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苦)가 아닌 이유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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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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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苦)가 아닌 이유

본문

질문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왕림하심이 고통에 헤매이는 중생들에게 철창 없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하셨지만 엄연히 끊임없는 생노병사가 있기에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저희들은 고통의 굴레에서 헤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스님, 봄날의 따사로움처럼 삶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 삶이 고가 아닌 희망임을 확연히 알 수 있도록 일러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고가 아니라는 것은요, 항상 얘기하지만 고정됨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고가 붙을 자리가 없어요. 한 발 떼어 놓고 한 발 떼어 놓는데, 한 발 떼어 놓으면 한 발 없어지는데 무슨 거기에 고가 붙을 자리가 있겠습니까. 비행기가 날아갈 때 프로펠러가 돌아가는데 거기 먼지 앉을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냥 이 생활을 하는 데 찰나찰나 화해서 자꾸 이것 보면 이것 보고 이렇게 돌아가는데, 고는 여러분의 생각에 의해서 고가 있는 거지 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업보도 없고요. ‘과거에 업보가 있어서, 팔자가 있어서, 운명이 있어서’ 이렇게 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여러분의 생각에 의해서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고는 없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생각 할 때 고는 없습니다.

그 ‘없습니다’ 하는 건, 얼른 쉽게 말해서 왜 없겠습니까마는 그 생각을 잘못해서 고라는 얘깁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의해서 잘못되고 잘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집착하는 게 고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또 이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걸 아실 수 있다면 공한 걸 알 수 있고 공한 걸 안다면 고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현실의 나와 참나를 모릅니다. 나와 나를 모른다는 것은,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콤비가 돼서 돌아가야 하는데 항상 나라는 육신 때문에 콤비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내가 했다, 내가 벌었다, 내가 망했다’ 이럴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말을 해도 내가 함이 없습니다. 함이 없이 그냥 하는 거죠. 이 몸뚱이는 내가 아닙니다. 몸뚱이를 내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내 몸뚱이는 생명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편으로 말씀하시기를 “네 몸이 허허바다에 떠 있는 배라면 그 배 안에 탄 승객은 네 몸 안의 생명들이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들은 중생으로 비유를 했고 뱃사공은 선장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살얼음판을 딛고 가는 것과 같이 인생을 한 철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심부름을 잘하면 되는 겁니다. 내가 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게, 내 몸 안에도 생명과 모습과 의식들이 천차만별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물 한 컵이라도 내가 먹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봤다고 생각을 하겠습니까. 내가 들었다고 하겠습니까. 어떤 거 될 때 내가 했다고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고 있는 한 개체인 것입니다. 그래야 정신계와 물질계가 콤비가 돼서 여여하게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여여하게 돌아갈 수 있으려면 나와 내가 둘이 아니어야 되죠. 둘이 아니게 되면 스스로 여여하고, 여여한 줄 안다면 갖추어 가지고 있음을 알며, 또 갖추어 가지고 있는 걸 안다면 걸림 없이 들이고 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못났든 잘났든 이 세상에 이 몸을 받고 나왔다면 내 나무는 내 뿌리부터 알아야 된다고 봅니다. 내 뿌리를 의존하고 나갈 수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것을 뿌리라고도 하고 자아라고도 하고 자불(自佛)이라고도 하고, 여러 가지 이름은 있지만 근본은 누구나 다 하나인 것입니다. 그 근본에는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일체 만물 만생과 더불어 일체제불의 마음도 직결돼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고가 없다고 한 말이 어떠한 뜻인지 짐작하시리라고 믿습니다만,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보는 것이 고정된 게 있는가 하고요. 듣는 것도 고정되게 듣지 못하고 만남도 고정되지 않고 또는 움죽거리는 것도 고정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했다 안 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나투면서 찰나찰나 돌아가는데, 삼천대천세계가 바로 한생각에 찰나 전으로 돌아가고 찰나 후로 돌아가고 현실에 공해서 돌아가고 이러는데 여러분이 한 게 따로 있습니까? 함이 없이 여러분은 여여하게 하고 가시는 겁니다.

근데 생각이 그렇게 되질 못해서 그게 콤비가 안되죠.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콤비가 돼서 여여하게 이끌어 갈 준비가 되지 않은 거죠. 부처님께서는 “제일 먼저 네 마음부터 알라. 본래 네 마음은 부처니라. 부처의 근본은 체가 없어서 보이지 않으니까 육신이 없다면 무효고 또 육신은, 정신계를 무효로 본다면 물질계는 정신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효다.” 하셨습니다.

우린 공기주머니 안에 있어요. 근데 여러분이 생각할 때 ‘나’ 이렇게 하면 벌써 몸뚱이부터 말하는 줄 알아요. 그러지 말고 체가 없다는 거부터 생각하세요. 체가 없잖아요! 마음이라는 게 체가 없으니까 이 마음 저 마음 막 그냥 쓰잖아요. 마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마음이거든요. 보는 거 듣는 거 말하는 거 만나는 거 가고 오는 거, 모두가 공했어요. 고정된 게 하나도 없이. 여기 올라올 때도 발자국 짊어지고 오지 않았죠?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죠? 한 발짝 들여 놓으니깐 그 앞서 걸어온 발자국은 다 없어졌잖아요, 과거로.

그러니 지금 현실에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이겁니다.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는 건 뭐냐 하면 생각을 하는 데서 벗어나게 되는가, 그렇지 못하고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끄달리면 그 팔자나 운명이 주어지는 거죠. 팔자도 없고 운명도 없어요. 자기 생각대로 그냥 전진하는 겁니다. 내가 쉬지 않고 삶은 고가 없다고 하는 소리가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러니 앞으로 늙어 죽도록, 또 자녀들을 낳아서 기른다 해도 이 도리를 가르쳐준다면 보배를 넘겨준 것과 같은 이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부 너무너무 전자에 끄달리고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 말로 해서 자기네들 보디가드는 자기한테 있습니다. 딴 데서 찾지 마세요. 얼른 쉽게 말하자면, 원자라고 비유한다면 원자에서는 입자가 나가서 다 조절하죠.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처리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처리해서 들이고 말입니다. 제각기 다 그래요. 그런데 자기가 모르니깐 그걸 부려먹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자기, 위대한 자기지만 친근하게 앉아서 ‘너만이 지켜 주고 너만이 이끌어 줄 수 있잖아.’ 하고 그렇게 친근하게 둘이 아니게 해라 이 소리예요. 모두 자기네들의 전자에 살던 조상이, 과거의 그 조상이 자기 모습을 또 형성시키기 위해서 정자 난자를 빌려서 자기를 이렇게 형성시켜서 이끌어 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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