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바라밀을 완성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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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불교에서는 보시행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사홍서원에 ‘중생무변서원도’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한없이 많은 중생을 대상으로 어떻게 보시행을 해야만 보시바라밀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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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그래서 ‘무변’이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무변! 이 마음을 말입니다. 나는 항상 그렇게 여러분한테 말씀드립니다. 또 나 자체가 그렇게 살아왔구요. 남에게 뭐를 줘도 내가 그걸 받으려고 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보시가 아닌 겁니다. ‘내가 이걸 줬으니까 너 잘되면 나한테 꼭 잘해야 돼.’ 하고 주는, 말로 그렇게 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그렇게 바라고 합니다. 형제지간도 그렇고 친구지간도 그렇고.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그러면 보시가 아닙니다. 뒤를 보지 않는 보시, 무엇을 바라지 않는 보시, 그리고 자기가 했다는 생각이 없는 보시여야 남도 살리고 나도 사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일체 만물만생이 한마음으로 공생 공용 공체 공식화 하고 돌아가는데 어떤 걸 할 때 내가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한 것도 아니고 네가 한 것도 아니고 전체 한마음으로서 모두가 같이 천연적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러니까 한마음의 살림살이인데 내가 특별나게 ‘내가 줬다, 내가 한다, 내가 했다’ 그러고 한다면 보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쪽에서 받고서 ‘이거 이렇게 줬으니까 이거를 보답을 해야 할 텐데….’ 하는 거는 정한 이치로, 그것은 인연에 따라서 참 잘 생각하는 거라고 봅니다. 착한 마음이죠. 그러나 준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보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내가 줬다, 내가 했다, 너는 내가 줬으니까 반드시 나한테 잘해야 된다.’ 이런 마음이 없이 하는 게 보시입니다.
그리고 마음 보시가 더 중요합니다. 물질 보시보다도 마음 보시가 중요합니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하다못해 다리가 성치 않은 사람들이 장사를 하느라고 무엇을 끌고 다닌다거나 또는 성치 않은 사람이 그릇을 놓고 좀 달라고 한다거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달라고 한다거나, 또 몸은 성해도 그냥 가정이 엉망이 되고 편찮은 사람이 많고 이래서 쩔쩔매는 사람, 부모가 없이 그냥 사는 애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뒷생각 앞생각도 하지 말고 그대로, ‘나도 수억겁을 거쳐 올 때에 병신도 됐었을 거고 못나기도 했었을 거고 또는 모자라기도 했었을 거고 장님도 됐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게 겪어 나온, 과거에 그렇게 겪어 나온 바로 내 모습이로구나!’ 하고 바로 내 모습처럼 생각하고 그냥 앞도 뒤도 없이 보시할 수 있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즉 보시입니다.
시주하는 것도 나한테 갖다가 주는 게 아니고 내가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갖다 주는 거라면, 내가 받았다고 하지 않고 자기가 갖다 줬다고 하지 않는 시주라면 이 삼천대천세계 일체 만물만생의 마음이 한데 합쳐진 한마음의 근본, 바로 불바퀴의 에너지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시주를 할 것 같으면, 만 원을 했다면 십만 원 내지 몇 곱쟁이가 불어 갈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시주가 아니고 개별적인 스님의 고깃덩어릴 위해서 어떠한 착을 가지고 이렇게 시주를 했다면, 그리고 또 자기가 했다는 거를 생각하고 했을 때는 아무리 대궐 같은 큰 집을 지어 주었다 할지라도 그건 공덕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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