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근중하게 수행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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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께서는 지금 당장 하늘이 두 쪽이 난다 하더라도 내 근본 주장자를 믿고 웃을 수 있어야만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저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금만 저에게 손해가 돌아오거나 고통이 온다면 방방 뛰기 일쑤이고 가볍게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생활 속에서 일체를 놓치지 않고 근중하게 수행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그것도 그렇죠. 누가 지금 빨래를 하는가, 장을 보는가, 누가 지금 밥을 짓고 있는가, 누가 남편하고 만나고 있는가. 그렇게 항상, 밥을 한 그릇 떠먹을 때도 마음에다 참구하고 먹으면 그냥 먹는 밥이 아니게 됩니다. 걸음을 걸을 때나 다닐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항시 생활할 때에 내가 밥 한 숟가락을 뜬다 하더라도 무겁게 떠져요. 가볍게 떠지는 게 아니에요. 마음을 참구하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량으로서 내가 그냥 밥을 홀랑홀랑 떠먹는 거하고 마음에 참구하면서 밥숟가락 드는 거하고는 다릅니다. 아주 근중 있게 떠지고 근중 있게 움죽거리게 되고, 말도 근중 있게 하게 되고 무겁게 값비싸게 되지요. 값싸게 되는 법이 없어요. 울어도 값싸게 울지 않고 값비싸게 울게 되죠. 왜냐하면 안으로 참구하니까 주인과 더불어 울기 때문이에요. 현재의식이 우는 게 아니라 잠재의식과 식이 같이 울기 때문에 눈물도 값비싼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겁니다. 다니다가 비가 막 쏟아진다 할 때도 값싸게 강중강중 뛰어가질 않아요. 옷에 비가 막 흘러서 줄줄 흐른다 할지라도 값싸게 걸음을 걷지 않고 값비싸게 무겁게 걸음을 걷게 되지요.
그래서 천둥 번개가 친다 하더라도 값싸게 강중강중 뛰면서 ‘아이구, 천둥 번개가 친다.’ 그러고 어디로 막 뛰어 들어가는 게 아니라 눈도 하나 깜짝 안 하고 내 마음의 주인과 더불어 같이 터벅터벅, 그러니까 비가 오든 억수장마가 들든, 또 눈보라가 치든 또는 천둥 번개가 치든 자기가 걷던 걸음 그대로 걷게 되지요. 팔짝팔짝 뛰어 가지 않아요.
이게 마음의 주인과 더불어 일상생활을 전부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자기 마음의 주인에게 모든 거를 참구하고 들어가라 이거예요.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내는 주인이시여!’ 하구선 안에다 참구하고 들어가면 안에서 바깥으로 분산이 되지 않고 안으로만 참구가 돼서 거기에서 합일이 되고 마음의 계발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항상 계발이 되어야지 바깥으로 분산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재차 말하지만 내 마음에다 참구하고 마음의 주인이 진짜로 믿어질 때 천둥 번개가 쳐도 절대로 빨리빨리 걸어지질 않고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거죠. 옷에 비가 맞고 이러는 거, 소리 들리고 이러는 거 하나도 거기에 관여하지 않게 돼요. 그러면 그 백사 만사를 다 누가 하는가 이겁니다. 그게 소위 마음의 주인이 하는 거예요. 마음의 주인이 하는 걸 알고 참구하고 들어간다면 바로 완전히 잡히게 되니까 그때 비로소 삼세 우주 법계가 다 같이 공하다는 걸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내가 아프면 약사보살이 될 수 있고, 무슨 죄가 생겼으면 신중이 될 수 있고, 검사 판사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가난하면 관세음보살이 돼 줄 수 있고, 물에 들어가서 배를 타고 갈 때에 폭풍이 불면 내가 바람 부처가 돼 가지고선 바람을 막아 주고, 그럼으로써 내가 용왕이 된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어떤 급한 일이 생겼다 이럴 때는 마음의 주인한테 모든 거를 일임해 버리고 놔 버려라 이겁니다. 그럼 거기에서 다 해결할 수 있다 이겁니다. 보이지 않는 데서는 내 마음의 주인이 다 해결을 하고 보이는 데서도 마음의 주인이 움죽거리게 한다 이거예요, 모든 일체를 다 말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도 자기가 마음을 잘못 먹어 가지고 구덩이에 빠지는 수도 있어요. 그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이 문제지, 절에 오고가고 이게 문제가 아니에요. 보시를 많이 하고 적게 하고 이게 문제도 아니라 오직 마음이 문제다 이겁니다. 마음이 그렇게 부족하면 남한테 벌써 잘한다 하면서도 남한테 좋지 않게 하는 수가 많습니다. 자기가 자기 하는 일을 모르니까요.
그래서 하나하나 일거일동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주인이 하는 것이니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항상 그 마음을 변치 말고, 자기 믿는 마음을 변치 말고 항상 타의에서 구하지 말라 이겁니다. 어느 누가 있어도 타의에서 구하게 되면 마가 생겨서 달려든다 이겁니다. 그렇게 해서 집안이 산란해지고 우환이 생기고 그러는 걸 누구한테다 항거하느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이 산란하여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면 살림도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고, 마음이 차분하게 자기 자신의 마음 주인한테 탁 일임시키고 중심을 잡고 있으면 항상 걸어가도 무겁게 걸어가지고, 바람이 불어도 끄덕도 안 하고 그냥 무겁게 걸어갈 수 있어요. 삼 톤 무게가 돼요! 그러니 아무리 바람이 불고 비바람이 친다 해도, 삼 톤이라면 얼만 줄 알아요? 삼만 톤이라도 돼요. 삼만 톤이 무겁게 걸어가는데 어디 바람에 쓸리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그냥 가볍게 사량으로서 ‘아이구, 이러면 좋단다, 저러면 좋단다.’ 이러면 중심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삼만 톤이라는 게 무겁질 않고 그냥 가볍게 됩니다. 그러니 땅에 발을 딱 디디면 삼만 톤이라는 무게가 무겁게 디뎌져야 비바람이 불고 뇌성벽력이 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걸어갈 수 있는 겁니다. 가볍지 않고 무겁게 말입니다.
그래야 생활도 무겁고 값비싸게 돌아가고 내 몸도 값비싸고 무겁게 광채가 바깥으로 나며 향기가 나오고 여러 사람한테 이익하게 되는 이치가 있는 겁니다. 자기 중생을 자기가 이익하게 하니 어찌 남한테 이익이 안 돌아갈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중생이라는 것은 항상 남을 접하고 상대를 두고 살아나가는데 어찌 해가 남한테 가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향기요, 그것이 빛이요, 그것이 능력이요, 그러니 그것이 보살행이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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