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한 마음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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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항상 공부할 수 있게 이끌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환희심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허탈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이러면 안되지 하고 다시 잡아 나가면서 굴려 놓고 그러는데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마음이 여일하지 못하고 허탈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허탈한 마음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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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그 생명들만 해도 그 의식들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한 두개라야죠. 그러면서도 마음은 색깔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니까 그게 광대무변하다는 얘기입니다. 그 뜻을 생활 속에서 느낀다면 우리가 자유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몸이 집일 수도 있지만 자기의 시자일 수도 있습니다. 즉 종이라고 할 수도 있죠. 듣는 데 따라서, 보는 데 따라서 작용을 합니다. 그러니 각자 여러분의 진실한 그 마음은 어디 가고 그저 나오는 대로 움죽거리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화를 벌컥 내고 누가 조금만 무슨 말을 해도 화를 벌컥 내는 그 마음, 듣고 화내는 마음은 뭐며 또는 내가 이렇게 하면 안되지 하는 마음은 또 뭡니까?
그리고 마음이 부처라고 해서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자만하신다면 나라는 욕심이 들어가서 더 공부를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몸 속에 있는 그 중생들이 누구로 인해서 그렇게 뭉쳐 있습니까? 악과 선이 거기에 다 있다고 보는데 하나의 지배인이 통솔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닦아야 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점차적으로 가다보면은 닦을 것도 없고 또는 다스릴 놈도 없이 여여하겠지만…. 몸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있기 때문에 악업 선업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여러분이 지은 바 그대로…. 내가 그러죠, 입력이 돼서 낱낱이 나온다고요. 낱낱이 나오는 대로 속고 바깥으로 물질에 속고, 보고 듣는 대로 속고 안에서 일어나는 대로 속고 끄달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마음이면 마음이지 왜 한마음이라고 그랬느냐? 우리 몸을 봐도 한마음이요, 바깥에 모두를 봐도 한마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올 때 뼈와 살을 빌어서 몸 하나를 받았지만, 과거에 살던 인과로 인해서 악업도 뭉치고 선업도 뭉쳐서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허탈감이 온다든가 그럴 때에 허탈감도 스스로 조절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기가 올라갈 때는 올라가는 대로 잔잔하게 만들고, 또 내려갈 때는 내려가는 대로 조절을 해서 위로 조금 올리고 하는 그 리듬을 맞춰서 주인공에다 모든 거를, 올라가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다 일임해서 놔 버린다 이거죠.
전자에 선지식들께서는 끊으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요즘은, 배우는 사람에게 끊어 버린다 하는 소리가 아주 극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끊는 게 아니라 안으로 넣어서 굴려라 이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끊으려고 10년 20년 애써도 끊어집니까? 우리가 수시로 생각나고 수시로 행하게 되는 거를 끊으려고 하니 그게 끊어집니까? 그렇게 끊으라고 하니까 그걸로 안단 말입니다. 우리 생활하는 데 생각나는 거를 망상이라고 해서 그걸 끊으라고 하는 것이 자극적인 말이 돼 버리고 말았죠.
그래서 안으로 놔 버려라, 안으로 돌려서 놓으라고 하면은 되는데 끊으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하나는 자극적인 말이요, 하나는 유하게 돌아가는, 리듬을 타고 그냥 놔 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경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걸 끊으려고 해서는 도저히 부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망상을 끊고, 일일이 생각나는 걸 끊고 부처를 이루겠습니까? 그러니 일어나는 마음으로 하여금 공부의 재료로 삼아서 부처를 이루라는 겁니다.
그러니깐 이해가 안 가는 거는 이해가 안 가는 대로 주인공에 놔 버려서 일임해야 하고, 또 아는 거는 아는 것대로 행을 하되 그것도 함이 없이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도 주인공이 하는 거니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거죠. 주인공이 이날까지 해왔고 이날까지 같이 돌아갔는데 그걸 모르니깐 그자리를 발견하라고 일러주는 거 뿐입니다. 길을 일러 드리는 거죠.
그래서 조금 공부를 해나가다 보면 마음의 요동이 없어지고 그대로가 무심한 상태가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나침반을 가지고서 리듬을 타고 높은 거는 낮게 하고 아래 거는 높이고 이렇게 해서 한 군데로 다 놔 버리는 상태니까, 믿고 일임하는 상태니까 그대로 무심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모든 전체가 다 무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행하면 그대로 법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또 거기에다 왜곡을 해서 ‘아! 무심한 상태로 만들어야지.’ 이런다면 그건 이미 무심한 상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대로가 무심한 상태입니다. 육신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말도 영원한 게 아닙니다. 생각하는 것도 영원한 게 아닙니다. 즉 말하자면, 움죽거리는 그 모두가 전부 허망한 겁니다. 순간순간 변하는데 아예 바뀌는 때가 있거든요. 이 몸이 바뀌는 때가 있죠? 그러니까 이것 바뀐다 안 바뀐다는 말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부가 공했단 말입니다. 그랬으니 하나도 한 것이 없으면서도 함이 없이 그냥 하고 있다 이겁니다. 허탈한 것도 그 자리, 즐거운 것도 그 자리라는 것을 알고 한군데로 모으는 작업을 실천해 나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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