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과 공양미 삼백 석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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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과 공양미 삼백 석

본문

질문

며칠 전에 절에 가서 하얀 영가 등을 도량에 설치하는 운력을 스님들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곱고 하얀 등을 하나하나 달 때마다 부족한 저를 있게 한 부모님과 조상님들이 너무나 감사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졌던 심청이의 눈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바쳐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던 심청이처럼 저희 불자들도 해마다 다가오는 백종을 어떠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지내야 조상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공양미 삼백 석이라 그러는 건요, 과거심과 현재심과 미래심이 한데 합친 일심으로써 공덕이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미래에 올 것이나 지금 현재 모든 마음이 한데 합쳐서 현재의 내 마음으로써 물질과 더불어 같이 말입니다. 즉 말하자면 여러분이 공덕이 되게 하지 못한다면 삼백 석 아니라 삼천 석이라도 그것은 공덕이 아니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말씀드리기를 우리가 공생하고 있고 공심으로서 공체로서 공용을 하고 있고 공식하고 있다는 말을 가끔 하죠. 그러니깐 그것이 그렇게 우주와 더불어 나와 더불어 일심으로서 같이 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주어져야 그것을 공덕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스님께서 너는 삼백 석을 시주를 해야만이 그것이 공덕이 돼서 너의 아버지 눈을 뜨게 한다고 했던 겁니다. 그러자 그것이 진짜로 공덕이 돼서 우주간 법계에서 서로가 마음이 돌아서 한마음으로서 책정을 했던 거죠.



그러니 모든 하늘의 이치나 일체 신들, 또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더불어 무수한 능력이 시주하는 사람에게 일심으로 한꺼번에 한마음으로 들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우주가 들렸다는 얘깁니다. 우주가 들리는 공덕을 지었으니 그 어찌 눈을 뜨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취를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말하듯이 몸이 죽으리만큼 마음이 지극했을 때,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내가 물에 빠져서 죽는다 할지라도 나는 서슴지 않겠다는 그 마음이 눈을 뜨게 한 거지, 그 몸이 죽어서 눈을 뜨게 한 건 아닙니다. 육신이라는 것은 마음의 시자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이 갸륵하고 아름답고 정성이 지극한, 부모를 위한 정성이, 지극한 마음이 자기를 바로 쥐었기 때문에 살린 것입니다.



자식을 기를 때, 여러분이 부모로부터 길러지고 또 길러보시고 또 지금 현재 나서 기르고 이러는 분들도 숱하게 많으시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뱃속에 넣고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사람이라는 게 부모를 생각할 때에 낳아준 것만이 공이 아니라고 하지만 거기도 약간의 문제가 있는 거죠. 길러주는 은혜, 첫째 뱃속에 넣고 만 9개월을 지내는 그 은혜도 수월치 않습니다. 또 낳았을 때에도 낳아서 잘못됐는가 잘됐는가 하고 걱정을 하면서 자기의 성치 않은 몸을 이끌면서도 어린애를 들여다보고, 또 이것이 금방 나서 잘못되지나 않나 또는 병이나 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몸을 닦아주고 씻어주고 하면서 만지는 그 은혜는 어떡합니까. 여러분이 생각을 깊이 해 보신다면 참으로 은혜라는 것이 생각할수록 한이 없는 겁니다.



또 그뿐입니까. 젖은 기저귀를 빼고 마른 기저귀를 끼워주는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는 길러주지만 아버지는 보수(保守)를 항상 태양과 같이 그렇게 내려다보시니 양면이 다 길러주십니다. 그뿐인가요? 오줌을 싸서 젖으면 그것을 빼서 자기가 뭘 깔고라도 눕고 어린애를 또 자기 마른자리에 있는 요에다가 도로 옮겨 눕힙니다. 그럭하면서 기저귈 빼고 끼고 빼고 끼는 하는 은혜가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지마는 또 기르면서 나가 놀 때에 다치지나 않나, 또는 어디 구덩이에 빠지지나 않나, 애들하고 싸우지나 않나, 음식을 먹고 체하지나 않나 등등…. 맛있는 거는 또 먹이고 맛없는 거는 자기가 걷어먹고 이렇게 하는 건 은혜가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항상 있는 일입니다. 그 사랑은 말도 못하죠. 어떤 부모든지, 나쁜 부모든 좋은 부모든 자기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아마 한계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자식이 자라가지고 성장해서 공부를 하는 데도 공부를 어쩌면 잘해서 우리 아들이 잘될까? 어디를 나가면 혹시 나쁜 사람들하고 어울리지나 않나, 누구한테 매나 맞지 않나, 또는 나쁘게 돌아가지나 않나, 공부나 잘하고 있나, 지금 공부를 한다고 하고 있나, 또 딴 데로 가고 있나, 병이 나면 어쩌나…. 항상 먹는 거든지 입는 거든지 모든 게 어머니의 정성이고 아버지의 정성이라.



