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때 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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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현대불교를 통해서 마음공부를 시작한 불자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금전적인 문제나 사람들한테 어려움을 당할 때나 그런 것은 어느 정도 마음으로 해결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건강의 문제라든가 죽음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는 한마음에 어떻게 의지해서 수행해야 되는지, 어떻게 자기 마음을 관(觀)해야 되는지 그게 의심스럽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사람이 나 하나 죽으면 모든 게 없는 거니까 간단하죠. 생각해 보십시오. 나 하나가 죽는다면 아예 그냥 간단하지 않습니까? 뭐 여러 말 거기 붙을 게 없죠. 그래서 첫 번째도 죽고 두 번째도 죽고, 세 번째도 죽으라고 그런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지금 당장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고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편도 없이 어린 다섯 남매를 데리고 사글세에 들어 있었어요. 우리 절에는 두 번 왔습니다. 두 번째 와서는 “어떻게 해야 삽니까?” 하고선 울어요. “우리 같은 형편에 스님이 그렇게 가르치시는 그 뜻이 저한테도 적용이 되는지요.” 이러고는 묻는 겁니다. 그러고는 “지금 당장 내쫓기게 생겨서 거리로 나앉게 됐습니다. 내일 모레 세간을 다 바깥으로 내놓으라고 그러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마음공부를 적응해서 배우며, 지금 급하게 난관에 처해 있는데 그 공부를 해야만 되겠습니까? 마음공부가 거기에 해당합니까?”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해당하고 말고!” 그랬습니다. “너 하나만 죽는다면 그까짓 것 뭐, 시간이고 애고 어른이고, 다 너라는 것 하나만 죽는다면 된다.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겨놓고, ‘주인공이 죽이든지 살리든지, 볶아 먹든지 구워 먹든지 너 알아서 해라.’ 그러고 아예 그냥 맡겨버리고,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 하고는 그냥 맡겨버리고는 거리로 나앉든지 어떻게 되든지 그런 걸 아예 포기하고 다 놔라.” 이랬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지만 그렇게 못하죠? 그런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정말 벗어나려면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왜? 우리가 지금 죽으러 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한 번 죽을 겁니다. 그런데 죽는 게 뭐가 두렵습니까? 길가로 나앉으면 어떻습니까, 하늘이라는 지붕이 있는데. 안 그래요? 그렇게 다 내던질 수 있는 마음이 되면 오히려 솟아날 구멍이 생기게 되는데 살려고 버둥대는 ‘나’라는 의식들만 잔뜩 쥐고 꼼짝도 못하고 있다면 마음은 마음대로 괴롭고 형편은 형편대로 곤두박질을 칠 뿐인 것입니다. 다 버리면 다 얻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왕 죽으려고 나왔으니 나는 없소 하는 마음으로 한번 크게 쉬어본다면 오히려 삶의 다른 면을 맛보게 되어 한 걸음을 참답게 내디디는 결과가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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