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고 살아가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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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고 살아가려면

본문

질문

며칠 전 안양 대법당에서 수계법회를 봉행하였습니다. 해마다 참석하는 자리지만 재발심하는 마음으로 가족 모두가 참석하였습니다. 많은 대중이 한꺼번에 수계를 받고 연비 의식이 진행되어 잠시 망념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내면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대중의 흐름에 동화되지 못해 그런 생각이 올라옴을 자각하고 바로 분별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또 연비를 받으면서 “우리들의 삶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하고 의식을 집전되는 시간 내내 참회진언을 마음으로 읊조리면서 진정한 참회가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수계식을 하는 동안 같이 동참해서 연비를 받는 저희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병고액난의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발원하고 발원했습니다. 진정코 질병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지 않고 올바로 수행정진하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내가 항상 나무 뿌리하고 싹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렇게 우리도 누구나가 다 나무 싹과 뿌리처럼 본래 그렇게 달려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니까 ‘네 뿌리는 바로 네 주인공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도리를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우주 전체를 한데 쌓아 봤자 콩 알갱이 하나로도 할 수 있고 한 사발로도 할 수 있고 한 주먹으로도 할 수 있고 아주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 모두를 하나로 이렇게 했을 때 그 콩 하나를 갖다 짊어지니까 세상에 짊어질 수도 없고 무겁더라 이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어떡하면 빨리 해소를 시킬 수 있나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무조건 관하라고 한 겁니다. 진짜로 믿는다면 믿는 것만큼 없어질 것이고 믿지 못하고 뭐를 얻으려고만 한다면 그것이 없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서 자기 정성에 의해서 그것이 조금 나을 뿐이지 그것이 없어지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현재만 살려고 그러지 말고 세세생생을 살기 위해서,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 그걸 벗어 버려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짊어진 콩 한 알갱이를 산더미 같은 산이라고 그런다면 산 하나를 짊어지고 다니는데 그 무거운 거를 그냥 다 놓아라 이 소린데, 진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주인공이라는 자기 자불(自佛)을 진짜 믿어야만 하는데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이겁니다. 근데 우리가 믿는다 하는 거는 우리가 보면 알죠. 눈 뜨고 보고 귀 열고 듣고 이렇게 하는데 우리를 그렇게 형성시켜서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만든 자가 누구냐 이겁니다.

그게 바로 자기의 종자의 근본 아니겠습니까. 자기 종자라는 근본인데 그 근본으로 인해서 자기가 생겼다면 그 근본에다가 다 놓아야죠. 진짜로 믿고 놓아야죠. 그리고 하는 것도 먹는 것도 일상생활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다 그놈 때문에 움죽거리게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깐 산이 하나다 해도 되고, 콩 한 알갱이다 하는데 그 콩 한 알갱이가 짊어져도 짊어질 수가 없으리만큼 무겁다 이 소립니다. 근데 그것 하나를 없애려고 한다면 진짜로 믿고, 가난하든 돈이 있든 없든 밥을 굶든 먹든 무조건 ‘굶지 않게 해 주는 것도 너고 살리는 것도 너고 길을 걷게 하는 것도 너고….’ 하면서 모두가 믿는 게 그냥그냥 그리로 다라야죠. 다죠. 자기 모습이 자기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깐 부처님 머리 위에 상투를 하나 해 놓았다고도 보고 또 때로는 부처님을 새겨 넣기도 하고 때로는 금으로다 이렇게, 지금도 해 놓았지만 그렇게 해 놓은 것은 바로 크고 좋아서가 아니라 뜻으로 볼 때는 텅텅 빈 모습이다. 텅텅 빈 모습인데 무엇이 있겠느냐. 그런데도 갖추어 가지고 계시다 이겁니다. 텅텅 비고 없기 때문에 갖추어 가지고 있는 거지 뭐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갖추어 가지고 있을 수가 없죠. 오장 육부가 다 있다면 갖추어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내 손도 빈 손 부처님 손도 빈 손, 부처님 발도 빈 발 내 발도 빈발, 부처님 몸도 빈 몸 내 몸도 빈 몸이니깐 빈 마음입니다. ‘함이 없이 하고 가는구나.’ 하고 그저, 모든 것을 알 양으로 애 쓰지 말고 모두가 공했다는 거, 우리가 공해서 함이 없이 하고 지금 생활을 하고 간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수억겁 전서부터 둘이 아니게끔 돼 있는 거죠. 인과로서 인연으로서 말입니다.

그러니깐 모두 그 뜻만 대략 알면 그냥 믿고 가도 된다 이겁니다. 왜, 부처님께서 가르쳐도 모르는 바보 제자에게 빗자루를 하나 주셨지 않습니까. “너는 이 빗자루 하나 가지고 항상 쓸고 털고 그래라.” 하고요. 거기서 터득을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수없이 안다 하더라도 안 것은 다 놓아야 된다 이겁니다. 아는 것을 다 놓지 않는다면 그 아는 것 때문에 길고 짧고 이렇고 저렇고, 이론이 많아서 외려 갈 길을 더디게 만든다 이런 소리죠.

그렇다고 일거수일투족을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하되 함이 없이 해라 이거죠. 공했으니깐 너는 함이 없이 하는 거다 이겁니다. 왜 텔레비전에 영화로서 이렇게 그림이 나오죠? 그림이 나와서 별짓 다 하죠. 자기가 그렇게 별짓 다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저거는 내 환상이 저렇게 하고 있고 나는 그냥 여기 앉아서 그걸 보고 있다. 그렇게 환상이 온통 다 하고 살듯 이렇게 하고 살아요. 그런데 우리가 거짓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돼 있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죽거나 어디 다치거나 그런다면 엉엉 그냥 야단나죠. 그러나 죽어도 고만 살아도 고만, 이런 것이 다 무심하게 돌아가죠. 알게 되면 얼음판을 걸어와도 아주 편안하게 걸어올 겁니다.

그래 어느 사람이 강을 건너는데 아주 얼음이 얼었으니까 고기들을 잡느라고 모두 얼음을 깨 놓은 자리가 큰 게 있어요. 뭐 잘못 걸으면 풍덩 빠져서 그냥 야단들이 나니까 잘 걸어오는데, 스님네들 둘은 하나도 거침없이 그냥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오거든요. 그래 옆에서 오는 사람들은 모두 두리번두리번거리고 간이 콩만 해서 모두 오는데 다 건너와서 “스님! 스님!” 하고 물었어요. “스님네들은 이 강을 건너오시는데 겁이 나시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나는 이 강을 건너온 새도 없는데 어떻게 겁이 나겠소.” 하더랍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지금 살아나가도 사는 게 아니면서도, ‘아니다’ 이러는 걸 알면 그냥 삶이 없이 사는 거죠, 그냥.

그래서 내가 그러는 겁니다. 관해서 놓으면 둘이 아니게끔 딱, 병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왜 그런 것도 있죠. 한 모습에 한 모습이 딱 들어가서 하나가 된다고요. 그런 것 보시면 아시듯이 그렇게 수천 개가 들어가도 그것은 들어가고 나간 사이가 없단 얘기죠. 그렇기 때문에 그 병은 그대로 낫는 겁니다. 자기 몸을 자기가 죽일 리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각자 자기 주인공을 믿고 열심히 관하며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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