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도를 이루는 과정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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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도를 이루는 과정

본문

질문

『삶은 고가 아니다』라는 책을 통해서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또한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진리를 이렇게 이해하기 쉽고 분명하게 보여주시니 정말 고마울 따름입니다. 스님들께서는 진리를 깨치기 위하여 몇 년씩 토굴에서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수도를 하신다는데 그런 과정을 책으로 보면서 일반 중생이 이 복잡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살면서 이생에 깨달음의 경지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두렵고, 도를 구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꼭 스님이 되어야 이생에 득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고승들의 득도 과정을 보면 실로 일반인들에게는 다른 세계로 보입니다. 근기의 문제이고 업의 문제이겠지만, 일반 중생도 견성을 하여 확철대오 할 수 있는지요. 그것이 생활 속에서도 가능한지요. 또 그것이 어렵다면 생활을 떠나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세속에서 공부를 한다 출가를 해서 승(僧)으로서 공부를 한다 하기 이전에, 내 마음의 근본을 계발하고 발견하려면 주인공 자리를 항시도 놓치지 말고 일체를 그 주처에서 한다는 것을, 또 주처에서 들이고 낸다는 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관을 통해서 주처에서, 한군데서 들이고 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바로 거기에다가 모든 것을 일임하니까 몽땅 놔버리는 게 되는 것입니다.



일체를 놔버리라고 했지만, 일체를 놓아버리면서도 여여하게 살라고 한 거지 여여하게 살지 말라고 한 게 아닙니다. 공했으니까 자기까지도 놔버리라고 하는 거죠. 주처에서만이 움죽거리게 하는 거니까 말입니다. 마음이 움죽거리지 않는다면 육체가 움죽거릴 수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몰락 놔버리라고 하는데 ‘몰락 놔버림을 받는 자는 누구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말로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진실로 주처를 알려면은 주처와 지금 현재의 내가 둘이 아닐 때에 비로소 자유인인 것입니다. 이거는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그럼으로써 이 세상의 생명, 유생 무생이 다 나 아님이 하나도 없을 때, 비로소 내 앞에 있는 인연들도 다, 그때는 자기 마음대로 건질 수가 있다 이 소리입니다. 물질로 건지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의 작용으로 건지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첫째, 속에서부터 내 스스로서 그것을 알고 바깥으로 나오고 바깥에서 들이고 내고 하는 데에 여여하게, 그대로 진실하게 들어가야 되지 않나, 진실하게 한다고 그래서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 배울 때는 진실하게 할 양으로 노력을 해야지 노력 없이 관해서는 안됩니다. 관하는 것도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장님이 지팡이 짚듯이 주인공을 잡고 그렇게 가다가 보면 눈을 뜨게 되니 지팡이는 저절로 둘이 아니게 되는 거죠. 그때는 지팡이를 짚지 않아도 다닐 수 있는 거죠. 그때가 돼야 하지마는, 하여튼 잡은 거조차도 없다고 할 때까지 그 지팡이를 쥐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마음 공부를 해서 깨달으려면 아주 투철하게 해야만 되고, 고가 따라야 공부가 된다 하는 것도 고정관념이에요.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그것도 놓으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걸 먹었으면 이것도 놔버리고 저것을 먹었으면 저것도 다 놔 버려야해요. 빈 깡통 들고 애쓰지 말고, 앞으로 올 것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먹고싶으면 먹고 목마르면 그냥 떠서 마시면 돼요. 그리곤 그냥 다 놔버려요. 하나하나 자기 주처에다 놔버리게 되면, 다 거기서 한다고 놔버리게 되면 톡톡한 게 오는 게 있어요. 그것은 자비의 칼이죠. 시퍼런 자비의 칼이 완벽하게 설 때가 있어요, 그때에 비로소 뜻이 같아지는 거죠.



그러니 열심히 해서 이 도리를 깨우쳐야 내가 하는 이 말이 이해가 갈 거예요. 그러니까 한번 해 봐요. 이 세상에 눈 가지고 코 가지고 남과 같이 태어나서 왜 못해요? 누가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하지 말래나요, 공부를 하지 말래나요, 돈을 벌지 말래나요?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말래나요, 나가 놀지를 말래나요. 다만 일체를 주처에서 한다는 걸 진짜로 믿고 들어가라 이겁니다.



그럼으로써 선(禪)이라는 자체는 내가 한다는 생각 자체도 없어야, 급하니까 빨리 해야지 하는 것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면서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돼야 빨리 성장이 되는 것이고 홀연히 깨우칠 수 있는 것이지, 만약에 빨리 한다, 나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일을 하면서도 일을 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자면서도 잔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보면서도 본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들으면서도 듣는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발로 딛고 다니면서도 다닌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만 가지 법을 손으로 주무르고 일을 했다 하더라도 했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는 것이 바로 홀연히 깨우칠 수 있는 직접적인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맑으면 달이 나타나 보이지만 물이 흐리면 달은 숨어버리고 만다. 맑은 물을 따라 달이 오는 것이 아니고 흐린 물을 따라 달이 가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도 그와 같은 것이므로 마음이 청정하면 부처가 나타나지만 마음이 어두우면 부처가 보이지 않는다. 부처가 다른 곳에서 온 것도 아니요, 부처가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도 아니다. 모든 번뇌를 여의고 마음이 고요하여 맑고 청정하면 부처는 저절로 나타나고 육진의 도적을 막아내고 육근의 작용이 걸리지 않으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청산은 말이 없고 유수는 터가 없는데 자연과 같이 마음이 정중하여 변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라고 써서 공부하는 데 지침이 되도록 했습니다.



이 뜻을 잘 음미해 보시면서 어떻게 해야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해야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도를 이룰 수 있는지 진실하게 생각해보시고, 내 근본을 지팡이 삼아 길 아닌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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