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종교인의 불교공부에 대하여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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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인의 불교공부에 대하여

본문

질문

가족 모두가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불교교리와 참선에 관심이 생겨서 가끔씩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생깁니다. 타 종교를 계속 믿으면서 불교를 배우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괜찮습니다. 배우세요. 그런데 단 한 가지, 이론으로만 글로만 경을 보는 거는 말로 이론적으로만 알게끔 되는 겁니다. 학설이라는 건 대기설법으로 그 책을 보고선 읽어 주지마는 스스로깨달아서 삼라만상, 모든 유생과 무생이 다 보이지 않는 데서도 대화를 할 수 있고, 저 날아다니는 새들의 말도 들을 수 있고, 어느 풀포기 하나의 말도 들을 수 있고, 서로가 대화를 할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죽은 사람의 마음도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고, 그 모습으로 나타내서 나투어 다니면서 모든 걸 이익을 줄 수 있고, 산 사람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고, 죽은 사람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는 이러한, 즉 말하자면 무와 유가 둘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서 자유자재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서 기독교를 믿지 말고 불교로 오너라 이런 식의 어리석은 그런 소린 안 합니다. 단지, 어느 교를 막론하고 ‘네 마음을 깨달아라. 네 마음의 주인공을, 바로 주처를 찾아라. 네 주처를 찾지 않는 이상에는 대공의 이치를 아예 모른다.’ 이겁니다. 그런데 모르면 사랑할 수도 없는 거죠. 물질적으로 요거 조금 사랑하는 거요? 그러나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부처님 도량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렇지만 난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 부처님의 모습이 너의 몸이요, 그 생명이 너의 생명이요, 그 마음이 네 마음이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교회에 예수님의 고상이 걸렸어도 그것은 이 세상 돌아감을 뜻해서 바로 인간이 이렇게 돌아가는 이치를 그대로 그려놓은 거다 이거예요. ‘거기에다 집착하지 말라. 바로 자기니라.’ 이렇게 해 준 거예요. 성모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다 해도 그것이, 그 형상이 바로 너의 몸이요, 그 마음이 바로 너의 마음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이렇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도들 중에 천주교를 믿는 친척들이 있어서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린다고 해도 거기 가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거기 가더라도 바로 자기의 심주(心柱)는 그대로 자기 심주니까요. 그 심주 속에서는 모든 전체, 예수 부처 유생 무생이 다 그 안에 들었으니까 걸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넓게 가르쳤지 좁게 가르친 게 아닙니다. 바로 자기 앉아 있는 바로 거기에 부처님이 있고 예수님이 있는 거지 어느 개체를 만들어 놓고 거기 있는 게 아닙니다.



저 나무를 보세요. 나무 이파리가 자기 뿌리를 볼 수 있나요? 흙에 가려서 못 보죠? 사람도 그와 같이 자기 신을 못 보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믿어라 이 소립니다. 포괄된 전체 신이라는 건 하나로 돌아가니까 그 신을 믿어라 이거예요. 그럼 전체의 신이 한데 합쳐진 대공이다 이거예요.



뭐 부처님께선 옆구리로 나셨다고 하지만, 옆구리로 났다는 건 어떠한 뜻에서 옆구리로 났다고 하느냐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이해해야 돼요. 잘 살펴야 돼요. 부처님 경전에 그렇게 있다고 해서 고렇게만 들어서도 안 돼요, 또. 옆구리로 나왔다 하는 것이나 기독교에서 갈빗대를 추려서 났다 하는 거는 중도를 말하는 거예요, 중도! 아래도 아니고 위도 아니다. 전체의 대공을 말하는 거예요.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어요. 그대로 영이에요.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실상이라는 거는 평등하면서도 살아있다는 얘기예요. 영에 빠지지 마라. 보이지 않는 거를 영이라고 한다. 그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린 여여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아마 모두들 방귀 뀌어보지 않은 분은 없을 거예요, 그렇죠? 그렇게 방귀는 여여하게 뀌었는데 잡을 수도 없고 빛깔도 보이지 않았다 이겁니다. 방귀는 뀌긴 뀌었죠? 그거예요, 바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소리는 났는데 그 소리가 난 자체가 바로 영원한 대공의 이치예요. 붙잡을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면서도 여여하게 그렇게 소리를 냈다 이 소리거든요.



그래서 여기 다니는 분들은 모두 ‘한마음주인공, 당신이시여! 모든 것은 일체 당신이 하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참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일체 먹는 것을 모두에게 다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하고 관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감사함도 거기다 감사하고, 일체 혼자 해 먹는 게 없거든요. 물이 없어도 해 먹을 수 없고, 불이 없어도 해 먹을 수 없고, 땅이 없어도 우리가 걸어다닐 수가 없고, 공기가 없어도 살 수가 없고, 산소나 또는 바람이 없어도 살 수가 없으니 그 모두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모든 사람의 손 인력이 다 감사한 겁니다. 그 외에 자기가 손을 놀려서 번 게 감사한 겁니다. 그건 모두가 원동력이 하나다 이거예요. 그럼 전체 감사하지 않은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모둠으로 해서 결국은 그걸 하나님이라 존칭할 수도 있고,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고, 그 주처를 마련해 놓고 공부하는 겁니다. 전체 개별적인 주처가 아니라 포괄적인 주처 말입니다.



그래서 포괄적인 주처에다가 개별적인 자기가 사량으로서의 말을 해서 자꾸 잠재해 있는 자기 실상을 계발하는 거죠. 그래 놓고 보면 눈으로도 그 능력이 나가고 귀로도 나가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도 있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판단해서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모든 보이지 않는 데 맛도 알 수 있고, 그래서 오관을 통해서 오신통이라고 하죠. 그 오신통은 마음의 부속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오신통을 통해도 도가 아니라고 했어요. 그건 부속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그걸 이렇게 말을 해보죠. 만약에 참나, 영원한 실상의 마음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오관을 통해서 들이고 낼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인군이라고 하고, 오관을 통해서 하는 걸 나라고 한다면 나 없어도 안 되고 신하가 없어도 안 되고, 인군이 없어도 안 되죠. 그래, 고게 합쳐진 것이 지금 사람 하나예요. 인체로 비유한다면, 보이지 않는 참나가 있고 보이는 나가 있다 이거예요. 근데 보이는 나는 안 보이는 나의 생리적인 작용밖엔 해 줄 수 없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움죽거리지 않는데 육체가 움죽거립디까?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형식에 끄달리는 모든 이름을 떼어버린 채, 우상화하는 이름을 떼어버리고 자기 자신들을 모두 알라 이런 소리예요. 그건 이름뿐이에요. 자기 마음과 남의 마음이 얼마나 통하고 있는가를 한번 시험해 보시라는 겁니다. ‘내가 친구를 꼭 만나야 할 텐데 꼭 친구를 만나게 해!’ 라든가 이렇게 한번 자기 주인공에 놓고 지켜보는 노력을 하시라는 겁니다. 종교라는 이름에 끄달리고 형상에 끄달리지 말고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가든지 바로 자기가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유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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