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선이고 불사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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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불자로서 보시도 해야 하고 착한 일을 해야 하는데 ‘불사선 불사악’ 이라는 것을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선도 생각을 안 하고 악도 생각을 안 하고 그러면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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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바보라는 생각이 나오는 것도 놓으세요. 이거 보세요, 내가 길을 가다 보니까 장님이 말입니다, 장님인데 클럽이 있나 봐요. 그래서 거기 돈이 많이 있으면 눈 뜬 사람이 그걸 가져가고 그 사람을 그렇게 앉혀 놓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그걸 생각 못하고 저거를 안 되겠다 싶어서 가다가 보니깐 ‘에이그, 저도 거지가 누구를 돕는다고 그래?’ 그럴까 봐, 그것도 좀 난 수줍어요, 그렇게. 그래서 얼른 뒤로 돌아가면서 십만 원짜리 하나하고 만 원짜리 다섯 개하고 똘똘 뭉쳐서 손에다 잔뜩 쥐었습니다. 쥐고선 가다가 얼른 그 사람 손을 딱 쥐고 요걸 쥐여 주고선 “15만 원이야!” 그랬습니다. 귀에다 대고 살짝 말하면서 쥐여 주곤 ‘뒤야, 날 살려라.’하고는 부지런히 그냥 길을 걸었습니다.
거기 이유가 뭐가 붙습니까? ‘이런 걸 보시를 해라 안 해라.’ 이런 게 무슨 이유가 붙습니까? 내가 가다가 하고 싶어서 그냥 한 거지, 그것뿐이지 무슨 이유가 거기 붙습니까? 여러분, 변소에 가서 똥 눌 때 이유가 붙습니까? 잘 때도 이유가 붙고 먹을 때도 이유가 붙습니까? 이유 붙지 않습니다. 진짜 배고플 때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밥 턱 갖다 놓고는 그냥 퍼먹습니다. 똥 급할 때 변소 문 열자마자, 무슨 이유가 거기 붙어요? 그냥 뭐 그냥 그냥 들어가서 얼른 풀고 누고 나야 그때 쪼끔 여유가 생기겠죠. 그러니까 그렇게 급할 때 이유 붙지 않듯 참선이라는 것은 그렇다 이 소립니다. 급박할 때 이유 붙지 않듯. 왜 좋은 옷을 입고 가다가요, 요거 흙물 튈까 봐 좀 사리고 그러다가, 요거 앉는 데도 좀 조심해서 앉고 그러다가 나중엔 흙먼지 비가 그냥 막 쏟아져서 만약에 다 맞았다고 할 땐, ‘에라, 이젠 다 맞았다.’ 이럴 땐 조심도 안 되고 물방울 튈까 봐 걱정도 안 되고 그렇습니다. 그런 점과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공해서 찰나찰나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이 생활 속에서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하며 무엇을 안 했다고 하며 무엇을 더 한다 덜 한다가 있겠습니까. 내가 불쌍한 것 보면 그대로 하는 거고 또는 내가 할 게 없으면 무주상 보시로 마음을 내서 저 사람도 그렇게 잘 살아라 하고 마음을 내 주면 무주상 보시가 되고, 유주상 보시도 그렇게 하고, 아, 양면으로 다 해도 한 사이가 없어요. 이유가 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냥 사는 게 참선이라고 그러는데도 불구하고 “그럼 내가 바보인가요?” 그러거든요. 가만히 놓고 가면 뭘 먹고 사느냐 이거예요. 벌이하는 것도 참선이요 못하는 것도 참선이요, 일하는 것도 참선이요 아, 모두 부지런히 뛰는 것도 참선인데, 지금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는 것이 이게 참선이에요. 아, 지금 세상에 가만히 멍멍이처럼, 바보처럼 가만히 뒷산이나 쳐다보고선 가만히 명상이나 하고 이렇게 앉았으면 그게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마조 스님이 말입니다, 글쎄 딱 가부좌를 틀곤 떡 앉아서 좌선을 한다고 앉아 가지고는 옴쭉도 안 하다가 밥 먹을 때 ‘공양해라’ 이러면 일어나거든요. 오줌 마려우면 일어나고 똥마려우면 일어나고, 그 외에는 안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그 은사가 가만히 보니까 아주 이거는 큰일 났거든요. 아무리 말을 해도 그것이 씨가 먹히질 않아요. 그래서 하루는 기왓장을 가지고 그 턱 밑에다가 놓고는 싹싹 갈고 있는 겁니다. 가만히 마조가 내려다보니까 우리 스님이 참 이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좌선하다 말고 “스님! 그 뭐 하시려고 기왓장을 그렇게 가십니까?”
여러분이 이 이야기 다 아실 겁니다. “뭐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하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그런다.” 하니까 ‘아이구, 망령이 들으셔도 이건 뭐 보통 망령이 든 게 아니고 어떻게 됐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겁니다. 그래서 “스님! 그게 기왓장을 갈아 가지고 거울이 어떻게 됩니까?” 하니까 “너는 그렇게 틀고 앉아서 부처를 어떻게 이루느냐?” 그러더랍니다. “그러면 똥도 누러 일어나지 말고, 선이 끊어질 테니까, 아니 오줌도 누지 말아야 하고 먹지도 말아야 하고 그래야 어떻게 선이 끊어지지 않지, 선이 그냥 하루에도 몇 번씩 끊어지니 어떻게 부처를 이루느냐?” 그러니까 그때서야 무릎을 탁 치고는 “아이구, 그냥 이렇게 이렇게 이렇군요.” 하면서 그때서야 자기 은사한테 삼배를 올리고 “스님, 이것도 참선인 걸 몰랐습니다.” 하더랍니다. ‘참선이라는 언어도 붙지 않는 자리를, 이걸 몰랐습니다.’ 하는 거를 말하고선 그때 껄껄 웃고 내려다보면서 한번 울었답니다.
그런 이치가 있듯이, 여러분은 지금도 참선하는 거고 변소간에 앉았어도 참선하는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달린 건데 우리가 물질적으로 이렇게 살아나가면서 아주 요렇게 정해놓고 사는 것이 그냥 관념이 돼 가지고, 습이 돼 가지곤 그걸 떼질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선이다 악이다 하는 생각에 매여서 그걸로 모든 걸 판단하려 하지 마시고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의 도리를 알려고 하는 데 항상 뜻을 두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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