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참답게 살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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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참다운 인간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인생의 의미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우리 인생이란 지수화풍으로부터 우리 몸을 형성시켜서 지수화풍을 먹고 살고 나중에는 지수화풍으로 거두어 가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인간은 지수화풍으로 가공된 물주머니 속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물속 생물이 물속에서 벗어나면 못 살듯이 그렇게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지금 현재 상황입니다. 또 있습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고, 현실에 여러분이 모두 자기 몸뚱이 속의 생명들로서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 몸뚱이 속의 생명들은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연쇄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우리들 몸뚱이에 더불어 같이 살고 있느냐.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인과성이라든가 영계성 세균성 업보성, 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서 내 영혼과 더불어 정자 난자를 비롯해서 같이 형성된 것입니다. 형성됐다는 이 자체를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 불가에서는 이름해서 오신통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천이 천안 신족 숙명 타심, 이 다섯 가지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종합해서 현재의 말로 한다면 자동적인 컴퓨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왜냐. 우리가 차원에 따라서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그렇습니다.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는 것을 바로 불기둥이라고 이름한다면 땅을 딛고 하늘을 꿰고 불기둥이 서 있는데 수레가 불기둥을 싸서 돌고 있어요. 이 기둥이 가운데 섰고 그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게 우리 생활이에요, 모두가. 우리 생활인데 그 생활 속에서 우리는 항상 그 근본 기둥, 그 자체에 부합이 돼야만이 오신통에서, 그 수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겁니다.
아까 용어를 변경해서 오신통을 자동적인 컴퓨터라고 그랬죠.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이 됐다가, 영계성이니 뭐니 모두가 지금 솔솔 나온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거를 벗어나게 하려면, 그 나오는 구멍에다 다시 입력을 해야만이 앞서의 입력은 없어지면서 새로이 들어가는 대로 되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만이 여러분이 알아듣기 쉬울까 해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오신통 자체가 컴퓨터라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컴퓨터에 입력이 돼 있던 것이 현실에 자꾸 나오니까 그 구멍에다가 다시 일임해 놓는다면 입력이 다시 돼서 앞서의 입력이 없어진다 이 소립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털구멍이라고 했어요. 그것도 방편으로 말입니다. 한 털구멍의 들이고 냄이 그렇게 광대하다고 그랬어요. 털구멍이라고 하는 것은 털구멍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들이고 내는 것은 단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여기 있는 것도 아니고 저기 있는 것도 아닙니다. 들이고 내는 구멍은 한 구멍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다 들이고 낼 때에 진정코 의심을 하지 말고 ‘나를 이끌어 나가고 형성시킨 주인이 바로 나의 마음 가운데의 선장이로구나. 나의 뿌리로구나. 내 몸이 싹이라면 나의 근본 뿌리는 바로 나의 주인이로구나.’ 하고 거기다가 맡겨 놓으세요. 진정코 내가 움죽거리고 보고 듣고 가고 오고 말하고 하는 일거일동이 바로 그놈으로 인해서 움죽거린다고 생각할 때 진짜 믿고 거기다가 맡겨 놓을 수 있는 겁니다. 그거를 진짜 맡겨 놓고 있을 때에 통신이 돼서 생명의 의식들이 전부 작용을 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모습과 생명이 의식을 가지고 이 몸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걸 큰 혹성이라고 해도 되고 별성이라고 해도 되고 큰 회사라고 해도 됩니다. 이걸 국토라고 해도 됩니다. 이 국토에서 모든 자생중생들이 살고 있는데 신호가 가면, 내 마음에서 통신이 가면 벌써 대뇌를 통해서 중뇌를 통해서 책정이 돼서 사대로 통신이 됩니다. 사대로 통신이 되면 모든 생명체의 소임을 맡아 가지고 있는 공장장들이 전부 작용을 하게끔 합니다.
이것은 심성의학이기도 하지만 심성과학이기도 합니다. 이름만 거창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천이 문제입니다. 말이 문제가 아니라, 잘 아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진실로써 한 걸음 한 걸음 실천하면서 떼어 놓을 수 있는 그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신호가 가서 내 한생각에 모든 생명의 의식들이 따라 줄 수 있다면 바로 더불어 같이 공존하는 겁니다. 즉 시쳇말로 한다면 원자 속에서 분자로 인하여 입자가 돼서 털구멍을 통해서 들이고 내면서 천백억화신으로서 응신이 되신단 말입니다. 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자생중생들에게 안과 밖을 조복받게 되면 부처님 국토에서 낱낱이 보살로 화해서 헤아릴 수 없이 나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그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물질세계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무의 세계, 정신세계 50%를 아주 망각하면서 모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걸려서 돌아갑니다. 50%와 50%가 같이 돌아간다면 얼마나 여여하게 돌아가며 얼마나 슬기롭고 지혜롭고 물리가 터지고, 아주 마음이 천 리를 가도 간 사이가 없고 와도 온 사이가 없이 모두가 이렇게 될 수 있으련만….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면서도 “가고 오는 것도 도가 아니니라. 보는 것도 도가 아니니라. 아는 것도 도가 아니니라. 듣는 것도 도가 아니니라. 네가 어디서 나온 줄 아는 것도 도가 아니니라.” 그러셨어요. 과학적으로는 그릇이 얼마만하고 물이 얼마나 담겼다는 것을 알아내는 거지만,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뜻은 이것을 보기만 하는 건 도가 아니다 이런 겁니다. 있는 줄 알면서도 이거를 갖다 먹지 못한다면 이건 도가 아니다 이거지요. 남이 목마를 때 줄 수 있고 내가 목마를 때 먹을 수 있어야만이, 그것도 이름해서 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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