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소를 찾아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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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은산철벽을 뚫으려면 어떤 장소를 찾아서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지요? 부처님 경전에도 처음에 공부할 때는 조용한 데를 찾아서 하라고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물러서지 않고 정진해 나가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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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불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 살림살이 빼놓고, 우리들 빼놓고, 자식들 기르는 것 빼고, 사회를 빼놓고 무슨 불법이 있습니까! 그래서 만 가지 천 가지 번뇌 망상이 다, 육십이견(六十二見)이 다 공한 까닭에 색이 공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세상이 실상이고요. 망상을 끊어야 한다, 끊어야 한다 하는데 그 만 가지 망상이 나오는 대로, 그게 뭘 뜻하는 줄 아십니까? 자기의 불심을 키워 주는 바로 보리예요, 보리! 불심을 키워 줄 수 있는 보리! 그러니까 망상이 망상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 망상이 없으면, 이 생각 저 생각이 없으면 목석이게요? 목석이 무슨 부처를 이룹니까? 무슨 인간입니까? 그러니 그 망상도 소중하죠. 아주 묘하죠.
그러니 망상을 끊으라는 게 아니라 주인공에 놔라 이겁니다. 한데 뭉쳐 녹이는 것이 바로 대자비와 대승 경지이며 그것을 이루어서 이 산하대지를 그냥 훌떡 집어삼킬 수 있다 이겁니다. 부처가 보이더라도 집어삼키고 넘어가고 마구니가 보이더라도 집어삼키고 넘어가라 이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람은 저 부처도 아니다 하니까, 그저 부처를 아무런 방편도 없이 막 때려 부수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몸뚱이가 맞아서 죽더라 이거예요. 그거를 내 몸과 같이 생각하고 내 마음과 같이 생각하고 내 생명과 같이 생각한다면 아, 그거를 홀딱 그 자리에 갖다 넣고는 그 물질만 없앴으면 아무 일이 없을 텐데 그런단 말입니다.
어느 스님이 은사에게 이렇게 말했죠. “나는 도무지 어지러워서 공부를 못하겠습니다. 사람들도 많고 시장바닥 같아서 도저히 공부를 못하겠으니까 산으로 올라가겠습니다.” 하니까 “그럼 알았느니라. 어서 가거라. 옷 벗어 놓고, 오장 육부 속의 생명들도 다 꺼내 놓고, 땅도 딛지 말고, 물도 먹지 말고, 나무도 베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너 혼자 가서 살 수 있으면 혼자 가서 살아라.” 그러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스님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오장 육부 속의 생명들도 다 꺼내 놔라, 땅도 딛지 마라, 나무도 베지 마라, 먹지도 마라, 입지도 마라 하고 죄 했으니 뭘 가지고 어떻게 합니까? 그때서야 ‘아, 이거는 바로, 같이 음파를 타고 돌아야 소리가 제대로 나겠구나.’ 한 겁니다. 그래서 공부를 했답니다.
그러니 이 말 저 말이 들어가면 산란해서 공부를 못해요. 진짜 공부를 못합니다. 그래서 경을 덮은 겁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경을 덮은 겁니다. 자꾸 이 말 저 말을 해서, 이리로도 갈 수 없고 저리로도 갈 수 없이 만들어 놓으니까요. 그러니까 들이고 내는 데는 오직 내면세계 바로 그 한 구멍밖에는 없다. 빗장 없는 빗장을 쥐고 늘어져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한생각이면 윤회에 끄달리지 않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아, 일체가 다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거니까, 윤회라는 것에도 매이지 말자.’ 하고 놓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 포함해서 놓는다면 몇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깨닫는 데에 지름길이며, 또 업식을 다 무효화시키는 데 지름길이며, 생활을 이끌어가는 데 지름길이며, 나를 건강하게 하는 데도 지름길이며, 모든 것의 지름길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생각을 잘 하십시오. 내가 열 마디 백 마디 해 봤자 여러분이 생각 한 번 잘 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끌어 주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차원이 같아야 됩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과 이끌어 주려고 하는 마음과 동일해야만이의 바로 한자리 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림하면서도 어떠한, 골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보다도 시장바닥에 내놓고 공부를 할 때, 모든 일체 만법을 받아들이고 거기 놓을 수 있을 때 바로 참선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야 좌선이고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도 함이 없이 할 때 시공이 없는 도리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 마음과 마음이 통할 때 여러분은 스스로서 오신통을 그대로 하고 계신 겁니다.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가까운 데 내 마음과 마음 사이의 백지장 하나를 뚫을 수 있고 넘을 수 있어야만이 바로 상봉하는 길입니다. 만약에 바깥의 저런 은산철벽을 뚫어라 이런다면 은산철벽이 그냥 있어서 뚫으라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그건 뚫을 수 있어요.
내 마음속의 양면에, 부와 자가 있는 양면에 백지장 하나 사이를 넘어라 이겁니다. 그러면 은산철벽도, 그건 무색할 정도예요. 나의 백지장 하나 사이를 두고 부와 자가 상봉을 못할 때, 공부는 진짜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이 상봉했을 때 진짜 공부하러 들어가는 거예요, 살림살이하면서도. 그때는 맛을 알고, 어떠한 맛인지 알기 때문에 그 맛을 좇아서 용도에 따라서 그 맛을 볼 때는 물러설 수가 없어요. 이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왜 좋으냐. 찰나의 살림살이 그만하면 떳떳함을 가지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 속에서 이 중생 속에서도 벗어났으니 수억겁의 중생을,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니 스스로 한 찰나에 제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사생이라 하면 알로 낳는 것 태로 낳는 것, 질척한 데서 낳는 것 화해서 낳는 것 이 모두를 바로 한 찰나의 살림살이로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때에 여러분은 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누가 불러 주지 않아도 내 마음에서 대인이라는 행을 하고 그대로 떳떳한 거죠. 나는 양심이 부끄럽지 않게 남이 뭐라든, “아이구, 별것도 아니야, 뭐. 만나 보니까 똑 고구마같이 생겼고 그저 별것도 아니야. 키는 똥자루만하고.” 이래도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좋고 똥자루같아도 좋아요. 왜냐. 똥자루같다는데, 뭐. 뭐 틀린 게 있나요? 그러니까 그 사람도 거기의 참 맛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거죽으로만 보고 물질만 보는 거예요.
‘내가 언제 적에 나를, 내가 참나를 알아서 이렇게 했을까. 저 사람도 내가 몰랐을 때에 바로 내 모습같구나.’ 이러니 그것도 미운 생각이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잖아요. 남을 미워하는 데 내 속이 상하는 거고, 남을 증오하는 데 내 업이 되는 거고, 남을 죽이는 데 나는 바로 죽는 겁니다. 진짜 사는 게 아니에요. 그게 지옥입니다. 독사지옥이요, 칼산지옥이요, 그게 지옥이지 뭡니까. 그래서 속에서 불이 일어나서 펄펄 뛰게 되는 것이 바로 무슨 지옥인 줄 아세요? 그게 화탕지옥이죠. 그러니 지옥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지금 지옥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가만히 보면 지옥 속에서 그냥 허덕이고 있는데 내가 생각할 땐 ‘아이구, 저 사람들 참 이상해. 아니, 백지장 사이 같은데…. 우리가 살림하면서도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거라고 이끌어 주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왜 믿질 않어? 얼마나 자기가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을 해야 돼? 만날 아침에 일어나면 먹어야 하고 쓰다듬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이러면서도 자기를 못 믿는 거야. 왜 못 믿어, 그걸?’ 그렇게 작용을 하게 만드는 참자기를 왜 못 믿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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