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음의 단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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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놓고 지켜보는 관법에도 모든 것을 놓는 단계, 둘로 보지 않는 단계, 일심에서 무심으로 되는 네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그렇게 놓아가는 과정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한 단계가 끝이 나야지 또 새로운 단계가 다시 다가오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물론 놔버리는 것도 단계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차원이 다 다르고 생김생김도 다르고 또 생활해 나가시는 방법도 다릅니다. 부처님의 법은 똑같지만 생활 자체를 해나가시는 것은 다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해나가는 분이 있고 저렇게 해나가는 분이 있습니다. 이걸 잡숫고 싶어하는 분이 있고 저걸 잡숫고 싶어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하는 데에 매달리지 마시고 아주 지극하게 일임해서 놓을 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무여(無如), 일여(一如), 여여(如如), 즉여(卽如) 이것을 사구로 나누어서 이렇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따로따로 찾을 게 없어요. 우리가 자유권을 얻으려면 다 타파를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귀 따로 눈 따로, 코 따로 입 따로 이렇게 찾는 거나 똑같아요. 이름만 다르다 뿐이에요. 그대로 듣고 그대로 보고 그대로 하고 그러는 거지, 보고 먹지 못하는 거는 소용이 없는 거예요. 보고 내가 행할 줄 알아야 즉시, 즉각이에요.
사제법에도 고집멸도가 그것이 ‘고(苦)’ 이러면 ‘고만 없어진다면…’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배낭만 놓는다면…’ 하는 소리거든요. 인생이 나올 때에 고의 배낭을 짊어지고 나왔는데 그 배낭을 놔야 하지 않겠는가. 또 배낭을 지고 간다면 요다음에 나올 때 또 배낭을 짊어지고 나오지 않느냐, 그러니 그 배낭 안에 고집멸도가 다 들어 있으니 그 고덩어리, 이 몸 가는데 뭘 나에게 착을 붙이고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거 내 자체만, 하나만 놓는다면 집도 없어지고, 즉 말하자면 착이라는 거죠. 멸도 없어지고 도도 없어지는 거다. 그런다면 만(卍)자처럼 둥글둥글 그냥 돌아가니 그것이 바로 자유인이며 젊음을 가져오며 삶을 가져오며 영원한 삶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구공법’ 하면은 벌써 한순간에 그냥 한순간에 왔다 갔다 함이 없이 그냥, 우리가 이런 게 있지요. 삼십 방망이를 맞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음식을 여러 가지 놨다 이거예요. 한 삼십 가지 놨다. 그런데 음식이라는 것이 그 음식은 다 똑 같으나 음식 맛은 다 다르지 않습니까? 자기가 먹어봐야 아는 거지. 맛을 알라는 거죠. 음식을 보라는 게 아니거든요. 음식의 이름을 가지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음식을 가지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 맛을 알라는 거예요. 맛!
여러분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사람들한테 속기도 하고 사기도 당하고, 반면에 안 당하고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자기가 사기를 친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주인공에 방하착 할 수 있는 진실한 마음을 갖고 있는 그런 분들은 나중에는 참자기의 감응이 와서 그걸 그렇게 하라 그래도 안 그럴 겁니다. 또는 안 그런다 하는 마음조차도 없고 한다 하는 마음조차도 없이 슬그머니 보이지 않는 데서 다, 오온에 칠보(七寶)가 가득히 차 있듯이 그 모든 것이 다 저절로, 가난도 면할 것이고 병도 물러날 것이고 자기의 뿌리로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겁니다.
그 뿌리엔 자식의 뿌리도 있고 부모의 뿌리도 있는데 뿌리는 다 똑같이 공(空)이다 이겁니다. 만강에 달이 비쳐도 그 달이 한 달에서 비쳤지 여러 달에서 비춘 게 아니듯이 말입니다. 만강에 수많은 달이 비쳤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달에 불과합니다. 결국 하나의 달에 불과하다 이겁니다.
그러나 그 달이 만강에 비칠 수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게 달이다 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하나의 달이 하나의 달일 뿐이냐? 아니다, 만강에 비칠 수 있는 달이다 이겁니다. 그렇다면 때로는 달빛이 만강에, 즉 말하자면 만 달이 될 수가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한 달이 될 수가 있고, 달이 하나가 될 수가 있고 달이 만 개가 될 수가 있고요. 이렇듯이 인간의 마음도 한마음이 될 수가 있고 여러 사람들이 내 아님이 하나도 없을 때는 바로 여러분과 같이 한마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꾸자꾸 찰나찰나 나투기 때문에 그 마음 하나도 없느니라 하고 바로 ‘무(無)!’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해만 가서 되는 것이 아니니 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공자리에다가 놓아버리세요. 모든 것을 공에다 놔버리라는 것은 왜냐? 예를 들어 만약에 장님이 있다고 한다면 장님은 지팡이가 없이는 못 갑니다. 그러니 공에다 놓지 않는다면 장님의 눈을 밝게 할 수 없는 것이고 겨우 지팡이 하나 쥐어 주는 것밖엔 안 되죠. 그래서 공에다가 이름을 붙여서,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거기다 다 놔버린다면 바로 여러분에게도 그 뜻이 풀려 공도리(空道理)도 알 수 있으며, 바로 인에 의해서 연도 생기고 그렇게 돌아가는 자체가 바로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걸 알 수도 있구요. 그 마음을 쓰면서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연이라고 할 때, 그 연에 따라서 인연의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아실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행하고 듣고 보고 하는 그 결과가 바로 여러분한테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절에 다닌다고 하면서 건성 다니지 마시고 정진 열심히 하시고 진실하게 믿으셔야 합니다. 진짜 불법이라는 것은 우리가 방귀 뀌면은 방귀 뀌는 소리는 반드시 났는데 방귀 뀐 사이가 없이, 어디로 온데 간데가 없듯이 그런 거나 마찬가지인 게 ‘참진리’라고 봅니다.
우리의 삶은 꿈이자 현실이고 현실이자 꿈입니다. 생시도 꿈이요, 꿈꾸는 것도 꿈이면서도 생시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꿈에 얽매이지도 말고, 현실 일도 꿈으로 보시고 얽매이지 마시고 공에다가 모든 것을 놔버리는 방하착을 하신다면 진짜 참자기의 감응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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