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많은 데 깨달을 수 있는지?
본문
질문
죄와 업이 이토록 많은데, 저 같은 사람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여러분이 과거에 살아나온 것을 생각하면서 ‘양심이 허락지 않아. 내가 잘못한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데 내가 무슨 도를 이루랴!’ 이러지 마시고, 나쁜 것 좋은 것이 다 한군데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지금부터라고 열심히 공부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됩니다. 그러니까 한군데다가 그냥 양면을 다 놓으시고 가는 거예요. 그대로 우리가 지금 현실에 놓고 가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붙잡고 늘어지는 거예요, 그걸! 본래 놓고 가고, 본래 자기 자신이 바로 자불인데, 자불이 자기를 형성시켜서 이렇게 고등 동물로서 쓰고 단 거를 알게끔 형성시켰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쁜 거 좋은 것이 반반 섞여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뜨듯이, 저녁이 되고 또 아침이 되듯, 건강하고 건강치 않고, 잘되고 잘못되고, 길고 짧고 넓고 좁고, 이런 게 모두가 그냥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진행하고 있으니 거기에 겁내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냥 자기가 봐서 ‘이걸 이렇게 해야겠다’ 하면 누구한테 묻지 마시고 거기다가 물으시고 거기다가 놓으세요. 그러곤 그냥 해나가는 것이 정법이에요.
그렇듯이 그냥 놓고 가는 겁니다. 그런데 왜 붙잡으세요? 마음으로 어저께 걱정 내일 걱정, 이렇게 만날 하고 지내니까 ‘태어나면 고(苦)다’ 이런 말을 하는 거죠. 태어나도 태어난 사이가 없단 얘기예요. 왜냐? 보이는 데서 심부름 하게끔 자기 몸을 자기가 형성시켜 놓은 거기 때문에 그냥 공체란 말입니다. 공체! 내 몸속에도 생명들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은 과거로부터 인연을 이어서, 청법가에 ‘새 인연을 이어서’ 이렇게 나오죠? 그래서 과거도 없다. 왜냐하면 지나갔으니까. 현재로 이어진 거예요. 그럼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현재로 이어진 거구요.
그러니까 현재에 모두 우리가 공했으니까, 함이 없이 하는 거니깐 걱정하지 말라 이겁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걱정을 하지 말고 그냥 ‘이것도 그 자리에서 하는 거니깐 그 자리에서 알아서 해라. 죽이든지 살리든지 너 알아서 해라.’ 하고 거기다 놓고는 부지런히 심부름만 하면 돼요. 물에 떠내려가든지 섰든지, 하여간에 말입니다. 한계가 있는 몸뚱이는 언제든지 죽습니다. 영원하지 않아요. 그러나 실질적인 자기의 자신은 영원히 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토록 이끌어 줄 수 있는 보배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재차 얘기하지만, 내 불성은 본래 영원하다, 내 부처는. 본래 이 세상 돌아가는 거는 크다 작다가 없다. 왜냐?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듯 하니까. 나쁜 거든 좋은 거든 바람처럼 나가 버리니까요. 그런데 자기 양심이니 뭐니 찾고선 거기다가 부착을 시키니까 이거는 외려 사람의 마음이 낙오가 되고 의욕이 없어지고 걸음이 잘 떼어지질 않아요. 그냥 나쁘든 좋든 싹싹 쓸어버려야죠. 본래 진리라는 게 싹싹 쓸고 가는 거예요. 거기 남는 게 뭐 있습니까. 마음은 체가 없어서 한 자체가 없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다고 하겠지만, 최상승에 이르려면 그렇게 하세요. 잘못하고 잘한다는 양면을 다 놔라. 본래 진리가 양면을 놓고 가는 거다 이런 겁니다. 본래 양면을 놓고 가고 본래 고정된 게 없이 화해서 찰나찰나 나투면서, 보는 것도 나툼이요, 바로 듣는 것도 나툼이요, 찰나찰나 나툼이고 찰나찰나 함이 없이 하는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법도 없고 공도 없고 다 없다’ 하는 뜻은 뭐냐? 여러분은 과거를 생각하고선 그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에 있었던 거를 걱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걸 걱정을 하고 이럽니다. 우리가 과거를 생각하면서 살아온 집착, 관습, 욕심, 그 모든 게 부착이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는 그것이, 그대로 일체 만법이 다 그러하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과거를 생각하면 그게 업이 되고 과거를 생각지 않고 그냥 뛰어넘으면 업이 아니라 도입니다.
그러니깐 과거는 묻지 마라, 이런 소립니다. 과거를 묻지 말고 우리가 한 발짝 한 발짝 떼어 놓는데 뒷발자국이 자꾸 없어진다는 거를 알면, 내가 항상 그런 말을 하죠. 보는 거 듣는 거 말하는 거 만나는 거, 가고 오는 거, 모두가 함이 없이 하는 거니까 거기에 집착을 두지 말고, 고난을 고(苦)라고 생각하지 마시라고요, 지나간 거니깐. 그렇게 모두가 공해서 돌아가는데 내가 ‘어저께 참 몹시 잘못했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벌써 한 발짝 떼어 놓고 두 발짝 떼어 놓은 셈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떼어 놓은 거니깐 잘못한 것도 거기서 한 거고 잘한 것도 거기서 한 거니까 그냥 무효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돌아가면 그냥 컴퓨터에서 지워지면서 바로 그 마음이 그냥 입력이 되는 거죠. 그러니깐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그 99%가 정말 고등 동물이라는 데서 오는 거죠. 그러니깐 우리가 산다 죽는다도, 내일 죽더라도 걱정을 하지 말라 이겁니다. 왜냐? 자기를 형성시킨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지 심부름꾼이 뭘 그렇게 생각을 할 게 있습니까? 한 발짝 떼어 놓고 없어지고 한 발짝 떼어 놓고 없어진다는 것만 잘 아시면 나쁜 것도 법이고 좋은 것도 법이고, 잘못하는 것도 법이고 잘하는 것도 법입니다. 그러니까 그 양면을 다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도입니다. 그런데 양면을 다 놓으려면 과거에 잘못한 것도 자기가 놔야지, 본래 진리라는 것은 놓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놓고 가는 걸 붙들고 괜히 애를 쓰겠습니까
- 이전글밖에서 찾지 않아야 하는 이유 21.10.25
- 다음글마음공부 바르게 하는 방법은? 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