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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과 백종에 대해서

본문

질문

선원에 와서 법당에 삼 배를 드리고 도량탑에 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탑돌이를 할 때마다 문득문득 스님께서 마음으로 새겨 놓으신 “칠성불은 만중생의 불을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 주시고 서천국의 아미타불은 그저 모든 중생들을 깨닫게 하소서.” 하신 그 뜻이 과연 뭘까 하고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칠석과 백종을 해마다 지내듯이 끊임없이 생하고 멸하는 가운데 정말 이 마음의 도리를 알아서 벗어나라고 하신 부처님의 그 자비하신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 언제나 한결같이 말씀해 주셨지만, 올해 또 칠석과 백종을 맞이하면서 저희들이 어떠한 마음을 내야 저 자신과 조상님들의 마음을 밝혀서 벗어날 수 있을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칠석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낸다고 합니다. 또 백종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산 사람 죽은 사람’ 이렇게 나누는 게 아닙니다. 칠석이다 하면 칠(七)은 우리 몸 자체와 마음 자체를 말하고, 석(夕)은 그 마음이 깊은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밝힌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내가 형성된 날이나 죽는 날이라고 해도 되고, 아침 저녁이라고 해도 됩니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불을 켤 때나 끌 때나, 이런 것이 바로 과거도 현재고 미래도 현재이듯이, 즉 말하자면 아침에 불 켜는 그 마음이나 저녁에 불을 끄는 마음이나 같이 엮어서 마음을 밝히라는 뜻입니다.

아침도 현재 내 마음 속에, 저녁도 현재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거. 내가 항상 이런 말을 하죠. 전자와 전자가 한데 합쳐져야 불이 들어온다고요. 그래서 이 아침이나 저녁이나 없는 마음, 그 마음에서 발견해서 밝히면 칠석(七夕)이 칠성(七星)이 된다 이 소립니다. 여러분이 그 도리를 모르면 칠석이고 그 도리를 알면 칠성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칠석날은 내 마음을 모아서 과거 미래를 한데 합쳐서 내 마음에 깨달음을 밝게 가져오는 즉, 광력을 자재로이 쓸 수 있는 그런 중용을 말합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 한해서는 이런 얘기가 있더군요. 견우와 직녀도 그렇게 만나지 못해서 애를 쓴다고요. 일 년에 한 번씩 만난다고 그랬죠. 그런데 우리가 일 년에 한 번이라 하는 것도, 여기서 생각할 때는 일 년이지만 그 별성에서 생각할 때는 일 초, 하루를 뜻합니다. 즉 말하자면 여기에서 그 수명이 일 년이면 거기서는 하루라고 볼 수 있겠죠, 비유를 한다면. 아무튼 여기서 지어 놓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어 놔도 해당이 되게 지어 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표현이다, 방편이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 년, 하루 이것을 비유하자면 우리가 여기에서 하루 동안, 24시간 동안에 한 번 만나는 것도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만남이 말입니다.

그러면 일체 사생(四生) 모두가, 천차만별로 돼 있는 모든 만물만생이 다 견우 직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있으면 인간이 있듯이 모두가 이렇게 인연이 돼야 생산이 된다는 뜻입니다. 납득이 안 가십니까? 이 모두가 인연이 없으면 생산이 되지 않습니다. 발전도 될 수가 없고요. 창조도 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으면 ‘칠성이 된다. 칠성 부처님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칠성 부처님이 명을, 또는 생산을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 소임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깨달은 사람이라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칠석(七夕)날은 칠성(七星)이 되기를 원하면서 내 마음을 다스리면서 밝힌다 이런 겁니다. 내 마음을 밝히지 않는다면 백종에 건질 수가 없어요. 왜 목련 존자를 비유해 놨을까요? 목련 존자가 그 깨달음을 가지고도 열반의 구경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는 지옥문을 열지를 못해서 어머니를 건지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시 가서 부처님한테 구하니 다시 정진하라고 그러기에 다시 정진해서 지옥문이 스스로 열렸다 이 소립니다. 여러분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조상님들의 문도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칠석날은 항상 나한테 숨어 있는 그 마음, 깊숙하게 들어 있는 그 마음을 발견해서 불을 켜라, 밝혀라 이런 뜻입니다. 내가 깨달아야만, 칠석에 깨달아서 칠성이 돼서 그 마음의 불을 밝힌다는 뜻이죠.

백종은 아침과 저녁 이것이 한데 모아진 한마음입니다. 한마음이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중생이나 생각이 있는 중생이나, 산 중생이나 죽은 중생이나 할 것 없이 일체 만물만생의 모든 영령들을 건질 수가 있는 문이 열린다 이런 뜻입니다. 문이 열리는 것도 깨달음에 의해서 문이 열려야 건질 수가 있지, 깨달음에 의해서 문이 열리지 못하면 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북하면 백종입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백종을 그냥 돈이나 갖다 놓고 영령들을 어떻게 해 달라고 그러면 되는 줄 알지 마십시오. 스님들의 힘을 빌려서 한다 하면은 스님들도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그 상대방에서도 내 마음을 알아야 한마음이 돼서 건져지지,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둘로 보고 그렇게 보니까 이 봉투에다 돈이나 넣어서 이름이나 써서 갖다 놓으면 영가가 천도되는 줄 아는데 이런 생각은 아예 마시고요.

항상 그렇게 얘기하죠. 예를 들어서 내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과 내 육의 조상들과 둘이 아니라고요.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조건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자비라고.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마음과 내 부모들의 조상 마음과 둘이 아닌 까닭에 항상 내 한마음에 모든 거를 맡겨 놓고 마음을 내는 것이 그게 불을 켜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조상들의 마음도 내 한마음으로 하나가 돼서 모든 게 탄생이 되든지 승천을 하든지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 마음 자체를 깨달아야만 된다.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항상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항상 부모와 일체제불과 모든 일체 중생이 다 한마음 속에 있다. 한마음 속에서만이 빚어진다. 들이고 내는 모든 것이 전체 한마음에서 들이고 내진다.’ 이런 것을 강조하는 원인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칠석에도 그 마음을 내 한마음으로 하나 되게 넣는다면 둘로 봐지지도 않고, 그렇게 한다면 바로 부모들이 자기가 되는 겁니다. 자기 속의 자기 마음을 훤히 다 알기 때문에, 부처님도 같이 이렇게 있기 때문에 거기서 툭 터져서, 삽시간에 물리가 터져서 승천을 하시는 겁니다. 칠석이 그런 마음의 도리지, 물질을 아무리 많이 갖다가 산더미같이 쌓아 놓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고 그렇게 공한 도리를 모른다면 아예 불도 밝게 일어날 수가 없거니와 조상들도 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여러분이 잘 아셔서 하도록 하시고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나가는데도, 아까 견우와 직녀 얘기 했는데 그게 납득이 됐습니까? 여러분이 다 견우와 직녀예요. 딴 데, 먼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견우와 직녀고, 견우와 직녀는 그렇게 울고 그렇게 사연이 많다지만, 그 만남도 즐겁게 만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즐겁지 못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고 말입니다. 그건 그렇게 해 두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견우와 직녀 속에서, 생사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공부하는 겁니다. 견우와 직녀 속에서도 벗어나게. 모두가 나 아님이 없고, 내 자리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이 그냥 훌렁 벗어나게끔 지금 공부하는 겁니다. 그래서 칠석도 아침 저녁이 한데 모아져서 공해 버렸다. 공했으면 그 공한 도리를 알 때는 그냥 무(無)다. 무조차도 무다. 이렇게 됩니다. 그 도리를 알았을 때는 바로 벗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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