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참답게 살아가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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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참답게 살아가려면...

본문

질문

‘인생은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살아야 한다.’는 카뮈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무의미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아나가는 것 같습니다. 진정 삶이 무의미한 것인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참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내세울 게 없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 몸속에 헤아릴 수 없는 생명과 의식과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억겁 전으로부터 우리가 진화돼서 형성됐다는 증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몸이고요. 그 속에 천차만별의 모습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까? 그런데 몸속에 있는 그 모습들 중의 하나가 만약에 큰 물체로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들이 축소돼서 모두 여러분의 몸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에게 인과성 업보성 유전성 영계성 세균성, 이 다섯 가지로 주둔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주둔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러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마음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인과로서 몸에 모두 주둔이 돼서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생각난다고 해서 생각되는 대로 ‘내 마음에서 나오지.’ 이렇게 생각은 마세요. 그거는 그 다섯 가지의 의식 속에서 다 나오는 것입니다.

진짜 자기의 심봉이라는 선장은 바로 불(佛)이라고도 하고 부처라고도 하고 자아라고도 하고 주인공이라고도 하고, 이름이 많습니다마는 그 선장은 바로 움죽거리지 않으면서 중심에 끼워져 있는 심봉과 같은 겁니다. 수레 중심에 끼워져 있는 중심축입니다. 그걸 주장자라고도 합니다. 그 심봉은 힘을 배출해 줄 뿐이지 부동한 것인데 바퀴가 모두 거기에 의지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수레라고 본다면 부처님 자체, 근본이 그 심봉과 같은 겁니다.

그런데 ‘시공이 없이 돌아간다’고 하는 뜻이 뭐냐 하면, 우리가 생각할 때에 보는 거 듣는 거 말하는 거, 가고 오는 거 만나는 거 먹는 거 싸고 자는 거,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고정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고정되게 하는 게 하나나 있나. 그렇기 때문에 내가 했다, 내가 들었다, 내가 망했다, 내가 잘되게 했다 하고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 이 소립니다.

어떤 거 하고 어떤 거 볼 때에 내가 하고 내가 봤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가정에서도 본다면 때에 따라서 부인에게는 남편이 되고 자식들한테는 아버지가 되고 부모에게는 아들이 되고…. 이렇게 찰나찰나 나투어서 돌아가듯이 인생살이가 그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공이 색이요 색이 공이니라. 그 공마저도 공했느니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불교라는 자체가 광대하고 어마어마해서 말로는 어떻게 할 수 없고, 말로는 어떻게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수없는 진화를 해 왔습니다만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바로 자기 모습, 자기 차원이 주어지는 거죠. 인생이라는 것이 망망대해에 배 띄워 놓은 거와 같고, 살얼음판을 딛고 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구덩이에 빠질 수가 있고 물에 빠질 수가 있고, 배가 뒤집힐 수도 있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도 여러분의 몸을 배로 비유했고 몸속의 생명들을 중생이라고 했습니다. 마음들이 의식적으로 모두 한 심봉의 선장으로 합쳐 주지 않는다면 배는 뒤집히게 돼 있죠. 한마음이 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체 만물만생 중에 무정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뿌리 없이 사는 싹은 하나도 못 봤어요. 그렇듯이 여러분도 영원한 자기 선장의 뿌리가 있는데도 그 선장을 믿지 않고 타의에서 구한다면 백 년 만 년이 가도 자기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어떠한 마음을 쓸 때에 올바로 했느냐,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했느냐에 따라서 내 마음 자체도 천차만별로 하는 사이 없이 나갑니다. 고정됨이 없어서 하는 사이 없이 하고, 가고 오는 사이 없이 가고 오고, 보는 사이 없이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내가 했다’는 생각도, ‘내가 안 했다’는 생각도 그냥 묵묵히 놓고 가라는 겁니다.

바로 자기 몸뚱이, 생명의 집합소가 하는 게 아니라 생명 속의 그 생명을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그 주인이 합니다. 그 주인을 부처라고도 하고 자기 주인공이라고도 합니다. 타의에 있는 게 아니라 모두 자의에, 나로부터 세상은 있는 겁니다. 사대 성인들이 다, “너부터 믿고 너부터 알아라. 너를 알아야 하나로 돌아가는 이 우주의 섭류도 다 알 수 있느니라. 너를 모른다면 어떻게 남을 알 수 있으며 우주의 섭류를 알 수 있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마음이 묘하고 광대한 것을 여러분은 모르고 착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좋다. 일거수일투족 들어오고 나가는 거, 내고 들이는 거, 그것을 하는 놈이 누구냐? 네가 하지 않느냐. 바로 네가 한다면 네가 어떤 거 할 때 너라고 할 수 없으니 바로 주인공이다. 그러니 주인공에다 모든 걸 맡긴다면 일체가 무너진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과학이 발전됐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이 발현되지 않는 이상 진짜 실천할 수 있는 과학을 연구 못할 겁니다. 무(無)의 세계, 정신세계의 50%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의학계도 그렇습니다. 50%를 모른다면 그 반만 가지고 사람을 100%로 건질 수가 없습니다. 모두 살고 있는 것도 99%지, 100%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그래서 죽는 것도 건지는 거요, 살리는 것도 건지는 겁니다. 헐었던 옷을 벗어 버리게 하고 진화해서 다시 새 옷을 입게 되니까 그것도 건지는 겁니다.

건지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여러분은 모르실 겁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차원도 모습도 가져올 수 있고, 어느 집에 어떻게 인연이 되느냐에 따라서 바로 자기 인생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이미지를 끝까지 어떻게 남기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세세생생에 주어진다고 봅니다.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세세생생 주어지는 것이니까 창살 없는 감옥에서 헤매고 돌게 될지, 자유인으로 살 건지는 자기 자신에 달려있습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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