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선원이라 이름 지으신 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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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현대불교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처럼 학식도 부족하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부처님 법을 쉽게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황공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한마음선원이라고 이름을 지으실 때 어떤 연유로 한마음이라고 하셨는지와 스님 법문 중에 자주 말씀하신 한마음의 뜻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여쭙고 싶습니다. 사사로운 질문이라 생각지 마시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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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한마음의 뜻이라는 건 소소한 의미의 한마음이 아닙니다. 물론 종지에 담아도 한종지요 큰그릇에 담아도 한그릇이지만, 그리고 또 한바다만큼 담았어도 그저 한그릇이구요. 조그만 거서부터 큰 것까지 전부 한그릇으로 돌아가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한마음으로 돌아가겠습니까? 내 마음은 체가 없는데 무의 세계에서도 그렇고, 무의 세계에서 한생각이 유로 나오고 유에서 또 무로 가고 이렇게 돌아가면서 조화를 이루는 진리, 여러분의 몸만 봐도, 여러분이 마음먹는 대로 속에서 운행을 해줘요. 그걸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맘먹는 대로 속상하게 생각하면 모두가 속을 뒤집어서 나옵니다. 생각할수록 그냥 속에서 이런 게 치밀죠. 여러분이 속상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둘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 그 여럿이서 모두 그냥 일어나는 거죠.
그와 같이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건 내면이나 외부나 모든 것이 전체, 삼라대천세계가 전부 한마음으로 돌아갑니다. 그건 왜?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근본은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니라, 사바세계의 천차만별로 일체 만물만생이 살아나가는 거는 가설이 돼 있는데 그 가설된 근본은 바로 인간의 마음의 근본에 직결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한마음에, 전체가 한마음에 있는 거죠. 그러니 한마음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음 전체를 한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고 내면의 세계의 그 생명들 마음들과 내 마음하고 한마음이 될 수 있고 그런 겁니다.
별성은 마음을 말하지만 혹성은 그 마음을 담은 거를 말하는 겁니다. 전체가 그저 한마음 아닌 것이 없어요. 오고감도 없이 오고가고 이어감도 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과나무도 그렇고 은행나무도 그렇고 모두가 둘이 천리라도 마주보지 않는다면 열매가 안 열리지 않습니까. 벌이 갖다가 자꾸 심어줘야 열리죠. 그 조화를 어떻게 인간이 다 알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이 공부를 통해서 문리가 다 터집니다.
여러분도 남녀가 없다면은 어떻게 자녀들을 생산하겠습니까. 그랬듯이 이것은, 그래서 태양은 일체 만물만생을 소생시키는가 하면 어머니는 산하대지로서 기르고, 가을에 엄마 아빠가 다 씨를 거두어들인다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비구니도 아니고 비구도 아닌 도리를 알아야만이 같이 씨를 거둬들일 수 있고 씨를 뿌릴 수 있다 이런 거죠. 아니 자기네들 뱃속에 조그만 벌레로부터 자기가 그렇게 커졌다는 걸 모르고, 벌레도 자기와 둘이 아니거늘, 하물며 여자라고 이런다면은 자기는 여자 속에서 나왔지 딴 데서 나오지 않았는데 어찌 둘로 나눌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고런 걸 가지고도 분별하는 사람이 어찌 산하대지를 집어먹을 수가 있겠냐 이거죠. 그래서 공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역시 우리는 마음을 좀 더 넓게 가져서 생명 가진 풀 한 포기도 나 아님이 없고, 내 생명 아님이 하나도 없고, 바로 내 모습 아닌 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아무리 잘못하더라도 내가 수억겁을 거쳐오면서 모르던 때를 생각한다면 누구에게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모습이 내 모르던 모습이지 하고 둘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사람도 착해지고 나도 보살이 되는 거죠. 그러니 허술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것을 진실한 뜻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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