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없이 사랑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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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 저는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여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집착하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 보게됩니다. 하지만 집착과 바램의 구분이 무척 힘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집착없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이 마음의 도리를 공부해 나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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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에게 하루살이로 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한다고 모두 말들을 하고 생각들을 하죠. “나는 당신을 사랑해.” “나는 자식을 사랑해.” 누구나가 그저 만나서 좋으면 그것이 사랑이라고들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사랑도 찰나 사랑이 돼야지 착을 두고 사랑을 한다면 그릇이 비워지지를 못해서 진짜 사랑을 못 해요. 마음도 찰나로 전하면서 끝없이 연결되는 원인이, 찰나찰나 만나고 연결되고, 마음과 마음이 연결돼서 이 세상만사가 돌아가니까, 끊임없이 쉴 사이 없이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갈 수 있었던 겁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건 무심(無心)의 도리이고, 말과 말이 연결돼서 돌아가는 건 유심(有心)의 도리예요. 무심과 유심이 어떻게 둘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거하고 말하는 거하고 어떻게 둘입니까?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속일 수가 없지만 말로는 속이는 게 많다는 얘기죠. 하지 못할 말이 많고 말입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나를 끌고 다니는 나의 주인은 진짜로 내가 생각한 것과, 내가 하고 돌아가는 일과, 내가 말한 거를 전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 속마음이 바로 우주 천지하고도 직결이 돼 있다는 얘깁니다. 만물과도 서로 직결이 돼 있고 일체제불하고도 직결이 돼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는 거를 다 알고 있는데 아무리 마음으로 속이려고 해 봤던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르고 지은 죄는 모르게 받고, 알고 지은 죄는 알고 받게 마련이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찰나의 사랑, 찰나의 행, 이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도리를 배우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묘한지 여러분이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하기 이전에 실질적으로 행할 수 있다면, 그대로 진실하게 행한다면, 그대로 진실하게 행한 도리만큼 나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얼른 쉽게 말해서 “내 모습, 이 고깃덩어리를 믿지 말라. 너의 마음속에 안테나를 세운다면 내 주장자와 네 주장자가 둘이 아니니라. 그래야만이 내 주장자를 찰나에 너를 줄 수도 있고, 찰나에 네 주장자가 나한테 올 수도 있다.”고 하신 거죠. 쉽게 말해서 ‘찰나에 통신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만사가 어지러운 것 같지만 아주 간편합니다. 내일 걱정, 어저께 걱정, 오늘 후회, 어저께 후회, 앞으로 살아나갈 걱정을 하느라고 모두 야단들인데 사실은 그릇을 항상 비우면서 찰나 생활로 살라고 하는 건 정말이지 영원한 삶을 갖다 주는 겁니다.
부부지간에도, 부모자식지간에도 찰나 사랑이라는 것은 부드럽게 말해 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고, 서로를 만날 때 둘이 아니게 진정으로 자비로써, 만나도 그 마음이 그냥 그대로 떨어져야죠? 거기다 착을 두면 진짜 사랑을 영원히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것은 주인공 뿌리에게 맡기라고 했습니다. 나무가 푸르르게 살려면 다 뿌리에다 맡겨라. 뿌리는 모든 에너지를 흡수해서 올려보내고, 가장구나 이파리는 위의 모든 에너지를 또 흡수해서 내려보내고, 서로서로 상응하면서 푸르르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다른 나무 뿌리의 이름을 찾거나, 다른 나무의 형상을 믿거나 한다면 그건 기복이지 공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기복으로 한다면 에너지가 다른 뿌리에서 내 뿌리로 올 수가 없는 거죠. 물론 내 나무의 내 뿌리를 믿는다면 그로 인해서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모든 에너지를 흡수해서 올려보낼 수 있지만, 이름과 형상을 밖으로 찾아 헤매다 보면 공덕은 하나도 없다고 달마 대사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소나무가 향나무를 찾으면서 “향나무여! 내가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우니 에너지를 좀 주십시오.”하고 아무리 기도를 해 봤던들 향나무에서 자기 소나무로 에너지가 전해질 수가 없어요. 반드시 제 나무의 뿌리만이 자기 나무를 위해서 올려보낼 수 있죠. 그런데 잎새 하나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전부 뿌리에 매달려서 살면서도 뿌리를 무시한다 이겁니다. 아니, 여러분이 자기 뿌리를 무시한다기 보다는 알쏭달쏭하게 생각하고 못 믿어서 그렇죠. 뿌리만이 나무 전체를 살리고 있다는 거를 못 믿어서요.
먼저 들어왔고 나중 들어왔고, 먼저 배웠고 나중 배웠고 이걸 떠나서, 진짜 물리가 터져서 잘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진실한 마음이라면, 진짜로 믿고 그렇게 하면, 둘이 아닌 도리에서 체험을 하고 가는 것이 바로 참선이며 바로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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