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승 삼보에 대해서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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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승 삼보에 대해서

본문

질문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지 부처님께 지극하게 삼 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과연 내가 어디에다 절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러면서 ‘아, 불법승 삼보님께 하지!’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마음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불법승 삼보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디에다 절을 해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이 요만큼 알면 나도 요만큼밖에 모릅니다. 여러분이 이만큼 알면 나도 이만큼 알게 되고요, 여러분이 바다와 같다면 나도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삼보에 귀의한다는 거, 그 움죽거리지 않는 힘을 배출해 줄 수 있는 그 자(自)의 근본에서 마음을 내는 것이 법이니까요. 마음을 내는 것이 법입니다. 자성삼보라는 것이 불법승, 그리고 승은 움죽거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따라서 움죽거린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자기 자성한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국은 육신이 있기 때문에 육바라밀이 있고, 내가 있기 때문에 삼보가 있고 삼심이 있어서, 삼심이 일심이 되고 이러는 거예요. 과거에도 내가 살았고 현재에도 내가 살고 미래에도 내가 살 거예요. 그러니 이것을 밤과 낮에 비유해서, 밤이면 저승이고 과거, 낮이면 이승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저승과 이승이 어떻게 둘로 나눠졌을까? 밤에 잠을 자야 낮에 일을 하고, 그러니까 밤이 오는 것이 바로 과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낮이 오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래서 밤과 낮이 한데 합쳐져야만이 생과 사도 같이 구르면서 이게 진리의 끈이 되죠. 진리의 끈이 됨으로써 그냥 끝없이 돌아가듯 말이에요.

그래서 조금 아까 무엇을 어떻게 했든 무엇을 들었든, 모두 벌써 과거로 돼 버렸어요. 과거가 돼 버렸다고요. 그런데 과거로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현실에 있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과거는 벌써 없어졌지요. 그러니 과거도 현실이요 미래도 현실이란 말입니다. 현실의 내 한마음이 바로 삼심이요, 그것이 한데 합치면 삼보가 되고,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자기 전체 한마음으로써 더불어 같이 한가운데 삼보를 중시한다 이런 뜻입니다.

내가 없으니까 상대가 없죠. 내가 없다면 삼보도 없고, 상대도 없고, 세상도 없고 모두 없는 거죠. 그러니까 나로부터 삼보에 귀의하라, 나로부터. 나에게 삼보가 있는 것이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가만히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다면 그때 부처인 것입니다. 내가 항상 여러분한테 말씀드리지만, 생각을 하고 움죽거렸다 하면 법신이자 화신이고, 화신이자 보신이에요. 보신이자 또 금방 화해서 응신이 돼 버리죠. 그래서 예전 공부한 선지식들께서 ‘그대로 여여하다.’ 이런 소리를 하시죠. 그러니까 이거니 저거니 이거니 저거니 할 거 없이 그대로, 생활 자체에 그대로 살아나가고 그대로 굴러 돌아가는 것이 그대로 부처님 법이자 우리들의 법이고 생활이 그냥 여여하다 이런 겁니다.

여러분은 생각을 깊이 하셔야 합니다. 부처님은 자기 주인공 속에, 즉 말하자면 우주 섭류의 소용돌이, 법계의 소용돌이, 그 소용돌이 속에 나와 더불어 같이 돌아가고 있거든요. 한마음 속에 말입니다. 주인공이라는 것이 그것이거든요. 그러니 부처님을 믿고 다니더라도 둘 아니게 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법당에 오면 부처님 몸과 내 몸이 둘이 아니요,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요, 부처님 생명과 내 생명이 둘이 아니니 어찌 일체 만물의 생명과 나의 생명이 다르며, 법이 다르며, 움죽거리는 게 다르겠습니까? 그래서 불과 법이 둘이 아닐지언댄 승보도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이건 그냥 따라다니는 껍데기입니다. 그런 껍데기 차와 같은 거죠. 운전수가 가자는 대로 가는 차.

그러나 그 껍데기도 소용없는 게 아니죠. 그건 화두예요! 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 화두죠! 내가 없었더라면 우주가 있는지도 몰랐고 이 세상이 있는지도 몰랐고 상대가 있는지도 몰랐다 이거죠. 그런데 내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수화풍의 근원이 있었기 때문에 생명체들이 나왔죠. 그렇듯이 지수화풍이 있기 때문에 일체, 물질적인 이 모든 것이 지수화풍이 모여서 움죽거리고 있거든요. 우리는 이 지수화풍이, 껍데기가 움죽거리는 것보다도 유(有)의 법과 무(無)의 법이 같이 움죽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겁니다. 마음 따로 있고 육체 따로 움죽거리고 이러는 게 아니죠. 마음내는 것 따로 있고 움죽거리는 육체 따로 있고, 마음내는 놈 따로 있고 마음내기 이전 놈이 따로 있고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놈이 다 하는 거죠.

우리가 생활을 벗어나서 부처님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있기 이전에 여러분이 있고 여러분의 생활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 생명이 내 생명이요,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요, 부처님 몸이 내 몸이니 둘이 아닌 까닭에 아무렇게나 아무 데나 놓고 절하고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고 세상과 나와 둘이 아닌 까닭에 일정례를 올리더라도 마음을 둥글려서 내가 정성스럽게 할 수 있다면, 어디다가 절을 해도 바로 자기 주인공에 자기가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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