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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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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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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의 문제에 대해서

본문

질문

제가 이 몸을 벗어 버리고 인간의 몸을 받지 못한다거나 인간의 몸을 받았다 하더라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많이 올라옵니다. 스님, 사후의 세계와 영적인 문제를 어떻게 대비를 하고 알아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지금 현재 살아서도 영적 관계라는 것은 살아나가면서 습을 가지고 우리가 고정되게 나가기만 하면 그것은 걸려요. 그냥 거기서 차원이 멈춰 버린다니까요. 그러니까 이 진리가 멈춰 버리지 않고 찰나찰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면 그것을 거기에다가, 거기서 찰나찰나 돌아가면서 생각나고 행하고 말하고 했던 것을 다시 놓을 때는 걸리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사후의 문제라는 건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가 지금 현재에 알면 사후에도 그렇게, 즉 말하자면 눈멀고 귀머거리고 그렇지를 않으니까요. 현재에 알면 바로 미래에도 알 수 있는 거고, 만약에 어저께 모른 것이라면 오늘도 모를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후 일이라는 것은 오늘을 겸했다는 얘깁니다. 과거 일이 현재로 겸했기 때문에 미래도 그러하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억겁을 거쳐 오면서 억겁을 거쳐 온 것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 많은 억겁이 그렇게 쌓여 있는 게 아니고 많이 거쳐 오면서 축소됐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콩나무 얘기를 자주 하지만, 콩나무는 콩나무대로만 그냥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에 콩나무도 생명이 있고 마음이 있다면 ‘콩나무로 되기 싫다. 콩나무에서 좀더 화해서 다른 모습으로 돼 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콩나무라는 그 범위 내에서 벗어난 겁니다. 콩씨에서 벗어난 거죠. 우리도 인간에서 벗어난다면, 바로 ‘자신’으로서 벗어난다면 중생을 벗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후나 또는 과거의 업보나 그런 것이 없다는 얘깁니다. 없는데 사람의 마음으로 지어서 그렇게 자꾸 만들어 놓는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자유스럽기 때문에 끄달리지 않는다는 문제죠. 그런데 만약에 이 도리를 모른다면 반드시 엊그저께 과거에 나를, 만약에 우리 부모들을 죽였다든가 또는 우리 집에 와서 도둑질을 해 갔다든가 또는 내가 어느 회사에 다니는데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우리 가족이 전부 죽는 게 됐다 이랬을 때 그 증오심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누적돼서 사후의 일로 벌어져요.

현실에도 너로 인해서 내가 망했다든가 너로 인해서 내 가족의 밥줄이 끊어졌다든가, 누가 내 돈을 떼어먹고 어디 가서 사는데 그 식구가 십 년이 되든 몇 년이 되든 고초를 받고 지낸다든가 이렇게 해서 얼크러진 이 문제를, 즉 말하자면 고정되게 내가 증오하고 있거나 그런다면 그것이 인제 사후 일로 벌어집니다. 현재에 내가 또 갚을 수도 있고요. 그놈을 징역을 시키지 않는다면 내가 그냥 물씬 아주 반쯤 죽여 놓고 저 죽고 나 죽는다 이렇게 또 벌어지는 수도 있고요. 그래 그렇게 벌어져서 만약에 물씬 두들겨 주고 맞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대로 거기서 끊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도 고통스럽고 그 사람도 고통스럽게 되고 그걸로 인해서 네가 앙갚음했으니까 나도 앙갚음하겠다는 생각으로서 앙심을 품게 된다면, 그네 대의 가정, 즉 말하자면 자식들이나 거기에 딸린 모든 식구들이 원한을 품게 됩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 때문에 몇 사람이 업보를 짓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가 해 놓고 자기가 받고 자기가 해 놓고 자기가 받고 얼크러지고 설크러지고 이런 것이 사후에 돌아오는 거죠. 현재에도 돌아올 뿐 아니라 사후에도 돌아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어떠한 문제로 인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라의 국록을 먹는 사람인데, 어떤 사람이 말 한마디 임금 앞에서 잘못 해 가지고는 밥줄이 끊어졌다는 얘기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때에 밥줄이 끊어진 거보다도 양반으로서의, 옛날에는 그런 것을 중시했죠. 무슨 낯으로 조상을 만나 뵐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 아주 그 집을 증오하고 이렇게 했는데, 어느 날은 그 아들이 말입니다, 원수를 갚는다고 그러면서, 하도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시지를 않고 고통스러워하고 그러니깐 그냥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그 집에 들어가서 죽였지 않습니까. 그러니 또 그 집에서 원수를 갚는다고 하다가 그만 미수에 그치고 말았는데, 그 뒤에 방에만 계시던 아버지가 마음으로 무척 닦으셨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 머리가 허옇게 다 돼 가지고서는 하시는 말씀이 “얘야. 네가 그렇게 한 까닭에 원수는 원수대로 갚지도 못하고, 그게 갚아서 갚아지는 일이 아니니라. 그렇게 네가 했기 때문에, 요다음에 삼 대를 내려가서 손자로 태어나는 내 손자가 그렇게 또 죽게 됐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면하겠습니까.” 하니까 그걸 풀려면 이제 앞으로 그러한 일은 말고 그 집에 가서 매일같이 아침 문안을 드리면서 전자에 그런 모든 것을 그저 잘못했노라고, 항상 하루 한 번씩 가서 사과를 하되 백 일을 하라고 그러더랍니다. 백 일을 해야 그것이 녹는다고 하더랍니다. 그 사람 마음이 녹아야 그게 업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 마음이 중요한 겁니다.

그런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9대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9대조에서 손자가 그러한 문제로 인해서 죽을 테니까 이 함을 끄르지 말고 9대조 며느리한테 전달해 달라고요. 거기 다 써 있을 테니까 그것을 꼭, 만약에 살인으로 몰려서 죽게 되걸랑 이 함을 그 고을 원한테 갖다가 주되 이 봉한 것을 끄르지 말고 갖다 바쳐라. 그러면 살 길이 생긴다.” 했더랍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돌고 도는 겁니다. 그렇듯이 우리 지금 살아나가는 것도 고정된 관념으로서의 생각도 고정된 행도 고정되게 보는 것도 듣는 것도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찰나찰나 우리는 사는 거지 고정되게 그냥 뭐, 백 년을 살았다 하더라도 백 년 산 게 없습니다. 여직껏 걸어다니셨다 할지라도 걸어 다닌 그 자취가 남아 있습니까?

우리 살림살이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짓는 것, 그것은 자기를 리드해 가지고 가는 자연 컴퓨터가 있습니다. 잠재의식이죠. 그 잠재해 있던 자체가 바로, 자기 한 것을 일기장에 써 놓듯이 자기가 해 놓고 자기가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받게 돼 있거든요. 잘했으면 잘한 대로 못했으면 못한 대로요. 그러니 사후를 우리가 지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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