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론과 자유의지에 대하여...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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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과 자유의지에 대하여...

본문

질문

부처님 말씀에 ‘자신의 현재를 보면 자신의 과거를 알 수 있고 자신의 미래를 보려면 자신의 현재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지금 닥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은 저의 의지입니까? 아니면 저의 과거의 업에 의한 것입니까? 과거에 의해 현재가 결정된다면 그 현재에 의해 또 미래가 결정되는 건 아닌지요? 업이란 것과 자신의 의지라는 것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입니까? 제가 보기엔 참 상반되고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운명론과 자유 의지론의 차이라고 할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팔자와 운명은 누가 준 것이 아니죠. 만약에 회사를 운영하다가 자기네들이 어제 잘못해 가지고 오늘 회사가 망했다면 그게 남이 망하게 한 건가요? 자기가 망하게 만든 거죠. 그렇게 과거와 현실을 딱 대 보면 그냥 알아지는 거죠,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남의 보증을 서고선 그냥 집을 날리고 온통 야단이 나잖아요. 그런 것도 바로 엊그저께 그렇게 해 가지고 오늘 집을 뺏기고 그 야단들을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그 고통을 누가 준건가요? 자기가 만들어서 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을 잘 써라, 마음의 길을 잘 정해라, 결정을 잘 해라, 자기 마음이라고 그냥 마음대로 쓰지 말고 생각을 잘해서 마음을 써라 이런 거죠. 그래서 한생각을 잘해서 말 한마디를 잘하고, 생각을 잘해서 이끌어가는 바로 다스림의 마음의 선장이 얼마큼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이것은 좋다, 이것은 언짢다 하고 자주 이렇게 개념적으로나 관념적으로 나가다보면 착이 붙게 돼요. 왜 착이 붙게 되느냐 하면, 자기도 모르게 벌써, 오관은 컴퓨터와 같아요. 들이고 내고 하는 거를 책정이 다 된다고요. 그러니까 이걸 털어버리기 위해서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다 교차로의 주인공을 잡고선 모든 걸 몰락 놓으라고 하는 도리가 바로 법망에 걸리지 마라! 이거거든요. 법망에 걸렸다 하면은 이건 체크가 자꾸 되니까, 그러니까 한 생각을 잘해서 만약에 몰락 놔 버린 채로 내가 묵묵히 걸어갈 수 있다면 전체에 녹아 버리는 거예요. 과거 억 겁서부터 수미산 같은 것이 다 녹아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한생각을 잘못하면 수미산을 오히려 씌워요. 모든 것을 씌우기 때문에 자기는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이 지구 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항아리 속에서 항상 벗어날 수 없어서 돌고돌고 또 모습을 바꿔서 다시 돌고 다시 돌고 이러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일체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기 탓으로 알고 나의 근본에 모든 것을 놓아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은 자기 탓이고, 잘못됨도 잘됨도 모든 게 다 자기 탓이지 누구한테 하나도 돌릴 게 없어요. 그런데 자기 탓이라고 돌릴 때, 나는 “아, 참 못나기도 했지! 모든 게 내가 해놓고 내가 누구를 원망하랴!” 했을 때에 비로소 누구를 원망하랴! 하는 것도 내버리게 되는 거죠, 몰락! 그럴 때 아주 편안함을 느끼면서 그대로 여여하게 갈 수가 있어요. 하나도 거리낌 없이 그냥 홀로, 홀로가 아니면서도 홀로이 그냥 여여하게 갈 수 있어요.

그래서 팔자나 운명이나 윤회가 있어서 우리의 삶이 그런 것이다라고 이런 얘기를 할 필요조차도 없어요. 왜냐? 내가 지금 죽었다면, 우리가 지금 죽었다면 그런 이유가 붙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요? 죽질 않았기 때문에 모두 이유가 붙는 거예요. 죽어 봐요! 죽어보면 윤회에 끄달릴 것도 없고, 말에 끄달릴 것도 없고 행에 끄달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서 그전에는 미련스럽게 “죽어야 되나 보다!” 했는데, 그래서 그 얘기를 했잖아요? 죽지 않고 죽는 방법을 알라고요.

그런데 그것을 자꾸 반복하다가, 주인공 하나를 세워놓고, 그것도 이름해서 세워놓는 겁니다, 여기 나올 때도 빈자리고 사라질 때도 빈자리이니까 공(空)이거든요. 안 그래요? 공인데 그 공은 아주 그릇이 비면서도 여여하게 있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이거 하나를 거머쥐고서 여기에다가 그냥, 그 공에서 자기도 공으로 들어가서 다 놔 버리는 거예요. 심봉이 즉, 바퀴를 돌리는 거지, 바퀴가 심봉을 돌리는 게 아니라 힘을 거기 한군데다가 가해라 이겁니다. 모든 걸 심봉한테다 일임해라 하는 거예요. 그러고 바퀴는 그냥 돌아가는 거다 이거죠.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그냥 여여하게 다 스스로 놔져 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행복한 것도 아니고 또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빙긋이 웃음이 나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없게 돼요, 영원하기 때문에. 이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내가 만약에 거짓말을 한다면 이 말 한 마디에 여러분으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요만한 거 하나 에누리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래서 역대의 부처님들과 선지식들께서 말씀하신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너무나 절감이 되면 운명이나 팔자에 끄달려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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