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나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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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힘든 시기입니다. 모든 것이 가식인 것 같고 무의미한 삶으로만 느껴집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세계에서의 삶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요? 다음 생에는 인간의 육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오직 유일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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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사람들은 모두 죽으면 그만이다 이럽니다. "에이,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 정말 살기가 고역스럽고 죽겠구나." 이럽니다. 그러나 죽어도 몸뚱이만 없어졌지 아주 죽지를 않기 때문에 그렇게 죽어도 허탕이에요. 모두 어리석게 ''죽어야 한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러는데 죽을 생각이 있으면 빠져나갈 생각을 하세요.
주체 의식이 확고하고 그런 이상을 가지며, 우리가 이런 게 있죠. 삼세심이다 하는 이치는, 삼계가 한데 합쳐서 일어난 것도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으로부터 일어났으니, 바로 삼세심은 어떻게 해서 삼세심이 되느냐. 왜 삼세심이라고 했을까?
예를 들어서 작년 콩씨를 올해 심었는데 올해 심은 콩씨가 또 많이 열려 가지고 사람들을 다 먹이고도 그 콩씨 하나가 되남아서 내년 봄에 또 심습니다. 그러니 어저께의 오늘도 오늘이요 오늘의 오늘도 오늘이요, 내일의 오늘도 오늘이니까, 이것이 삼세가 연결된 삼심이 연결되지 않으면 지속되지 못하는 진리입니다. 삼세심이 한데 연결되기 때문에 진리라고 합니다. 지속되구요.
그런데 삼세심이 공했다, 공한 자체의 나 주체 의식 근본에서 보게 되면 이것은 하천세계로 가고 이것은 중천세계로 가고, 이건 상천세계로 간다. 이것은 주체 의식 그 자체의 근본에 의해서 세 갈래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 가지로 나가는 그 원리가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거예요. 네 마음을 그렇게 쓰면 이렇게 되고, 그렇게 쓰면 이렇게 되고, 그렇게 쓰면 이렇게 된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하천세계를 비유해서 봅시다. 딴 데서 보지 말고 우리 지금 현재를 보세요! ''오관 지옥에 떨어진다'' 하는 것은, 얼른 쉽게 말해서 종합된 인간의 탈을 못 쓴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끓는 지옥 이런 문제들이 나오는데 그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건 왜 어디서 보느냐? 우리가 소를 잡되 도끼로 잡거나 몽둥이로 잡거나, 하여튼 그렇게 잡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갖다 구워 먹든 볶아 먹든 끓여 먹든 합니다. 그러면 이 인간의 의식 자체가, 짐승들의 의식 자체는 떠나질 못합니다, 자기 육에서.
사람도 만약에 그 육(肉)에서 떠나지 못하면 그 지경이 되는 거죠. 그 육에서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내 삶에 의해서 떠나질 못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육안의 5억이라는 생명체들이 한데 붙어서 있다가 거기에 주둔돼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 주둔돼 있으면 고기를 끓이면 끓이는 대로 이게 살생이 되는 겁니다. 왜? 거기에 붙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뜨거운 맛을 보는 것이 한 번의 맛이 아니라, 거기에서 착을 떼지 못하면,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내 윤회에 돌고돌며 뜨거운 꼴을, 화탕지옥 꼴을 수만 번 수억을 겪어야 합니다. 이거 참 자세히 말하자면 이게 복잡합니다, 아주.
