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시 근본을 증명 받는 방법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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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시 근본을 증명 받는 방법

본문

질문

선원을 다니면서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청년법우입니다. 좌선을 할 때 본래 있는 나의 근본을 느끼고 알고 싶다면 ‘네가 있다면 이 손을 한번 들어 봐라’든가 ‘주먹을 한번 쥐어 봐라’든가 하는 것을 실험적으로 해 보라고 하셔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해 봅니다. 그런데 저는 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그것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자기 이외의 사람이나 또 자기 이외의 경전이나 자기 이외의 어떤 신이나 이런 거를 가지고 공부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무의 세계의 정신계, 정신계는 자기 지금 주인공 불성이 있고 물질계에는 내 육신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정신계하고 물질계하고 똑같이 돌아가죠? 돌아가니깐, 얼른 쉽게 말해서 물질계보다 정신계가 한 단 위예요.

그러니깐 정신계가, 즉 말하자면 주지가 되는 거죠. 주추가 되는 거예요. 얼른 쉽게 말해서 이 물질계의 나는 정신계의 나를 진짜로 믿고 ‘너만이 네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하고 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만이, 네가 형성시킨 몸이니까 네가 이끌어 가지고 갈 수 있고 너만이 지켜주고 해결사가 돼 주고 의사가 돼 주고 그러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것을, 애를 임신했을 때 탯줄에 앉아서 그 탯줄에 달린 젖병을 가지고 애가 똥 누고 잠자고 먹고 그러고 길러지거든요. 그와 같이 해라 이겁니다. 이렇게 탯줄이라는 것은 둥글게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자기의 근본 자리를 말하는 거죠. 근본 자리에서 젖병이 있다 하는 것은 자기 불성, 주장자, 그러니까 주장자를 꼭 잡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주장자만이 나를 이끌 수 있고 광대하게, 쉬지 않고 이끌어 갈 수 있으니깐 말입니다.

그러니깐 앉아 있는 것도 서 있는 것도 자는 것도 또 일하는 것도 모든 게 참선으로 둥글려서 돌아가거든요, 진리니까. 그러니 저녁에라도 한 10분 동안이고 15분 동안이고 앉아 있으면서 ‘너만이 네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하고 관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싹이 나야 인제 이 물질계하고 정신계하고 상봉이 되는 거죠. 통신이 되는 거라고요. 그게 통신이 돼야 이 보이지 않는 무의 세계의 그 공용(共用)을 알 수 있단 말입니다. 즉 말하자면 용(用)을 하는 것, 움죽거리는 것이라든가 이런 것이 내가 움죽거리지 않고 움죽거리는 그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그래 어떤 사람들은 공부할 때 그냥 계속 “주인공! 주인공! 주인공!”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주인공을 믿는 거지 찾는 게 아니에요. 찾는 게 아니라 본래 있는 거니깐 믿는 거라고요. 나무가 뿌리 믿듯 말입니다. 이 나무가 자기 뿌리가 없으면 싹이 살 수 없죠. 그러니까 싹은 뿌리를 의지하고 믿고 살고 또 뿌리는 싹을 도와서 에너지를 흡수해서 올려보내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좌선을 하면서 ‘주인공, 너가 있다면 이 손을 들어 봐라.’ 이렇게 했겠죠. 그런데 내가, 이 물질적인 나보다 한 단계 위의 자기 조상인 불성, 그게 과거 자기거든요. 그러니까 명령하듯 하면 안 되죠. 명령은 강제로 ‘이것 들어 봐라!’ 이러는 것과 같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강제로 하질 말고, 예를 들어서 ‘주먹을 들어 봐라!’ 했을 때 그렇게 해 놓고 그냥 가만히 있을 때, 잊어버리고 있을 때 탁 들리는 거지, 내가 그렇게 강요하고선 금방 들리는 게 아닙니다. 강요는 아예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 나는 터득을 했어요. 나는 뭐 내가 경전을 봤나 누구한테 제대로 배우기를 했나. 그런데 공부하고 들어가다가 하도 이게, 심심하다고 그럴까 뭐 어쨌다고 그럴까요. 어쨌든 그때는 어리니깐 그걸 아빠라고 그랬거든요. ‘아빠가 있으면 진짜 이 손을 들어봐!’ 이랬거든요. 나는 터득을 해서 통하고 있는데 그러는 거죠, 인제. 그걸 모르니깐 ‘나와 봐!’ 이렇게 하는 거죠. 그러니깐 안 움죽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잊어버리고 인제 일어나야겠다 하고 일어나는데 그냥 이 손이 번쩍 들리는 겁니다, 난데없이. 그걸 잊어버리고 있는데 손이 번쩍 들리더니, 색경으로 가는 겁니다, 보라고. 색경을 봐라 이거예요. 손만 가는 게 아니라 이 색경을 봐라 이겁니다. 지금 생각을 하니까 터득을 해서 다 나온 거죠, 그게. 그래서 색경에 가 보니까 내 얼굴밖에 안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림자와 그림자가 둘이 아니니라. 그러나 이걸 따지고 보면 그 색경에 비치는 거는 환상이고, 너는 지금 주인공 근본이라면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너 몸뚱이는 환상이고 너 근본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겁니다. 너로 인해서 비치는 그 환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서 그때에 ‘어, 너나 나나 둘이 아니구나. 이것이 모두가 나한테서 벌어진 거로구나! 과거로부터 미생물에서부터 이렇게 내가 나를 진화시키고 자기를 형성시키고 또 진화시키고 형성시키고, 이렇게 하면서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되고, 이렇게 하면서 인간까지 이끌고 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눈물이 주르르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인공, 그 아빠가 수억겁 광년을 거치면서 그렇게 해 왔는데 내 자식 아님이 어딨으며 내 부모 아님이 어딨으며 이 우주가 전부 선 도량 아닌 게 어딨겠나. 전부가 도량이고 전부가 내 모습이고 내 모습 아닌 게 없고 내 생명 아닌 게 없고 모두가 그렇구나. 길고 짧음이 없구나.’ 그냥 이런 게 나왔죠.

