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천도재상에 음식을 놓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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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다른 절에서도 그렇고 민간에서도 보면 돌아가신 이를 위해서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제사를 지내는데 왜 선원에서는 음식을 차리지 않고 초와 향, 꽃과 과일에 둥근 떡만 놓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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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천도재를 지내는 데 왜 반찬도 밥도 안 해 놓고 그러느냐? 이거를 말씀하신다면 이 떡은 그냥 사람이 먹는 떡이 아니라 우주를 삼키는 떡입니다. 그 떡 하나에는 모든 일체 생물이 다 들어 있는 떡입니다. 그것은 모든 걸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또 밥상을 놓고 반찬을 차려 놓는다면 앞서 살던 습이 도로 성한단 말입니다. 먹는 거 입는 거 집을 원하는 거, 자기 몸뚱이 아끼고 이러는 것이 그냥 다 합쳐져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의식이 감동해서. 그러니까 그 의식을 벗기기 위해서 안 보이는 데서는 설법을 하고 보이는 데서는 그런 뜻으로써 상을 차려서 그렇게 해서 그 의식이 다, 모든 것이 멸하라고, 그렇게 해서 이 안팎에서 지내 주는 거죠. 안과 밖을 다 그렇게 해 드리고 또 자손들도 이 공부를 하니깐 자손들을 통해서 들고 나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재사를 지낼 때 그렇게 안 차려 놓는 원인은 영령들이나 산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니 여러 가지로 좋지 않습니까? 둘이 같이 일을 나갔다 하더라도 떡 가게에다가 전화해서 맞춰서 놓고 저녁에 일하고 퇴근하고 오다가 그거 찾아 가지고 와서 지내면 아,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그 떡은 전체가 먹는 떡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향이나 초나 뚱그런 떡이나, 사람이 식구가 많으면 셋을 놓고 지내고 나눠 먹고 또, 적으면 하나만 놓고 하고. 하나가 삼백 개도 될 수 있고 백 개도 될 수 있고, 백 개가 하나도 될 수 있는 겁니다.
영령들은 체가 없기 때문에 위패를 해 놓는 원인이 거기 있죠. 거기에 응접을 해야만이 아시니깐요. 그래서 이 우주떡이라는 것이 말로만 우주떡이 아니라 우주의 삼세가 다 들어 있는 우주떡입니다. 과거나 미래나 현실이나 모두가 현실의 한 떡에 들어 있다는 뜻을 보이지 않는 데서 설합니다. 그냥 목탁이나 치고 염불이나 한다고 생각지 마세요. 그렇게 해서 스님네들이나 여러분이나 다 그렇게 인식을 하고 그 영령들을, 조상님네들을 다 이렇게 리드해 보세요. 집안이 편안해지고 이렇게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조상님네들도 마음이 흥락해서 좋으니까 가정이 좋아지는 겁니다. 이 마음 하나가 천지를 건지는가 하면 마음 하나가 천지를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법이라는 것은 공법(空法)이라야지 그냥 법이라고 한다면 잘되고 잘못된 걸 딱 따져서 이거는 지옥으로 보내고 이거는 천당으로 보낸다 이런다면 부처 될 자격이 없죠. 왜냐? 그 잘못된 사람도 본래 잘못된 게 아니라 몰라서 그렇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방망이 때린다 하더라도 일깨워서 사람 되라고 해 줘야지 그 말과 뜻이 어긋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래도 건지는 거고 저래도 건지는 거죠. 그러니까 누구나가 다 평등하게 그렇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도 그렇습니다. 살아 있을 때에 너무 뱀을 많이 잡아서 먹었다, 개구리를 많이 잡아 먹었다, 이런 사람들 가끔 내가 봅니다. 그런데 죽을 때도 뱀이 꼴리듯이 그렇게 죽는가 하면 그 뱀에 자기 모습을 수없이 또 만들어 놓습니다, 새끼들을 낳아서. 그렇게 한다면 그 모습을 언제나 벗겠습니까, 또. 생략해서 뱀으로만 얘길 했는데 전후사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첫째 살생하지 말라. 깨치지 못한 사람은 살생하지 말라. 깨친 사람은 살생을 해도 살생이 아니고 건지는 거다. 만약에 깨친 사람이 소를 건질 때에 소고기가 들어온다고 그것을 안 먹겠습니까? 닥치는 대로 한 점 먹어서 만약에 소가 환토가 된다면 그건 의당 먹어야 됩니다. 그래서 가는 거 잡지 않고 오는 거 막지 않는다는 뜻이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재사지내고 천도시키고 하는 데에 문제가 너무 많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사람들은 한 번 한다고 해서 뱀의 허물을 그냥 벗는 게 아닙니다. 남편이든지 자식이든지 통해서 많이 들고 나면서 공부를 해야, 많이 들고 나면서 이런 거를 알아서 차차차차 그것이 벗어나게끔 되는 겁니다. 부처님이 계시다 하더라도 단박에 부처님도 건져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건져 주기만 하면 뭘 합니까? 뱀의 습이 있어서 자꾸 글로 들어가는데. 그러니까 뱀의 습을 벗어 주기 위해서 그 차차가 되는 거죠. 그래서 여기다 놓고 해라. 꼭 안 죽이면 안 될 때는, 닭이나 뭐라도 안 죽이면 안 될 때 그때는 주인공에다 맡기고 해라. 그러면 자기는 죽인 사이가 없고 안에서도 죽인 사이가 없다. 왜? 자기가 없으니까.
‘자기가 없다’ 는 뜻을 아십니까? 반야심경(般若心經)에도 있듯이 하나도 보는 것도 고정된 게 없어요.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만나는 것도 가고 오는 것도 모두가 고정된 게 없어서 함이 없이 하는 겁니다. 어떤 거 할 때 내가 했다고 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공했다고 하죠. ‘우주 삼세가 그대로 공해서 문이 없도다.’ 하는 셈이나 같죠. 그러니 여러분도 이유를 따지지 마시고, 배우는 것은 배우려고 무조건 무심으로 그냥 묻고 질문하고 이러는 거는 참 좋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이걸 따지고 이걸 따지고,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내 탓이니 네 탓이니 하는 거는 공부하는 데 아예 지름길이 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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