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버려야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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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깨달음을 얻으신 선지식들은 가족도 버리고 집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공부를 하셔서 도를 얻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듯 모든 것을 버려야만 공부가 되는 것인지요? 그렇지 않으면 스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생활 속에서 내 마음을 닦아나가는 마음공부를 통해서도 그러한 경지에 도달을 할 수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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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어떤 사람은 이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내 몸은 생각지 마라 이러기도 하는데 그런 점이 있기도 해요. 그래서 진짜로 공부하는 사람은 한번 미쳤다는 소리 듣지 않고는 못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산으로 다니면서 공부할 때 넓은 길이 길이 아니라 갈대가 많고 온통 그냥 돌수덕 다리인 그런 데가 길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내 속에 스승이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두 말도 안 했어요. 여러분 같으면 대로가 있는데 길이 아닌 데를 길이라고 하면 그거 믿겠어요? 그러나 믿든 안 믿든 그대로 나를 내버렸다면, 내가 죽었는데 무슨 말이 있겠느냐 이겁니다. 내버렸다면, 진짜로 내버렸다면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무슨 상관이냐 이겁니다.
그래서 나는 갔죠. 그러니까 온 몸이 다 찢어지고 벗겨지고 그래서 피가 나고 그러는데도 하나도 생각이 움죽거려지지 않아요. 날 버렸기 때문이죠. 버리려면 아예 그렇게 버리고 안 버리고도 지금 현재의 여러분은 고정됨이 없다 하는 거를 알게 되면 그대로 거기 놓고 ‘나는 내가 아니고 내 주인이 나를 이끌어 간다’는 생각을 하고 다 놓으면 그것도 죽는 거예요. 나도 처음에는 모르고 그랬지만 나중엔 그렇게 해도 죽는 거고 저렇게 해도 죽는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그 밤에 따뜻하게 잤는지 모릅니다. 가다가 길이 막혔는데 천야만야한 데를 한발 내려 뛰라는 겁니다. 그런데 나를 버렸기 때문에 뭐 죽고 사는 거를 가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발짝 턱 내디뎠더니만 뭐 빙글빙글 돌아서 떨어진다는 게 나뭇단 있죠? 예전에는 나뭇단을 묶어서 산 밑에다가 쌓아놓는 데가 있었습니다. 그게 쌓여져 있는 데에 펑 하고 떨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떨어지고 어이가 없어서 엉금엉금 기어 내려와서 생각을 하니까 ‘아하, 고마워! 나무 한 단 빼놓고 그 속에서 자라고 그랬구나! 참 이렇게 신기한 법이 어디 있는가. 내 몸은 모두 너의 시자일 뿐이야. 시자를 따뜻하게 자라고 이렇게 했구나.’하고 나무를 하나 빼고선 들어가니까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을 해볼 때에 나를 버리면 성공한다 이겁니다. 왜냐하면 모두 여러분이 자기가 함이 없이 지금 연기법을 하고 가고 있습니다. 근데 본인 자체가 그걸 알지를 못해요. 살아오던 집착과 번뇌라고 할까 그것이 그냥 그대로 꽁지가 꽁지를 물고 꽁지가 꽁지를 물고 연결되어 돌아가는 거예요, 머리 속에서. 그렇게 연결해서 돌아가더라도 내가 아주 죽었다면 거기에 뭐가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버렸다면 말입니다. 내가 버려서 버리는 게 아니고 이미 그렇게 버려지고 가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미!
그래서 어느 때든지 어디 가서든지 항상 하는 말이 “고정되게 볼 수 있느냐? 고정되게 듣고 있느냐? 고정되게 움죽거리느냐? 아버지 노릇만 하느냐? 어머니 노릇만 하느냐? 남편 노릇도 하고 아들 노릇도 하고 형 노릇도 하고 아우 노릇도 하고 이러지 않느냐? 그러니 그렇게 자동적으로 돌아가지 않느냐”하는 겁니다.
‘아버지’하니까 뭐 아주 자동적으로 ‘그래’하고 대답을 하고 맞아들이는 그 아버지가 자기겠습니까? ‘여보’하면 남편으로서 대하는 그 남편이 자기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깐 그대로 여러분은 연기법을 하고 가고 있습니다. 연기의 공법을 그대로 하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버렸다 취했다 하는 것도 고정돼 있는 법이 아니고 찰나찰나로 돌아가고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일 뿐입니다. 뭐가 붙어 있어서 못하는 것도 아니고 버려서 잘하는 것도 아닌, 본래 그렇게 따로따로 나누지 않는 것인 줄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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