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의 오안에 대해서...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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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의 오안에 대해서...

본문

질문

저는 현대불교의 ‘길을 묻는 이에게’ 란을 통해 스님의 설법을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을 보면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이 나옵니다. 그것들이 각각 어떻게 다른 경지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찌하면 그러한 경지를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오신통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타심통 천안통 천이통 신족통 숙명통 이렇게 말입니다. 근데 그것이 모두 누진에 딸린 수하예요. 누진에 딸린 수하. 심부름꾼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오신통에서 벗어나야, 내 모습 통에서 벗어나야, 누진을 통해서 자유스럽게 할 수 있다 이런 건데. 이 누진이라는 건 뭐냐. 바로 지금 현재에 컴퓨터 같은 거예요. 입력되는 컴퓨터. 그래서 여러분이 다 컴퓨터를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자동적인 컴퓨터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컴퓨터를 가지고 다니니까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하는 것이 그대로 입력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 입력되는 것이 온 우주의 전체에 다 퍼지는 거죠. 여러분이 아시는 것이 다 음파를 통해요. 그래서 거짓말을 못하는 거죠. 거짓말을 한 거는 자기만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알기 때문에 전체가 알게 된다 이 소리죠. 이게 우스운 말 같지만 너무나 현명하고 너무나 현실이고, 너무나 현실에 그러한 문제들 때문에 죽어 가고 모두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뒹굴고 그러는 거 보면요, 너무나 기가 막히죠.

사람도 똑같고 눈도 똑같고 다 똑같이 생겼는데 어째서 한생각이 틀리다고 그래서 저렇게 살까 하는 생각이죠. 그래서 눈으로 보되 이 육안으로 보는 거는 지금 물질세계만 보는 거지만 심안으로 봐라. 심안으로 본다면 정말 심안으로 또 듣는다 이런 거죠. 그래 심안으로 들을 줄 안다면, 공부가 돼서 심안으로 들을 줄 알게 되고 보게 된다면 바로 천안으로도 보게 되고 혜안으로도 보게 되고 법안으로도 보게 되고 불안으로도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온 우주 전체뿐만 아니라, 전체 보게 되는 것이 내 몸 안에서 벗어나서 그렇게 돼야만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이 자유스럽다는 얘기죠. 내 모습은 여기 두고도 내 모습 아닌 모습들이 수만, 이 허공에 꽉찰래도 찰 수 있다는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마음공부 하는 요지가 바로 거기 있는 거예요. 마음공부를 안 하면 심안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육안으로만 보게 되는 거지 심안이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인제 심안이 열리게 되면 자꾸자꾸 순환을 거쳐서 혜안이 열린다. 또 순환이 되면 정말 법안이 열린다. 그 법안이 또 순환을 하다 보면 정말 불안으로 보게 된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순환을 거치는 걸 점수라고 그러고 우리가 갓 상봉할 때가 바로 돈오라고 그래요.

그래서 첫째 둘로 하지 않는다면 둘로 보지 않는 것이고 둘로 보지 않는다면 공생으로 되는 것이고 공생으로 되면 공심으로 되는 것이고, 우리가 혼자 봐도 혼자 보지 않고 서로 더불어 보는 거니깐요. 그렇게 해서 공심으로만 볼 수 있다면 불안이 되죠. 이 육안으로 보는 거는 그냥 우리가 지금 현실에 보는 거고 심안으로 보는 거는 마음으로 보는 거고 그렇다 하지만 그 경지가 참 많아서 혜안 법안 불안 이렇게 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차원이 모두 여러분은 모르시고 올라가야 되죠. 모르시면서 올라가고 올라가면서 알게 되고 또 살다 보면 알게 되고, 누가 가르쳐 줘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그렇게 알게 된다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게,  더 좋은 게 뭐냐 하면 이 내 마음 주인공 하나가 겨자씨라면 일체제불을 다, 일체제불도 각 처 각 급에 부처님 상이죠. 부처님의 모습이고. 그런 걸 다 이 가죽 속에다 넣고 다닌단 말입니다. 그러니 쫓아다니면서 모시고 쫓아다니면서 받들고 그렇지 않아도 될 수 있겠죠. 일체 중생들도 다 넣고. 둘이 아닌 까닭이에요. 우리가 몽땅, 이 세상에 모두 일체를 다 넣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죠. 한 주먹 쥐어다가 넣어도 쥔 사이도 없고 넣은 사이도 없다. 그러면서도 넣어졌다. 또 꺼내서 내 풀어 줘도 내 풀어 준 사이가 없이 풀어 줬다. 이것이 바로 보살행이며 보살의 법도입니다. 공법 도리.

여러분이 그렇질 않아서 하나하나를 가지고 부모님이 잘못 돌아가셨거나 무슨 일이 있어서 총에 맞아 죽었다거나 6·25 때 무슨 일이 있어서 죽은 사람들, 물에 빠져 죽었다든가 목을 매서 죽었다든가 이런 분들도 그냥 아무리 어렵게 살고 아무리 악하게 살고 잘못하고 살고 그래도 이것이 그냥 무효가 되는 겁니다. 거기다 모든 거를 넣으면 그냥 바꿔지는 거죠. 이해가 됩니까? 이게 이해가 돼야 여러분이 다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사람들이 아주 하기 쉬운 것도 하기 쉽지 않게끔 만들어 가지고 그냥 애를 써요. 근데 그렇게 안된다는 거죠. 진짜 자기를 믿는다면 왜 안되겠습니까? 자기 모습은 물질적인 모습이고 보이지 않는 자기는 정신계의 자기인데, 불성인데 어째서 그걸 믿지 않고 믿을 생각도 안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았다는 거를 알고 그렇게 믿으니깐 믿지 않아지죠?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믿어지지 않죠, 그게. 언제나 하나가 있으면 하나가 글로 한데 합쳐져야 견성인 거예요. 통신이 된 거구요. 이게 겹쳐지지 않는다면 통신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모든 게 벌어져서 일을 한데 할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공부하는 게 책만 보고 염불만 배우는 게 공부가 아니고 경전만 보는 게 염불이 아니고, 항상 자기 생각이 투철해야 되죠.

그래서 잘 믿고 잘 하는 사람은 심안으로 믿는 것이고, 그 다음에 더 배워서 정말이지 믿는다는 소리 없이 믿는 사람들은 법안으로 믿게 되고, 또 그  보다도 더 한 소리 없이, 내가 있다 없다 소리도 없고 남들이 있다 없다 소리도 없고 세상이 있다 없다 소리도 없고 그렇게 해 나가는 사람들은 불안으로 해 나가고. 그러니깐 여러분이 잘 생각해서 한생각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셔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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