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 생명은 어디서 생긴 건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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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 생명은 어디서 생긴 건지요

본문

질문

저는 종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스님께서는 이 생명이 어디에서 생겼다고 보시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어떤 목사님이 나한테 묻기를 이렇게 물었어요. “태초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태초는 내가 나오고부터 태초지, 왜 그렇게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하느냐 그랬어요. 태초는 내가 나오고부터 태초다 이겁니다. 그때부터 내가 알았으니까. 알고 보니까 일체 생명은, 지금 유생 무생 하는 보이지 않는 생명, 보이는 생명, 태로 낳는 생명, 알로 낳는 생명, 화해서 낳는 생명, 질척질척한 데서 낳는 생명, 이 모두가 다 생명이다 이겁니다. 이 생명이 한데 합쳐서 돌아가는 이 에너지가 바로, 거기에서부터 우리가 생겨난 거죠. 우리가 사람이 죽으면 “아, 큰 별이 떨어졌다.” 그러죠. 지금 우리의 마음들이 아니라면, 마음의 씨가 아니라면 태양도 형성시키지 못했어요. 자기의 마음의 씨가 아니라면 자기도 형성시키지 못했어요.
 
그럼 억겁 천 년 전에서부터 진화됐다고 합시다. 생각을 하는 것이 진화요, 그 생각을 했기 때문에 어떠한 것을, 즉 마음에서 생각을 한 것이 진화라면 창조해 낸 것은 설계를 바깥으로 내놓은 거죠. 그럼 그 설계는 한군데만 쓰여지는 게 아니에요. 다양하게 이 설계도, 이 설계도, 이 설계도, 이 모든 것이 다 다양하게 쓰여지고 있어요.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예를 들어서 물감이 열 가지가 있다면, 물감은 이 열 가지를 한데 몰아서 물감이라고 하지만 색은 전부 다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때에 따라서는 이 물감을 쓸 수도 있고, 저 물감을 쓸 수도 있는데 어떤 것을 물감이라고 하겠느냐 이거예요. 이런 거 생각해 보셨어요?

그러면 당신이 어머니를 만날 땐 자식이 된 마음으로 어머닐 대하죠? 그리고 형님을 만났을 때는 어때요? 형님을 만나는 마음으로서 대하죠. 동생을 만났을 때는 내가 동생을 만나는 마음으로 대하고 친구를 만났을 때는 친구를 만나는 마음으로 대해요. 그게 나툼이에요, 바로. 이 색은 여러 가지지마는 근본은 하나기 때문에, 그럼 이 색 쓸 때에 ‘나’라고 하겠느냐, 이 색 쓸 때 ‘나’라고 하겠느냐, 이런 얘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때에 따라서는 다양하게 이렇게 돌아가면서 쓰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평등공이라고 그래요. 어떤 걸 내세울 수 없는 게 물감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어떤 걸 내세울 수 없는 게 지금 당신이란 말이지요. 자기라고 내세울 수가 없는 게 당신이에요, 지금. 그러면서 나투어서 돌아가고 있어요. 그러나 바퀴가 굴러가면 심봉은 움쩍도 안 하고 능력만 줄 뿐이지 그 심봉이 움죽거리는 건 아니에요. 바퀴가 구를 뿐이지.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모든 일을 나투어 가면서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저 고정적이기만 한 일 해 보셨어요? 고정적인 생각, 이날까지 한 가지만 생각하고 한 가지만 먹고 그런 예 없죠? 그러니까 사람은 하난데 다양하게 여러 가지 먹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활용하고 살고 있죠. 그런 것처럼 우리의 영원한 생명들은 그것이 쪼개져 있는 게 아니라 전체 한데 뭉쳐서, 비교해서 에너지라고 한다면 에너지가 그냥 전체 이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너니 나니 하고 따지고 이 종교가 틀리니 저 종교가 틀리니 하고 따지고 이러거든요.

비유하자면 종지가 있고 접시가 있고, 사발이 있고 대접이 있고, 컵이 있고 차관이 있는데 말이에요, 그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이 때에 따라선 다 쓰여지죠? 필요하죠? 그러니까 사발은 종지를 미워하지도 말고, 업신여기지도 말라 이거예요. 또 사발은 저 큰 그릇을 웃보지도 말고요. 때에 따라서는 다 자기가 아무리 못났다 할지라도 잘난 사람보다 못난 내가 더 귀중하다는 걸 아셔야 돼요. 엄마도 아무리 못났어도, 코가 언청이라도 아마 잘생긴 남의 어머니보다 당신 어머니가 중요할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자기 나무에서 자기 열매가 열려서 그 자기 열매가 무르익어서 그 나무에서 그 맛이 나는 거예요. 그 열매가 딴 나무에서 무르익은 것은 딴 나무에서 무르익은 거지, 내 나무에서 무르익은 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알아야 해요, 각자. 개별적인 자기가 아니라 포괄적인 자기, 자기 잠재해 있는 원소 자체, 실상의 주인공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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