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이 없이 행하며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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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막상 행하려 하면 어찌 할 바를 모르는 문제가 하나 있어 여쭙니다. 일에서 손을 놓고 있을 땐 조금 여여한 듯 하다가도 일을 시작하여 조금만 생각을 하면 그 생각에 사로잡히고, 이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겠다 하면 생각을 놓쳐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함이 없이 행하라’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라’를 어떻게 해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까, 다 놓으라고 하니 이 세상을 살아 나가려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걸 다 놓고 함이 없이 할 수 있습니까 하는 소리죠?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도 얘기했죠. 내 몸 속에 내가 얼마나 많은데 나 혼자 하는 거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몸 속의 생명들을 예를 든 겁니다. 보십시오. 혼자 한 겁니까? 심부름한 거지. 먹이기 위해서, 그 생명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심부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을 버는 것도 못 벌게 되는 것도, 못 벌어서 굶주리게 하는 것도, 돈을 잘 벌어서 잘 먹이게 하는 것도 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 혼자 한 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실 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착하게 그냥 가만히 목석처럼 있어라'' 이러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함이 없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착한 일을 해도 함이 없이 하라 하셨습니다. 너가 한 게 아니라 진짜 너가 한 거니라 그랬죠? 그렇다면 개별적인 너가 한 게 아니라 포괄적인 너가 한 거라는 소립니다. 포괄적으로 했기 때문에 당신 혼자 한 게 아닙니다. 혼자 먹고 살 양으로, 혼자 누리려고 한 게 아니고 이건 공동으로, 포괄적으로 한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했다 하지 말고 내 주인으로서 한마음이, 한마음 속에 주인공이 하는 거니깐 나는 심부름만 해준다 한다면 그렇게 남을 해롭게 하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사람은 해롭게 하지도 않을 거고요. 그렇다고 또한 버리지도 않을 것이요, 아주 규모있게 잘, 즉 말하자면 중도에서 잘 이끌어 나갈 겁니다. 그래서 함이 없이 하시라 이거지, 누가 ‘꼼짝 않고 목석처럼 가만히 있어라’ 이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한마음이 하는 거니까, 주인공이 하는 거란 말입니다.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이 주인공이 함이 없이 하는 겁니다.
물을 먹으면서도 먹은 사이가 없습니다. 내가 혼자 먹은 사이가 없습니다, 여럿이 먹었기 때문에. 보세요, 내가 물 한 모금 먹어도 혼자 먹는 게 어딨습니까? 여럿이서 다 먹고 있죠. 그리고 여럿이만 먹습니까? 내가 먹어서 똥누고 오줌 눈 거를 또 다들 먹고 또 내놔요. 내놓으면 또 수증기가 돼서 올라가서 다시 내려서 또 먹고 그러기 때문에 항상 먹으면 나오고, 나오면 서로 먹고 서로 다 같이 먹습니다.
이 미묘한 도리를 우리가 알아서 챙긴다면 함이 없이, 모두 내가 하는 일이 없이 하는 것이고, 나는 그저 심부름하고 관리인이고 집합소입니다. 난 집일뿐입니다. 그러니까 생명들이 살고 있는 이 집이 망가져도 “너희들이 고쳐서 살어.” 이러는 거나 한가지죠. “주인공, 당신만이 할 수 있다."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이치에 닿나 안 닿나 좀 보세요. 만약에 우리가 집을 지어 가지고 사는데 집이 헐어졌다면 집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고치지 다른 사람이 집을 고칩니까?
자기네 몸뚱이가 속에 있는 생명체들의 집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네들이 들어 있기 위해서 집을 지었고 형성을 시켰고, 고장이 나면 자기들이 들고 있는 자기네 주인들이 고쳐야지, 아니, 집이 집을 고칠 수가 있나요? 그러니깐 모든 것을 거기다 맡겨라 이런 소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근본이 일체 만물만생과도 가설이 돼 있지마는 일체제불하고도 직결돼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우주 삼천대천세계하고도 직결이 돼 있으니깐요. 그러니까 말로 하고 몸이 움죽거리고 그래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함이 없이 하라 이런 소립니다. 함이 없이 하는 도리를 알아서 하신다면 남한테 미움받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그런 도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바깥으로 끄달리지 않고 생활을 그대로 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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