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아야 하는 까닭은?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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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아야 하는 까닭은?

본문

질문

큰스님 안녕하십니까. 어리석은 질문에도 항상 친절히 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스님은 항상 세상과 자신을 둘 아니게 보라고 하시지만, 세상과 둘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저를 욕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저와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도대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서로 뺏고 빼앗기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매일 먹는 밥도 결국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닙니까. 세상은 온통 고통 뿐인거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많은 이의 희생이 있어서겠죠. 결국 제가 누군가에게 잡혀먹힌다해도 대단한 일은 아닌거겠죠. 하지만 그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잘 생각해 보면 모두가 내 아님이 없어서 싸울 필요가 없겠지마는 우리가 미생물에서부터 수억 광년을 거치면서 진화되고 형성되고 또 진화되고 형성되고 해서 고등동물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미생물에서부터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형제가 되고, 이렇게 하기를 헤아릴 수 없이 해 나왔겠죠. 지금도 사람까지 올라와서도 내 부모 아니고는 남의 부모라고 생각을 하는데, 벌레로부터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형제가 있었으니 지금까지 우리가 진화돼서 형성돼 올라온 자체를 볼 때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자식 아님이 없고, 내 몸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모두가 그러한 것이기에 부처님께서는 적대적인 마음을 갖지 말고 항상 한마음으로 살아야 된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 살아나가는 것을 가만히 보면 내 부모조차도 싫다고 하는 세대 아닙니까? 내 부모를 내가 싫다고 할 때 내 자식은 나를 또 어떻게 생각할까 한 번쯤 생각해 보셨습니까? 부처님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이 즉 부처님 법입니다. 우리의 생활 없이 부처님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다 부처님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왜냐하면 고등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다 살아나가는 데 정신계 50% 물질계 50%를 겸해서 정맥 동맥이 같이 돌아가듯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사대 성인들은 말씀하시기를, 예를 들어서 방편으로 말한다면 ‘못났든 잘났든 너부터 발견하라, 너부터 알아라. 참 너부터 믿어라. 자동차가 너라고 하지말고 자동차 속의 운전수가 너다. 너를 발견한다면 운전수와 자동차가 콤비가 돼서 항상 같이 할 수 있어서 살기가 유하니라.’ 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사십니까? 50%의 물질로서만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올라가다 보니까 막히고 걸리고… 다시는 내 마음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살 수가 없는 그런 환경이 돼 버리고 말았죠. 극한 일이 터졌을 때, 앞에 닥쳤을 때 어떻게 대치를 하시렵니까? 여러분이 항상 자동차를 자기라고 해요. 나무로 치면 뿌리를 자기라고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싹을 자기라고 하거든요. 자기가 다라고 그래요. 즉 말하자면 싹은 뿌리에서부터 에너지를 흡수해서 올려보내야만이 싹이 푸르르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꽃도 피고 열매도 무르익어서 남을 주기도 하고 내가 먹기도 하고, 세세생생에 끊임없이 아마 베풀어질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마음이 넉넉해야 넉넉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작으면 작은 대로 작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근본은 우주하고도 직결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만물하고도 가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자기와 자기가, 즉 말하자면 참자기는 부(父)라고 하고 이 몸은 자(子)라고 합니다. 부와 자가 통하면 어느 일체 만물하고도 통합니다. 이 모든 삶을 극복하는 문제도 여러 가지 가지겠지만 이 도리를 알면, 그리고 모르더라도 내 주인공 내 주장자를 쥐고 나가면 그렇게 내 마음부터 편안해집니다. 내 가정이 편안하고 내 식구가 편안하고, 위로는 조상 아래로는 자녀들이 모두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라는 것은 실천이 아니면 도가 아닙니다. 이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다 자격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고 패기가 있고, 능력이 있는 자체가 바로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격과 능력은 아주 문을 닫아버리고 남의 거를 바라고 남의 이름을 찾는가 하면 남의 형상을 찾고 믿으면서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들 있지 않습니까?

상세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거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부처가 이 자리에 있어도 나를 배부르게 할 수 없어요. 똑바로 아셔야 됩니다. 내가 죽을 때에 대신 죽어줄 수 없고 대신 아파줄 수 없고, 대신 똥눠줄 수 없고 대신 먹어줄 수 없고, 대신 잠자줄 수 없고 대신 깨달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됩니다.

못났든 잘났든 여러분이 스스로가 귀중합니다. 나부터 귀중한 걸 알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면, 아마 자기는 영원한 자유인으로 벗어날 것입니다. 그 도리를 완전히 터득하신다면 여러분은 다 남을 위해서 이끌어줄 수 있는 구원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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