 건데 말입니다. 지금 반은 보이고 반은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그걸 모르니까 논문을 쓸 수가 없죠. 그런데 이 마음공부를 해나가던 과학자가 논문을 썼는데 수석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됐던 겁니다. 이게 벌써 십여 년 전 얘깁니다만.

그렇게 많은 분들이 실천을 옮기면서 맛을 알고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갑니다. 간혹 그렇게 실천해 가는 분들을 볼 때면 저도 더불어 기쁩니다. 그래서 ''나에게 감사해 하지 마라. 나는 통로만 일러주었을 뿐이고, 당신네들이 믿고 따르고 갔으니까 그렇지 당신네들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있으며 내가 없으면 당신네들이 있겠느냐? 그러니까 한마음으로 뭉쳐서 실천을 했기 때문에 모순이 없이 참 착실한 우리가 됐지 않느냐? 그러니 한마음에 감사해라.'' 라고 일러줍니다.

그래서 아무리 과학이 발전을 하고 물질문명이 발전됐어도 그건 물질 과학이지 심성과학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질 과학은 한계가 있지만 심성 과학은 한계가 없는 겁니다. 무한계죠. 광대무변하고 묘한 법이기 때문에 세세생생을 가도 손색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시대에 심성의학, 심성과학이 아니라면 앞으로 상당히 살기가 어려워질 거라고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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