이렇게 은혜를 받고 성장해 가지고 사회에 나갔던들 출장을 가면 출장을 가는 대로 잘못되지나 않나, 또 나가서 피곤하지나 않나, 훌훌 털고 돌아올 때는 얼굴을 쳐다보고 어머니가 눈치를 보면서 피곤해서 병이나 나지 않나, 또 회사에서 어떻게 뭐가 좀 잘못되지나 않았나, 장사를 하는 자식이라면 또 오늘 뭐나 좀 어떻게 팔았나, 그게 안돼서 상심이나 하지 않나 하고 걱정하면서, 땀을 흘리면 땀을 흘리는 대로 몸이 너무 쇠약해서 그러지나 않나 하는 생각에 눈치를 항상 보면서 한시도 놀 사이가 없이 걱정을 해주시는 부모들의 그 마음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래서 자식이 나이가 먹어서 그 자식을 낳아도 어린애로 보이는 겁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귀중한 사랑입니까. 그러니 우리가 칠석의 만남이 있어서, 만날 수 없었던 걸 만나서 사랑하면서 또 애를 낳아서 기르는데 그렇게 돌아갔단 말입니다. 근데 그 자식들이 어떡해야 되겠습니까?



자식들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 목련존자는어머니가 마구니 소굴에 있는데 그걸 건지려고 하다가 자기 힘으로는 문이 안 열리니까 부처님께 가서 말씀드리니 “네 힘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더 길러서 문을 열도록 해라.” 이렇게 해서 마음의 힘을 길러 지옥문을 열어서 어머니를 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모를 건질 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던져서 성심으로 지극하게 했던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모로부터 햇빛을 받아가지고 자기가 자랐는데 어떻게 갚아야 묵은 빚을 갚느냐는 얘깁니다. 그럼 자기가 묵은 빚을 갚을 때는 벌써 햇빛을 주고 있을 때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죠? 묵은 빚을 갚을 때는 벌써 햇빛을 자기가 주는 땝니다, 거푸 말하지만. 자기가 묵은 빚을 갚지 못하면 햇빛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자기 한 것만큼이니까.



여러분이 한생각에 착한 마음을 쓰고, 착하다고 해서 무능하게 하란 말은 아닙니다. 눈을 새파랗게 뜨되 겸손하게 뜨고, 항상 겸손하게 뜨되 착한 마음으로 한생각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마음이요, 바로 부모를 섬길 수 있는, 묵은 빚을 갚을 수 있는 마음이고 묵은 빚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은 햇빛도 잘 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햇빛을 주는 마당에서 이자의 이자가 불어서 거기서 바로 묵은 빚을 또 갚게끔 만들어주는 자식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백종이라고 하는 날을 역력히 생각해 보면서, 내가 항상 이런 말씀을 드리죠. 부모의 눈치를 봐서 속이 상해 한다면 듣기 싫은 말씀을, 좋은 말이라도 자꾸 하면은 신경이 쓰이니깐 말을 하지 말고, 또 말을 해서 남이 좋은 말이라면, 거짓말도 좋게 할 수 있는 거짓말이라면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부부지간에도 언제나 좋은 말을 해주면서 나쁜 것은 안으로 굴려라, 업보나 인과응보나 죄업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 내가 만약에 놓을 수 있다면, 만약에 응달지고 꾸물꾸물하고 날이 궂은 거를 업보라고 한다면 그 업보는 금방 없어지고 볕이 납니다.



그런데 왜 업보가 있다고 해서 죄업을 사해 달라고 하면서 잠재의식 속에 그 습을 항상 두고 있습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생각해서 업보를 지어놓고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내놓으라고 해도 내놓을 수 없고 바로 그 업보를 그럼 내놔 봐라, 죄업을 사해 달라고 하는 그 마음을 내놔 봐라 한다면 내놓지 못합니다. 그러니 한생각을 잘해서 한발 뛰어넘는 것을 잘 뛰어넘는다면, 우리는 앞도 끊어졌고 뒤도 끊어졌고 오늘의 ‘나’라는 존재도 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여여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자체가 그대로 무심·유심 세계가 둘 아니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듯 정신과 물질 몸이 둘이 아니게 돌아가고 있으니 항상 하얀 백종이죠. 그러니 해마다 하는 거라고 백종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시고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불을 밝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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