그랬듯이 이것도 요량이 있어야 돼요. 강요를 하면은 안 됩니다. 한 단계 위다, 정신계가. 나는 과거로부터 진화시키면서 자기를 형성시켜 온 자기인데 지금 현재 나는 자(子)란 말입니다. 그 한 단계 아래란 말이에요. 그건 부(父)가 되고 이건 자가 되죠. 그러면 자식이 애비더러 ‘이것 좀 올려 봐!’ 이럭한다면 그거 되겠어요? 천천히 ‘그래라. 올려 보겠다.’ 하고 ‘올려 주마!’ 그러고서 인제 생각을 잊을 만한 때 그때 이렇게 천천히 올려지는 거죠.

그러니까 신도들이 뭐가 어떠니 해도 우리 스님들이 자청해서 무엇을 해 준다 이러는 건 없어요. 그쪽에서 와서 건드려야 이쪽에서 주는 거죠. 자청해서 주는 거는 스스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야 되는 겁니다, 또. 그러니깐 모든 게 자유롭죠. 그러니까 이 도리가, 자기 자신을 형성시켜 온 자기 주인공을 통하지 않고는 이 연기법이나 오신통, 이런 거를 도무지 몰라요. 이걸 통해야 ‘아,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는구나. 체가 없으니깐 그냥 여기서 저 미국으로 점프할 수도 있고 그렇구나. 또 이승에서 저승으로 점프할 수도 있구나. 저승에서 이승으로 점프할 수도 있구나.’ 그냥 이렇게 자꾸 배우는 거죠. 스승이 인제 여기서 나오는 거죠. 그게 자기 과거가 스승이 되는 겁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인제 이렇게 하다가도 지치잖아요? 싫증이 나잖아요, 안되면. 그런데 안돼서 답답하게 될 때에 ‘답답한 것도 당신이 하는 거니까 답답하지 않게 해 봐. 답답하지 않게 하려면 이것 좀 들어 봐.’ 하고선 이렇게, 딱따거리지 말고, 간절히! 딱따거리는 게 다르고 간절히 하는 게 달라요.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아주 묘한 거거든요. 그렇게 하는 그것이 은산철벽을 뚫으려고 정을 갖다 대고 두들기는 거와 같거든요. 그리고 또 어린애라고 비유한다면 막 보채고 우는 거와 같거든요. 그러니까 ‘울지 않는 어린애 젖 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울어라.’ 그러는 거죠 그럭하다가 지치고 답답하면 ‘에잇, 고만 둬라.’ 이러고 팽개치죠? 그런데 그렇게 답답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강요할 필요도 없어요.

이 세월이라는 게 없거든요. 그냥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겁니다. 돌아가는데 거기에 답답하다 답답하지 않다 하는 막이 어디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답답한 것도 네가 답답하게 하는 거니깐 답답지 않게 해!’ 그러세요. 나도 그렇게 살아요. 어떤 땐 눈이 침침해서 ‘눈이 침침해. 이건 눈이 침침하잖아!’ 그냥 그러고, 또 피곤하고 그러면 ‘좀 의욕이 있게 해!’ 이렇게 해요. 그러면 금방 달라져요. 그렇게 하고서 살지, 그걸 철판에 콩 볶아 먹기로 하면 되나요? 콩 볶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되죠.

그러니까 답답하게 하지 말고 본래 나한테 주인공이 있으니까 그렇게 꺼내고 찾으려고 하지 말고 믿는 거, 진짜로 믿는 거, 믿는 거를 전적으로 해야 돼요. 그렇게 해 보다가 이게 인제 자꾸 저거 하면 ‘내가 답답해서 그러니까 너가 정말 있다면, 주인공 당신이 정말 있다면 손 좀 들어 보든지 손가락을 들어 보든지 해 봐!’ 이렇게, 그냥 인의롭게, 답답하지 않게, 되든 안되든 답답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말입니다.

그래 인제 거기다가 넣고 그렇게 할 때에 이거는 마음이 생겨야 육체가 움죽거리죠.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어떻게 육체가 움죽거리겠습니까. 그러니까 육체는 그냥 가만 놔두고 이렇게 ‘당신이 진짜 있다면, 내가 당신으로 인해서 움죽거리는 건 아는데 난 아주 당신을 통해 보고 싶어. 그러니깐 이걸 좀, 손가락이라도 움죽거려 봐.’ 이렇게 그냥 다정한 뜻으로 이렇게 그냥 해 보는 겁니다. 다정하면 빨리 해 줄 거고 다정하지 못하고 명령조로 나오면 안됩니다. 그러곤 정히 화가 나면 나중에 인제 그냥 잊어버렸을 때 손이 들리게끔 하죠.

이 주인공이 이끌어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그랬는데 뭐 그걸 못 믿습니까? 못 믿을 필요도 없죠, 사실은. 그래 가지고 자꾸 통하게 하기 위해서 보채라. 애기가 젖 달라고 울듯 보채라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당신만이 당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하고 가만히 앉아서 그냥 그렇게 한 10분 동안이라도 그렇게 자꾸 보채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그것이 은산철벽을 뚫으려고 정을 갖다 대고 두들기는 거와 같다는 것을 아시고 열심히들 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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