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小空)과 대공(大空)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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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법어집인 『한마음요전』에 보면 소공(小空)과 대공(大空)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그 뜻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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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옛날에 이런 점이 있지요.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고 나서 하도 이 말 저 말이 많으니까 “이 세상에 둥근 공이 있는데 공을 누가 움죽거리게 하느냐? 또 그 공 가운데엔 티끌만한 공이 있는데 그 공을 누가 쉬지 않고 튀게 하느냐?” 이렇게 물어보셨더랍니다. 그랬는데 한 사람도 대답을 못하더랍니다. 그러니깐 그것을 알면 모두 다 알 수 있으니 여러 말 하지 말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더랍니다.
지금 이 말을 부처님께서 하셨다고 하기보다도 우리를 지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진리가. 진리가 우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해 주시고 우린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이 떠다니는데 우린 그 공 속의 공과 같습니다, 티끌 공. 그 공이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그 쉬지 않고 돌아가는 그 공이 자기 공, 티끌만한 공 속에서 자기가 빠져야 큰 공 속에서도 빠지죠. 그러니까 어렵다고 생각 마시고 아주 간편하고 쉽게 생각하세요.
그래서 우리가 ‘안으로 들여서 모든 걸 몰락 놔 버려라’ 하는 것은 부정으로 들어가는 길이죠. 부정으로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긍정으로 나오게 하려면 들이고 내는 것을 지켜봐야 이것을 확실히 알게끔 되는 겁니다. 자기가 탄생을 다시 하는 겁니다. 우리 지금 이렇게 사는 거는 탄생한 게 아닙니다. 육신을 형성시킨 것뿐입니다.
공에서 형성됐고 그 형성된 자체가 바로 공으로 돌아간다는 거를 모름으로써 이론이 많고 방황하게 되고, 이것은 자기 육신을 하나도 이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즉 말하자면 자기 중생입니다. 자기 중생 하나 이롭게 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첫째 자기한테 자기가 인가를 받아야, 자기를 몰락 죽이고 인가를 받아야 상대의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인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다시 죽어야 그것은 양면에서 하나가 돼 가지고 다시 또 인가를 받는 것이죠. 그래서 소공의 인가를 받아야 대공의 인가를 받을 수 있고 대공의 인가를 받아야 바로 내가 내가 아니면서 전부 내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너지 통은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다 이겁니다.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깥으로 찾으면서 관세음보살이니 문수보살이니 지장보살이니 모두 추구하고 구원을 받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안에서 그 에너지 통, 삼각형으로 된 에너지 통은 바로 내가 그렇게 확신하면서 거기에서 모든 것을 들이고 낼 줄 안다면 이게 스스로서 둥그러진단 말입니다, 전체가. 그게 바로 소공에서 대공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삼보에 귀의한다 이러는 것도 그 삼각형의 에너지 통에 귀의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주인공의 그 실상 자체와 더불어 내 마음, 분별하는 마음과 육신과 삼합이 한데 합쳐진 삼각형이거든요, 이게. 그러니까 여러분이 다 그 삼각형의 에너지 통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에서 구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으냐는 겁니다. 안에다가 코드를 꽂고 안에서 구원을 받게끔 하고, 감사한 일이 생겨도 거기다가 감사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자기 나오기 이전 참자기 에너지 통이거든요. 그러기에 받을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만약에 어제 먹은 이 컵의 물이 부처님이라면 이건 어제 먹은 컵의 물이에요. 그런데 어제 먹은 컵의 물이 있었기 때문에 먹고 그것이 바탕이 됐다 이거예요. 그래서 오늘의 물이 또 있게 됐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뒷생각이 끊어져야 될 거 아니에요? 그것이 왜 그러냐. 이 컵의 물은 바로 앞의 물이 돼버렸으니까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이것이 없어진 게 아니라 앞으로 왔다 이겁니다. 이걸 끊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시 바꿔져서 여기 또 왔다는 걸 모른다 이거예요. 앞의 물은 방치해 두고 뒤의 물만 생각을 하고 자꾸, 자기가 먹고 돌아선 뒤의 물만 생각을 하니까 앞의 물이 생기질 않는 겁니다. 그리고 받아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나 계발을 하는 데는 내가 현 시점에서 그 모두를 바탕으로 삼아서, 주춧돌로 삼고 길잡이로 삼고 그렇게 하는 반면에 그 길잡이가 모든 것을 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계발을 또 해야 되지 않느냐 이겁니다. 어저께 계산한 거를 또 오늘에 가서 계산을 한다면 되느냐. 어제 계산한 건 어제 계산한 것대로 어제 계산한 거지 오늘 계산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오늘 계산을 하는 거는 오늘의 나로부터 계산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럼으로써 과거의 계산과 미래의 계산이 여기 오늘의 계산으로 합쳐지는 것이 삼각형입니다. 그래서 삼각형이 법이라면 둥근 것은 대공의 열반의 나툼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열반이란 것은 나툼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없어서 無자로 돌린 게 아니다 이거예요. 너무 꽉 차 있기 때문에 이것도 됐다 저것도 됐다 조것도 됐다 요것도 됐다 하니깐 ‘평등 공(空)’이다 이거예요. 그러니 꽉 찬 공이다 이겁니다. 그래서‘무’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 무 하나에서 수만 가지가 소생되는 겁니다. 나고 죽고 나고, 생사가 여기에서 나오는 겁니다. 공을 모르고는 대답 한마디 할 것도 없고 질문을 할 것도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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