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부르는 이름이 다른 이유?
본문
질문
화두는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교라고 생각됩니다. 큰스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주인공을 잡아라.’ 하십니다. 그리고 선방에서는 ‘이뭣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도의 어떤 선지식은 ‘내가 누구인가?’ 했고 또 어떤 이는 ‘내가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깨치신 분들마다 화두의 표현이 다른 것을 볼 때 이는 무슨 도리가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리는 하나인 것 같은데 표어가 다른 것은 시대나 법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 이 점에 대하여 여쭈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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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이게 뭣고?’ 하고 그 이름만 생각하고 직설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수박을 놓고 ‘이게 뭣고?’ 하고 굴리는 거나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가르치는 건 ‘그대로 수박을 잘라서 먹어라.’ 이겁니다. 그대로 수박을 잘라서 먹는다면 바로 영원히 먹일 씨도 나오고 또한 맛도 알고 그럴 테니까 ‘잘라서 먹어라’ 이런 겁니다.
그 많은 이름을, 그 많은 공안을 다 놓고, 못 믿지 말고 무조건 믿어라. 무조건 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깐 상대성도 생겼고 세상도 벌어졌고 부처가 있는 줄도 알았지 내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없는 거 아닙니까? 무효니까. 내가 있으니까 나를 무조건 믿어라, 무조건 믿고 잘라 먹어 봐라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주인공’ 하면 전체 한데 합쳐진 주인공입니다. 개별적인 주인공이 아닙니다. 내면으로나 외부로나 모든 게 한마음으로 뭉쳐진 자체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공(空)해서 돌아가니까.
그러니까 그 주인공은 틀림없이 ‘너만이 할 수 있다.’ 하고 그냥 ‘나무는 전체 뿌리를 믿어라. 네 나무는 전체 뿌리에서만이 너 나무가 살 수 있다.’ 이런 겁니다. ‘그래 살 수 있다. 너가 있으니까 내가 지금 형성돼서 심부름꾼으로 있지 않은가.’ 이런 걸 믿고 무조건 놓아라. 무조건 믿고 거기에 맡겨 놓아라 이런 겁니다. 맡겨 굴려라 이러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 이름이 있기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이름을 가지고서 굴리다 보면 십 년이 가도 그만, 이십 년이 가도 그만, 삼십 년이 가도 그만입니다. 먹어 봐야 맛을 알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저런 이름의 말이 다 필요 없습니다. 그 이름은 이름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름을 벗어나서 그대로 믿고 들어가야 된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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