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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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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취업재수생입니다.

본문

질문

저는 취업재수생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떳떳한 직장을 잡아 부모님 호강을 못 시켜 드리더라도 남들에게 부끄러운 자식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계속되는 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후배들이 또 사회에 흘러 들어올 텐데 자신이 없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 힘들고 길가에 떨어져 누운 낙엽처럼 저 자신이 이 사회에서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할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비유해서 말하자면, 여러분이 항상 차를 타고 다니시죠? 만약에 여러분이 시발점에서 버스를 탄다면 타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탈 때 내리는 사람도 있고 내가 내릴 때 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동시에 내리고 타고 하는데 말입니다. 동시에 내리고 타고 하는데 항상 내리는 게 걸리지 않으면 타는 게 걸리고, 타는 게 걸리지 않으면 내리는 게 걸립니다. 그런데 자동적이 아닙니까? 자동적으로 내리고 타는 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상대성의 원리라고도 하구요. 우리 몸에 정맥 동맥이 없으면 이어서 돌아갈 수가 없듯이 말입니다.

그럼 자동적으로 내리고 타고 하는데 그 가운데에 누가 내리고 타고 할 수 있게끔 마음을 가졌느냐는 얘깁니다. 그 마음은 어디까지나 자유스럽습니다. 우리를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했고, 자유롭게 행하고 삶을 살 수 있게끔 돼서 사람이라 그런 겁니다. 사람이라고 했던 것은 바로 그 체가 없는 마음을 맘대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유스러운 자기 마음들을 가지고도 자유스럽게 못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습에 매달리고, 안된다는 데 매달리고, 된다는 데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차를 타는 데도 매달리고 내리는 데도 그냥 저절로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왜 끄달립니까? 내가 갈 데 있으면 묵묵히 타는 거고 또 내려야 할 때 묵묵히 내리면 되고 이러는 거지, 밖에 참섭 안에 참섭, 이거 내리는 거 저거 내리는 거, 남이 내리는 거 오르는 거 다 참섭하면서 온통 걸리고 돌아가니 마음을 자유스럽게 쓸 수 있겠습니까.

내 육체를 여래의 집으로 삼고 산다면, 한마음의 심봉은 자유스러운 겁니다. 자유스러운 건데도 여러분은 생각하는 대로 여기 매달리고 저기 매달리고 끄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끄달리는 겁니다. 그런데 되는 것만 귀중하고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안되는 것은 ‘이게 또 안되는구나!’ 이렇게 걸리는 겁니다. 안되는 것도 법, 되는 것도 법이 아니겠습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어저께 밤에 모두 주무셨죠? 오늘 낮에 하루 일을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하루 살기 위해서 밤에 잘 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두들 잤습니다. 그런데 밤과 낮이 어디 마음으로 볼 때는 둘이겠습니까? 묘한 점은, 낮에 여러분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한 것이 그대로 반영되고 자동적으로 입력이 돼서 밤에 잘 때는 육신을, 집을 팽개치고 그 의식들이 나가서 온통 자기가 생각하고 행하고 말한 대로 움죽거리고 돌아가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일을 안 저지르게 생각을 했다면 안 저지르게 행동을 하는 것이고, 저지르게 생각을 했다면 저지르게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또한 잘 때는 육신을 내버리고 하니까 제한도 되지 않습니다. 낮에 입력이 된 대로 털구멍을 통해 나가서 활약을 하는 거죠. 나쁘게 생각했다면 나쁘게 모든 걸 이어서 가져오게 만들고, 좋게 생각을 했다면 좋게 인연을 맺어서 가져오게 만들고, 화가 나지 않게 모든 걸 거기 놓고 갔다면 밤에 잘 적에도 화가 나지 않게 수습을 하고, 이렇게 항상 내가 하는 대로 원숭이처럼 쫓아간단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말하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 입력이 돼서 원숭이처럼 그냥 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이 따로 있고 낮이 따로 있다고 하겠습니까? 또 정신이 따로 있고 육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러니 잘되는 것도 주인공에다 놓고 안되는 것도 주인공에다 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시발점 종점으로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타는 시발점에서도 내리는 사람이 있고 내가 내리는 종점에서도 또 시발점으로서 타는 사람이 있고, 동시에 타고 내리는데 어떠한 것을 안된다 된다 이런 말로 소홀히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안되는 것도 되는 것도 다 법입니다. 그러니까 안되는 것은 나의 뜻을 보기 위해서 안되는 것이니까 나를 아주 튼튼하게 반석처럼 가르치기 위한 테스트라고 생각하고 그걸 재료로 생각하신다면 너무나 감사하고 또 믿고 거기다 놓을 수 있습니다. 또 되는 거는 되는 거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해야죠. 우리가 타는 것만 법이고 내리는 것은 법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여러분 생명을 유지하고 나갑니까.

일체가 다 그러하니 여러분의 체가 없는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안되는 건 안된다고 야단입니다. 내릴 때는 내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부득부득 타고만 간다면 그건 또 잘못되는 일이죠. 그러니 타는 것도 내리는 것도 둘이 아니에요. 그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니 바로 내 마음이에요. 그 마음이란 놈이 얼마나 묘하고 광대무변한지 모릅니다. 시공을 초월해서 바로 마음을 마음대로 할 때에 비로소 만물의 영장이면서 바로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천차만별의 생명들이고, 천차만별의 모습들이고, 천차만별의 마음 씀씀이를 가지고 차원대로 가고 있는데 왜 스님은 별나게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놓으라고만 그러십니까, 그러겠죠? 어디 길을 지나가다 분수를 보셨습니까? 분수에서 물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묵은 물이 겉으로 나오고 겉의 물이 묵은 물이 되고 이렇게 한군데로 나와서 한군데에서 흩어지면 흩어지는 대로 또 모여서 거길 통해서 또 나오죠? 통하는 데는 한군데밖에 없어요. 들어가고 나오는 구멍이 한군데밖에는 없어요. 거기를 거치지 않으면 일체 모두가 이어지지 않아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내려가면 올라가고 올라가면 내려가고 이렇게 하는 게 아주 정상입니다. 아래로 들 때는 저녁에 잠을 자는 것이고 위로 올라올 때는 낮에 일을 하는 것이고 그렇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게 낮과 밤이 없으면 못 살듯이 그렇게 작용을 하는 것이 그대로 법입니다. 그대로 법이에요. 그런데 그대로 법을 이끌어 나가는 데는 마음의 채찍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전부 잘되고 못되고, 잘하는 거고 잘못하는 거고, 이건 나쁜 일이고 좋은 일이고를 전부 잘들 아십니다. 잘들 아니까 그거를 잘 다스려서 ‘이게 나쁘게 되는데 이렇게 잘 돌아가게끔, 맑은 물이 나와서 먹게끔 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 하고 거기 놨을 때에 비로소 우리가 움죽거리면서 채찍질해 가면서 자유스럽게 살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도리가 엄청난 도리라고 생각하시고 열심히 하세요. 이 공부를 못하면 아예 세세생생에 발을 빼지 못할 그런 문제들이 지금 압도적으로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도리를 잘 생각하고 몰록 그 자리에 놓고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잘 해결해서 악업, 업식 무명 속에서 벗어나 세세생생에 자유인이 돼서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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