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꼭 필요한 것인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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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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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꼭 필요한 것인지요?

본문

질문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왜 스승이 굳이 필요한 것인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예전에도 말을 했지만, 나를 견성해 가지고 참 보림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사실은 나도 처음엔 ‘내가 죽어야 된다, 죽어야 된다’ 하고 죽을 거라도 있었지만 그 후에 보니까 죽을 것도 없어서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예전에 어느 큰스님의 말씀이 “어디까지 가면 죽습니까?” 하니까 “눈 뜨고 푹 자면 죽느니라.” 했습니다. 어느 때에 또 그 스님께 뭘 여쭤봤느냐 하면 “스님께선 항상 성품의 작용, 보림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하시는 말씀이 “그때가 더 어려우니라. 바닷물을 다 삼켰으면 토할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토할 줄을 알았다면 바다의 파도 이는 것이 너의 성품의 작용임을 알아야 그것이 진짜 보배이면서 진짜 보림에 드는 길이니라.”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양식이 됐고, 내가 경을 읽지 않았어도 그 스님이 그 말씀 한마디 해 주시는 거기에 경에 있는 그 일체 만법의 뜻이 다 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한 번 벽을 치면 봇장이 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항상 내가 말씀드리기를 “사람은 이 공부 할 때, 우리는 지금 성품의 작용을 하는 것이 몸 없는 몸으로서, 바로 손 없는 손으로, 발 없는 발로, 눈 없는 눈으로, 귀 없는 귀로 작용을 역력하고 활달하고 소소영영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스님께서 “그 파도가 이는 것도 내 성품의 작용인 줄 알아라.” 하는 것도 우리의 살림살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에 착을 두거나, 고정되게 이 생활을 착을 두고 하거나 이런다면 안 되겠으니 여러분한테 첫번에 모든 걸, 즉 말하자면 자기 근본처에 모든 것을 놔라. 근본처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에는 그것이 몸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죠. 그러나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고, 혀도 있고, 몸도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만 가지 천 가지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용하는 것도 일체 처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체 처에 다 놔라 이겁니다. 이게 승가에서 말씀하시는 보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기 생각에 스님네들이 잘 모른다고 해서 깔보지 마십시오. 스님네들은 스님네들대로 첫번에, 일차적으로 벌써 물질적인 문제를 다 놨습니다. 입산할 때 버렸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우린 깔볼 수가 없는 겁니다. 색욕이라든가 성욕이라든가 또는 그 모두를 다 떠나서 입산했을 때는 벌써 일 단계를 넘어선 겁니다.

스님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입산을 했겠습니까.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에 너무도 모르니까 허무하고 보잘것없고 하나 건질 것 없고, 하나 가질 것 없고, 하나 쓰잘데없고, 모든 게 변질돼 가고, 모든 게 망가지고, 모든 게 그렇게 하니 인생이 살기가 너무 허망해서 모든 걸, 물질적인 문제나 모든 작용을 다 버리고 떠났을 때는 벌써 한 단계는 넘어선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나이가 어리든, 모르든 스님은 스님네들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거를 곰곰이 생각을 해 보셔도 여러분은 머리가 숙여질 겁니다. 그래서 얼마나 돌고 울었던가. 얼마나 돌고 웃었던가. 내가 한발짝 한발짝 떼어놓는 것도 없는 것을….

그래서 제일 어려운 것이 이렇게 말을 마음으로 전달하려니, 이렇게 하다 보니 여러분이 좀 안다 하는 생각이 들어가면 하, 내가 나라고 고개를 들게 됩니다. 그럴 때 길잡이 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왜, 애들이 자라서 사춘기 때 어렵다 하죠? 그때나 똑같습니다.

이게 왜냐하면, 어저께는 구할 놈이라도 있어서 구했는데 오늘은 구할 놈이 없을 때 그 보림하기가 더 어렵다 이겁니다. 안으로 굴려서 보림을 해야지 만약에 봤다, 알았다 이래 가지고 바깥으로 누설을 한다면 그것은 헛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한 십몇 세 가면 사춘기가 돌아온다고 하죠. 그때나 똑같은 얘기입니다. 그것 붙잡아 올바로 저 길 없는 길로 인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는 얘깁니다. 그때 참스승이 있어서 가끔씩 튕겨 줘야 하니까 그때 주장자가 참 필요하죠.

그때 주장자 필요한 것이지 우리가 모든 것을 몰락 다 놓을 때는 구할 놈이 있기 때문에, 지팡이가 있기 때문에 그 지팡이로 하여금 다 하게 할 수 있는데 정작 내 마음을 알아 가지고는 구할 놈도 없어서 참 어려운 겁니다. 그때 은사가 정말로 필요한 겁니다. 은사는 무슨 정해 놓은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길잡이가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물 깊이를 알고 들어갔다 나온 놈이라야 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거지 물 깊이도 모르고 들어가 보지도 않은 사람한테 어떻게 끌고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장님이 장님을 끌고 가다가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 십중팔구죠. 그러니 그 모든 길을 앞서가 본 사람의 튕겨 줌이 꼭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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