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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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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 사는 겁니까?

본문

질문

스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궁금증은 12년 전부터 가져왔고 또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하였으나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해 스님께 감히 이런 무례한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힘든 세상 왜 살아야 합니까? 먹기 위해 사는 겁니까, 살기 위해 먹는 것입니까? 매일 근심걱정에 싸여 사느니 목숨을 끓어버리면 아무 고통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사실은 살기 위해 먹는 것도 아니고 또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우리는 지금 걷고 있는데, 목마르면 그대로 물을 먹고 갑니다. 내가 먹기 위해서 사느냐 하는 그 생각을 하기 이전에 벌써 목마르면 내 앞에 놓인 물을 바로 먹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 내가 이 물을 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그 생각을 하기 이전에 벌써 먹어버렸으니 무어라고 말을 해야 될까요? 그러니까 그런 말은 군더더기가 되죠. 그래서 여러분이 내가 살기 위해서 먹나, 또는 먹기 위해서 사나 이런 걸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 하기 이전에 벌써 먹었고 변소에 갔고 벌써 다 치웠으니까요.

그러니 그렇다 저렇다를 다 맡겨 놓으세요. 내가 있기 때문에 참나가 있고 참나가 있기에 그게 근본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근본. 근본은 우주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거기에다 맡겨 놓고 가신다면, 내가 아는 거 모르는 거 할 거 없이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놓고 여여하게 가게 됩니다.

그냥 거기에 맡겨 놓으십시오. 아는 것도 참자기가 알기 때문에 아는 거지 자기 겉껍데기가 생각이 없다면 목석입니다. 생각을 낼 수 없는데 목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생명이 없으면 송장이죠. 육체가 없으면 안 보이니까 무효구요. 그러니 삼위일체가 무효로 돌아갑니다. 삼위일체가 구성돼서 같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이라는 게 들어가죠. 바닷물도 한 그릇이라고 할 수 있고, 사람 하나가 전체 우주라고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실험도 해 보시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 말로만 얘기 하지 마세요. 무조건입니다.

아니, 형상을 믿으라고 했습니까,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까? 허공을 믿으라고 했습니까, 이름을 믿으라고 했습니까?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를 믿으라는데 왜 못 믿습니까? 차가 운전수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어요? 운전수가 차를 끌고 다니니까 구덩이에 처박는 것도 운전수지 다른 누가 그러는 건가요? 기름을 넣는 것도 운전수요, 차를 거꾸로 박는 것도 운전수요, 좋은 길로 끌고 가는 것도 운전수입니다. 그러니 어떡합니까? 거기를 믿고 모든 것은 거기에 맡겨 놔야죠.

여러분이 만약에 장님이라면 여러분의 참자기는 눈 뜬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눈 뜬 사람을 쫓아가야죠. 바로 여러분이 눈 뜬 사람이자 눈 뜨지 못한 사람입니다. 왜? 물질세계를 육안으로만 봐서 알 수가 없으니까요. 심안으로 봐야 됩니다. 그래서 심안과 육안이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이 공부를 해서 나를 발견하면 심안이나 육안이나 둘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이 공부를 모른다 하더라도, 일단 내가 지금 가랑잎이 떨어질 때가 서서히 와 가지고 가을 벌판을 걷고 있거든요. 그런데 뭐이 그리 원통해서 자기 주인공 믿으라는데 왜 못 믿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노인네가 되셨으면 애가 될 거고 애가 됐으면 늙어질 겁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고 영원히 사는 게 없습니다. 내가 그런 소리를 가끔 잘 합니다. 낙엽은 떨어졌을지언정 어찌 나무 뿌리가 죽을 수 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서 가랑잎이 다 떨어졌지만, 그 나무는 내 마음의 봄이라고 생각하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락없이 봄이 오면 싹이 트고 물이 오르고 그러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물질 아닌 참나를 발견함으로써 바로 현상으로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이 물질 아닌 주인공과 물질인 나와 둘이 아니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진짜로 믿는다면 무의 생각이 현상으로 나오게 되죠. 무심으로 보이지 않고 남이 모르게 생각을 했는데 바깥으로 내가 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생활의 과학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러니 딴 데 가서 찾지 마시고 우리 생활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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