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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벨 때의 마음가짐

본문

질문

도로 공사를 할 때 땅을 파고 길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랍입니다. 요 근래에 봄이 되어서 서울 외곽의 공사를 하느라고 산의 나무를 여러 그루 베어 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이러한 일 또한 살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를 벨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이게 우리가 소나 돼지나 사람이나 나무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무의 목신(木神)이라는 것도 마음이 있고 생명이 있고 다 그렇습니다. 사람도 생명이 있고 마음이 있듯이. 그런데 그냥 이렇게 자르게 되면 이게 상대성으로 아픔을 느끼고 상대성으로 원수 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살생이 되죠. 살인마가 되는 거죠. 남의 거 돈 안 내고 훔쳐 오면 도둑이 되는 거고요.

그런데 내가 관법(觀法)을 가르치는 것은, 즉 말하자면 공동 분담이 되는 거거든요, 이게. 즉 말하자면 이 일체 주인공에다 모두 놓는 거는 주인공이 포괄적인 주인공이기 때문에 공동 부담이 되는 거죠. 분담이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람이 살생을 했고 어느 사람이 살생을 안 했고 이게 없어요, 공동 분담이 됐기 때문에. 그런 데다가 거기다가 놓고 하면, 그냥 주인공에다 놓고 하면 그냥 그 목신(木神)의 무명이, 나무라는 목신의 무명이 벗겨지죠. 그건 잘라서 다른 걸로 쓰고, 그 생명의 근본은 그냥 여기다 넣으면 그냥 한 찰나에 사람이 돼 버려요. 사람이 돼서 그냥 또 다시 배출이 되죠, 인도환생으로. 사람의 이 마음에다가 천만 개의 영령(英靈)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나 하나가 공(空)했는데 뭐가 있습니까? 나 하나가 공했는데. 그것도 공이에요. 그러니까 넣은 사이가 없어요. 그래서 두드러지지 않죠. 그리고 꺼내고 꺼내도 줄지도 않는 법이고요.

그러니까 살생이 되는 게 아니라 바로 무명을 벗겨 주는 일이요, 또 우리가 병원에 가서 마취를 하고 나면 다리를 잘라도 아픔을 느끼지 않죠? 그와 같이 나무를 갖다가 이 내 주인공에다 맡기고 한다면 마취한 거와 마찬가지로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이 소립니다. 아픔을 느끼지 않고 나무라는 그 자체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사람으로서 화(化)하게 되는 거죠. 나무도 몇백 년 내려오면서 사람의 그 마음과 접한 그런 나무가 있고 또 아주 단생의 나무가 있고 그런데, 모두 생명은 똑같으니까 똑같이 그렇게 해서 무명을 벗겨 주는 것이 원칙이고요.

또 그건 그것대로 나무로 쓰고요, 또 소는 소대로 고기로 약으로 쓰고요, 또 소의 무명은 벗겨 주고요. 그러면 에누리가 없지 않습니까? 주고받았으니까 무슨 원한이 있겠습니까? 그죠? 상점에 물건 사러 가서 그 돈 주고 물건 가져왔는데 도둑놈으로 몰릴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와 똑같아요. 그러니까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삼득이 되는 거죠. 그러니 모든 게 생각해 보면 아주 정의정당하고 질서적이고 도의적이고 의리적이고 빈틈이 요만큼도 없는 삶의 진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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