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사 지내는 도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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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간이자 한국 정신문화의 지주인 제사 의식이 번거롭고 바쁘다는 이유로, 더욱이 기독교 문화에 밀려서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의 뿌리를 놓치지 않고 살려 낼 수 있는지요? 그리고 지금 시대에 맞추어 재사 지내는 도리에 대해서도 가르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그래서 오래전부터 여러분에게 재사 지내는 법을 간편하게 일러 드렸고, 영탑을 만들어서 모든 조상님들을 한 곳에 모시게 한 것도 그런 뜻이 있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자손들일수록 앞으로는 더할 겁니다. 지금도 산소를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찾아가 볼까 말까 하는 집들이 많은데 앞으로는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탑 하나만 찾아오면 조상님들을 다 뵈올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한국의 땅덩어리가 작아서, 이제는 산소 자리를 세를 주고 얻어 놨다가도 돈을 못 내면 다 뺏기게 돼 있고, 내 땅을 사서 해도 앞으로는 땅덩어리가 부족해서 점점 모시기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화장을 해서 그냥 보내기도 하지만 죽은 사람 집을 사기 위해서 돈을 써야 하고, 우리가 좀 더 은혜를 갚는 마음을 가지려면 탑에라도 모셔 놓으면, 그저 일 년에 두 번이고 서너 번이고 그래도 절에 가는 참에 뵙고 올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탑 하나만 해 놓는다면 누가 돌아가셔도 묘지 때문에 애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제사를 지내도 지금처럼 음식을 차려 놓고 해야 한다면, 맏이일 경우에는 한 해에 일곱, 여덟 번씩은 지내야 되는 집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같이 부부가 노력 안 하면 못 사는 세상에 그렇게 여러 번 지내면서 예전처럼 그렇게 차려 놓고 지낼 수 있느냔 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또 음식을 차리면서도 형제들끼리 네가 더 냈느니 내가 더 냈느니 이렇게 마음의 알력이 생겨서 싸움들을 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피곤한데 제사를 어떻게 지내?" 이러면 그런 마음들이 결국은 조상님들에게 누가 되는 거죠. 제사는 지내지만 전부 불효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마음은 지극하게 하면서 의미를 가지는 몇 가지로 간편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지낸다면 그런 재사는 남자들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떡 세 덩어리 사 가지고 오면 될 거고, 정히 여자가 못할 때에는 남자가 케이크라도 하나 맞춰서 사 가지고 오면 되는 거고 말입니다. 그리고 과일 세 가지, 초, 향, 물 이렇게 해서 마음을 편안하고 정성껏 지내야지, 음식은 많이 차려 놓고 서로 불편한 마음으로 자손들이 싸워 보세요. 부모가 그 음식을 먹겠나. 예를 들어 말하는 겁니다.
그런 거와 같이 누구나가 다 어려서는 자식이 되고 커서는 며느리 되고 사위가 되고, 그러다가 또 부모가 됩니다. 그러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육신이 태어나는 것은 내 자성의 뿌리가 형성을 시켜서 이렇게 사람이 됐는데, 내가 마음이 탄생을 하려면 나온 자리에 다시 들어가서, 자아궁(自我宮)이라는 얘깁니다. 어떻게 잘못 듣지 마시구요. 나의 궁이라는 말입니다. 이 몸뚱이도 알고 보면 나의 궁이라는 얘기죠. 나의 집 말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어느 조사님이 하신 말씀이 “야, 이놈아! 너 아직도 덜 떨어졌구나. 너의 어머니 자궁 속에 다시 한 번 들어갔다가 배워 가지고 다시 나오너라.” 이랬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안 되죠. 그래서 사람은 육신이 태어났다고 해서 육신이 깨닫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을 보려면 텔레비전 몸체가 있어야 되듯이, 우리도 몸뚱이가 있어야 부처가 있든지 뭐가 있든지, 깨닫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 육신이 태어났으면 다시금 정신이 태어나기 위해서 자아궁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갔다 나오너라. 또 네 몸뚱이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갔다 나오너라.’ 이러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을 넓게 하고 주인공에 일임하면서 다시 입력을 해서 앞서의 입력된 것들은 폐지시키면서 이렇게 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다가 우리가 듣고 보지도 못했으면 중용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나 들었던 거라면 살아가는 중에는 생각이 안 나다가도 그와 비슷한 환경이 딱 닥치면 생각이 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그냥 밀고 나가라고 했다는 이런 생각이 딱 나면 그냥 밀고 나가는 거죠, 뭐. 그래서 체험을 얻고 발전을 하고, 그래서 언덕을 넘어설 수가 있다는 얘기죠.
누구든지 가만히 보면요, 자기 좁은 몸뚱이 하나도 돌아다볼 줄 모르고 그저 앞만 향한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벌어진 것에만 끄달려서 허덕이고 다니거든요. 그러니 침착하게 고개를 숙여서 심안을 봐라, 심안! 각자 심안을 견고하게 보면서 뚜벅뚜벅 걸어라 이겁니다. 비가 쏟아져도 종종걸음으로 걷지 말고 뚜벅 뚜벅! 그러는 사람이라면 한 걸음에 천 리를 뛴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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