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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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사람이 죽으면 살았을 때의 업식에 따라 차원과 갈 곳이 정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과의 도리를 믿는 불자로서 이미 갈 곳이 정해진 영혼에게 천도재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러한 것도 인과법에 대한 역행이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 같이 바쁜 시대에 너무 번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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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 되겠죠. 그런데 음식을 많이 차려 놓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 된 도리를, 교훈과 은혜를 잊지 말아라 이거죠. 나는 그래서 재 지내는 신도님들더러 그렇게 음식을 하느라고 돈이 많이 드네 뭐 어쩌네 하고 찡찡거리고 ‘애들을 데리고 이걸 어떻게 차리나 뭐 어쩌나.’ 이렇게 성가시게 마음을 쓰지 마라. 그것은 조상님들도 싫어하시니 웃는 낯으로, 좋은 마음으로 아주 편리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도재를 지내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부모님을 천도시키는데 부모가 전자에 살면서 그 의식과 관습을 그대로 가지고 갔기 때문에 세세생생에 끄달리는 거죠. 그런다면 그게 왜 끄달리느냐? 내 몸이 죽은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자기가 잘못해서 어떻게 됐다는 것도 모르고, 아주 캄캄합니다. 눈이 뜨이지도 못하고 귀가 뜨이질 못해서, 그 의식만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내 몸속에 있는 인과로부터, 수없이 천차만별로 나오는 거기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는 벌써 내 모습과 모든 것이 그전에 살아 있을 때처럼 있는 줄 알고 강을 못 건너갑니다. 예를 들어서 유(有)의 세계에서 무(無)의 세계로 건너가야 할 텐데 건너가질 못합니다. 왜냐하면 빠져 죽을까 봐, 체가 있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빠져 죽을까 봐 못 건너갑니다. 셋째, 불바퀴가 돌아가는데, 그 불바퀴 속을 넘어서야만 우리가 해방되는데, 그 불바퀴 속을 넘어서질 못하는 이유는 내 몸이 있는 줄 알고 타 버릴까 봐 못 들어가는 겁니다. 못 넘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의식이, 관습이 남아서 돌아가니까 강 주변에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예를 들어서 저 언덕을 넘어서야 할 텐데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천 년이 가도 그만이요 만 년이 가도 그만이다 이겁니다. 한생각이면 건너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거를 생시에 몰랐기 때문에 죽어서도 그렇게 모른단 얘깁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줄 알고 친척이나 아들이나 딸한테로 맴을 도는 거죠, 넘어가질 못하니까. 맴을 돌면서 자기는 산 것처럼 말을 하는데, 이쪽에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니까 ‘왜 내가 말하는 거 듣지도 않고 나를 그렇게 무시하고 그러느냐?’ 이렇게 하면서 탓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먹을 것도 저희들만 먹고 나는 안 주는구나.’ 뭐 이렇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니까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거지 부모가 자식을 해코지 한다 이런 게 없습니다. 부모 자식도, 사는 동안에 부모 자식이지 자식도 없고 부모도 없습니다. 왜냐. 죽으면 사대(四大)는 흩어지고 마음은 저 구름이,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서 이 도리를 알아야 사대가 무너지면 훨훨 그냥 여여할 텐데, 살아서 여여해야 죽어도 여여한데 그렇지 못하고선 그냥 발버둥일 치고 분기가 나고 그냥 여기 붙어서 분기가 나게 하고 저기 붙어서 분기가 나게 하고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또 하나는 자기 조상입니다. 자기가 과거에 살던 조상, 그것이 바로 영원한 자기 생명의 근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이라고도 볼 수 있죠. 근본은 불성을 말하지만, 영혼이라는 것은 자기가 살던 습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천도를 시키면 활짝 문을 열어 주게 됩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게 있죠. 스님마다 다르다는 얘깁니다. 천지를 다 간파하고 우주 삼천대천세계를 다 간파해서 정말 콧구멍 없는 소가 작용을 할 수 있는, 또 콧구멍 있는 소가 작용을 할 수 있는 그러한 모든 작용의 에너지가 광력을 이루듯이 그렇게만 된다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고 모두 이렇게만 산단 말입니다.
그런데 천도를 하게 되면 벌써 자기까지도 포함해서 들어갑니다. 산 사람 영혼까지도 포함해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벌써, 자기가 천도를 하면 좀더 마음이 완화되고 자기가 지금 모든 걸 맡기고 돌아가니까 조상들의 마음도 한마음으로 맡기고 돌아가게 되는 거죠. 돌아가게 되는 그 마음이 활짝 열리니까 영가들도 마음속에 들어가 본다, 안 들어가 본다가 없이 탁 거기에 안치가 되니까 전부 알겠거든요. 아니까 그때서야 편안한 감을 가지고, 거기서 굴려 나가서 천도가 돼도 거기서 미리 알고 나갔기 때문에 아예 그냥 무와 유의 세상을 잘 알고 천도가 되는 거죠.
이렇게 해서 스님들이 염불할 때도 영가들은 상에 차려 놓은 것만 압니다. 왜냐? 스님네들이 이것을 이렇게 사다가 차려 놨다 하는 것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영가들도 그것만 알고 갑니다. 그러나 천도를 시키는 스님이, 우주 전체를 섭렵하고 타파하여 탁 열고 할 때는 전부 이 세상의 모둠이 떡을 하나로 먹고선 천도가 되니까 이 세상에 나올 때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는 그런 장관이 되든가, 마음으로서 수천수만을 거느리고서 회사를 경영을 한다든가, 또는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든가, 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든가 하는 결과가 거기에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상대성 원리의 작용이라는 것이 인연줄에 따라서 나쁘게 악으로 가느냐, 인연줄에 따라서 선으로 가느냐, 양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도시키는 스님네들도 이 도리를 알고, 지내는 사람도 이 도리를 알고 해야만이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공덕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그런 마음으로 천도를 하신다면 세상에 묵은 빚을 갚을 수 있고 햇빛을 줄 수 있고, 너무나 자기를 밝게 볼 수 있고 밝게 뛸 수 있고 자유스럽게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공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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