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나침반에 대해서
본문
질문
깨달음을 얻어야만 진정한 공부가 시작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듯 어렵게 깨달음의 길에 드신 분들 중에는 일반인의 통념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해서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공부의 과정을 어떻게 지켜봐야 하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나침반을 얻어 가려면 어떻게 공부하고 넘어가야 하는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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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내가 한 소식을 얻었다고 합시다. 그러나 어린애를 낳아서 키우듯이 그렇게 키워야 어른이 되죠. 그렇듯이 내가 나를 낳고도, 터득을 했다, 나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건 발견한 게 아닙니다. 키워져야 발견했다는 뜻이 나오죠. 근본 자체, 그 참자기를 발견했을 때는 그 자기가 지금 현재 자기의 스승이 됩니다. 그런데 스승은 수억겁을 거쳐 나와서 경험이 많아요. 이 몸을 끌고 다니면서 가르치려니까 별짓 다 하는 겁니다. 요거 중요한 얘깁니다. 별짓 다 하는 게 뭐냐 하면 예를 들어 새벽에 쇳송을 할 때 일곱 번을 친다고 적혀 있다면 ‘넌 열두 번을 쳐라.’ 요렇게 바꿔 놓습니다. 또, 한 번을 쳐라 그러면 두 번 치게 하고 두 번 쳐라 하면 한 번 치게 하고, 이렇게 청개구리처럼 가르칩니다. 그럴 때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렇게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없는 뜻을 가르치기 위해서고 자기를 다지게 하기 위해서거든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혜를 내나, 그걸 보기 위해서 테스트하거든요. 이 마음의 스승이 어떠한 물질로다가 나오는가 하면 꿈에도 보이고 꿈에 말을 해 주기도 하고, 꿈에 좋다 나쁘다 이유가 붙기도 하고 또는 생시에도 나는 지금 저리로 가고 있는데 ‘저리로 가지 말고 이리로 가라.’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마음의 스승이 이리로 가라 하면 이리로 가야 하는 것도 있지마는 내가 오관을 통해서 보고 지혜롭게 판단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현실에 내가 남한테 창피를 당하는 일이거나 누(累)가 되는 일, 즉 선원에 누가 된다기보다도 불가에 누가 되게 하고 부처님의 용호를 더럽히는 일, 그전에 나의 용호가 먼저 더러워지겠지만, 그러한 일은 하지 말고 또 놓아야죠. 그러니까 “저 사람 미쳤어!” 이런 소릴 듣지 않고 공부하려면 이리로 가라 해도 ‘아, 날 테스트해 보려고 그러는구나.’ 하고 한번 생각하고 놓는 거예요. 그러면 나가다가도 ‘너 지금 이게 아니니까 이렇게 하는 게 옳을 거야.’ 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옳을 거라는 것도 의미를 모르겠고 영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는데 그 때에도 ‘야, 이게 뭐냐?’ 하고서 거기다 또 놓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쪽 자성불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얻어듣기 위해서 거기다 도로 팽개쳐 놔라 이겁니다, 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수없이 자기를 부딪치게 했고, 수없이 모습 없는 모습들을 나타내면서 자기가 거기에 속지 않고 항복을 받았습니다. 자기라는 건 항복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풀 한 포기도 자기 스승 아닌 게 없느니라. 모두 내 스승이니라. 그것들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공부를 어찌 했을꼬?” 하셨거든요. 또 부처님이 그렇게 그것들을 보고서 깨쳤으니 그들은 부처님을 보고 또 공부를 하거든요. 그러니 어찌 둘이겠습니까?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말씀해 드린 것이니 그렇게들 속지 말고 잘 공부해 나가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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