그러면 이 중천세계는 어떠한 거냐. 이 중천세계는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면 중천세계를 뜻합니다. 또 사람의 모습이 천차만별이듯 사람의 차원도 많습니다. 그러니 내 마음에 의해서 창살 없는 감옥에서 얼마나 헤매고 돕니까. 또 내 마음으로 잘못해 가지고 지금 창살없는 감옥에 갇힌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내 마음으로 잘못해 가지고 얼마나 지금 고를 당하고 있습니까? 인간으로 살아가면서도 얼마나 고가 많습니까? 자식들의 일로 괴롭고, 부부지간에 마음이 안 맞아서 괴롭고, 부모자식지간에도 괴로운 일들이 여간 많지 않습니다. 사업에 실패를 해서 괴롭고, 남이 나를 떨어뜨려서 괴롭고, 내가 남을 떨어뜨리니 괴롭고, 연방 같이 상대로서 이어져 가면서 괴로움을 당하는 겁니다. 올라가면 밑에서 치받히고 위에서는 떨어뜨리고 이렇게 하는 이 지속된 중세계의 이 맛을 우리가 지금 맛보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고 우리는 인연에 따라서 내 몸 집을 지어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딱 내가 한생각에 이것이 잘되면 몽땅 한데 합쳐서 하나로, 하나로 상천세계에 이르고 부합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대로 상천세계가 아니라 중천세계 윤회에 끄달리면서 돌아간다면 이 씨가 그냥 중천세계에 떨어져서 그냥 모두가 화합니다. 내가 죽으면 죽는 대로 이것도 같이 부합이 돼서, 만약에 내가 넝마의 차원이라면 넝마의 차원으로 이 씨가 여기에 부합이 돼서, 나가서는 모든 게 인연에 따라서 가고, 내가 나의 그 씨를 바로 넝마 씨로 만들었으니까 내가 가는 대로 또 쫓아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내 뱃속에다 넣고 이 세상에 또 태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죽어도 마찬가지 살아도 마찬가지죠. 죽어도 죽는 게 아니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니까요, 결국은. 그래서 집합된 한 단체에서 내 한생각에 은이 되느냐 금이 되느냐, 무쇠가 되느냐 넝마가 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갈림길입니다, 지금. 이 중세계 갈림길인데 이 갈림길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겁니다. 내가 생각을 어떻게 해야 상천세계에 가느냐 이겁니다. 상천세계에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면서도 상천세계를 응시한다 이겁니다. 고등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면 대학을 못 가고 대학원을 못 가듯이 말입니다. 어떤 여건에 의해서 인연에 따라서 내가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결과도 있죠.
그래서 ''모든 것을 놔라. 모든 것이 다 공했으니 놔라. 하루에도 고정되게 생각하는 법이 없고 고정되게 보는 것도 없고 고정되게 듣는 것도 없고, 고정되게 행하는 것도 없고 고정되게 먹는 것도 없으니 모두 공했으니까 거기 놔라.'' 하는 원리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5억이라는 이 단체가 바로 내 한생각에 달렸다 이겁니다. 내 생각에 의해서 5억이라는 생명이 한데 부합이 돼서 하나로, 일심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 일심으로 돌아가는 그 원리를 안다면 일심이라는 그 자체도 없다 이런 논리가 나옵니다. 웬 줄 아십니까? 상세계에서는 혹성만 혹성이 아니란 얘깁니다. 이 혹성만 혹성이 아니에요. 수성도 있고 금성도 있고, 또는 토성도 있고 목성도 있고 은하계가 있는, 해왕성, 천왕성 이런 게 있는데 그 외에도 그보다 더 큰 혹성이 있거든요.
그러면 내 몸속에서 이것을 부합하게 만들어 가지고 하나로, 내 마음은 체가 없는 거니까 그거를 융합시켜서 하나로 뭉쳐서 그 하나마저도 없다는 원리를 알게 되면 스스로서 자기가 샘물이 나오게 되고 스스로서 알게 될 때 비로소 그걸 홀랑 벗게 되는 겁니다. 껍데기를 홀랑 벗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이 중세계의 교차로를 홀랑 벗는 겁니다. 벗으면 어떠한 문제가 나오느냐? 내가 내 몸에서 홀랑 벗고 나니까 딴 사람도 다 홀랑 벗었음을 알게 되는 거죠. 그때에 비로소 나와 남이 둘이 아닌 뜻을 진실로 알게 되는 겁니다.
일체 만물이 둘이 아니요, 장소도 둘이 아니요, 옛 사람과 지금 사람도 둘이 아니요, 부처와 중생도 둘이 아니라는 그 뜻을 알게 됐을 때에 비로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나에서 그냥 그대로 여여하다는 그 뜻이 그대로 나왔을 때 열반 경지가 되는 거죠. 그 열반 경지가 될 때에 자유인의 경지까지 가는 것이며, 비로소 상천세계에 등장할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되느냐. 내가 보지 않으면 몰라요. 여기를 거쳐 가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중천세계를. 그래서 여기서 먹고 살고 하던 것을 다 알게 됐기 때문에 생각을 해서 먹는 겁니다.
그래서 내 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아니 되고 지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떠한 부처가 되려고 앨 쓰고 그런다면 욕심이 과해서 또 아니 되니까, 욕심이 과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항시 놓치지 않고 일을 하나, 자나 깨나 그저 생각이 들면 모든 거를 주인공에다가 놓으세요! 모든 걸 착을 두지 말고 그저 평상시에 그냥 벌어서 살되 착이 없이 살라 이겁니다. 착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공했는데 무슨 착을 둘 게 있습니까? 내가 돈을 이렇게 쌓아 놓더라도 이것은 내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 주어진 거니깐 관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알아듣기 쉽게 하자면 주인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이 소리죠. 그대로 자기 주인의 나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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